우리들의 첫 유럽2

2.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우왕좌왕

by 목하


거대한 비행기 안이 밀폐되었다는 생각을 할줄은 몰랐다.

발이 땅에 닿지 않은채 하늘에서 12시간을 버틴적이 있었나. 같은 자리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움직임의 반경이 크지 않다보니 몸이 굳는 느낌이 들었다. 제공되는 음식을 앉은 자리에서 받아먹고 최소한으로만 움직여야 하니 시간은 더욱 더디 흘러갔다.

내가 살던 땅에서 이렇게나 떨어진 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점점 믿어지지 않기 시작할 즈음 비행기는 런던 상공을 진입했다. 장장 12시간의 긴 비행을 한 후 우리는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시간은 런던 현지시간으로 오후 4시 30분경이었다. 결국 런던에 도착하다니... 세상에...


근데 상황은 우리가 감상에 빠지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런던 시내로 들어가는 데는 하나의 관문이 더 남아있었다. 공항 입국심사.

지금은 자동입국심사로 바뀌었다고 들었지만, 그때만 해도 영국의 입국심사는 깐깐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일대일로 대면하여 간단 인터뷰를 거치는 입국심사과정이 있었다. 무표정한 영국의 입국심사관이 빠른 톤으로 질문하면 초행길인 여행자들은 긴장하여 간단한 질문이라도 알아듣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대한항공에서 내린 많은 한국 사람들이 입국 심사대 앞에 여러 줄로 늘어서면서 잔뜩 긴장감이 감돌았다.

검은 제복의 입국심사관은 다섯 명. 날카로운 눈빛으로 여권과 실물을 번갈아 훑으며 질문을 했다. 만약 영어에 자신이 없다면 자료를 미리 준비해서 심사를 받는 것이 좋을 듯했다.

숙소 바우처나 출국 비행 티켓을 보여줘도 좋다고 한다. 신용카드나 현금도 준비해두고 말이다.

나, 돈도 있고 되돌아갈 데도 있는 여유 있는 순수 관광객이야. 이 나라에 눌러 살 생각 없어. 뭐 그런 걸 증명하면 된다는 뜻이다.


우리 앞에 서있던 남성은 서류를 많이 준비한 모양이었다. 서류를 찾느라 가방을 계속 뒤지며 시간이 많이 걸렸고 당황한 듯 보였다. 가족여행객에게는 꽤 관대한 걸로 들었는데 그 상황을 보고 나니 더 긴장이 되었다.


곧 우리 차례가 되었다. 여권 사진과 일일이 대조하더니 생각보다 간단한 질문 몇 가지만 하고 웃는 얼굴로 우리를 통과시켜 주었다. 괜찮은 시작이었다. 징조가 좋았다. 남편이 자신의 뻔뻔한 임기응변이 잘 통한 거라고 신나했다. 가족 모두 안도감에 기분이 좋아졌다. 인생은 역시 일희일비였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근처, 런던의 중심가에 있다. 가는 방법은 미리 꼼꼼하게 체크해갔다. 근데 실전에서는 늘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나타나는 법이었다.

'내셔널 익스프레스'라는 공항버스를 타는 것이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대한항공이 착륙하는 터미널 4에는 중심가로 가는 내셔널 익스프레스를 탈 수 없었다.

시작부터 어그러지는 계획이라니... 다시 난감해졌다.


다시 물어물어 교통편을 알아내는 과정은 초행자로서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버스기사에게 물어보니 반대편으로 가보라고 하고 반대편으로 가니 그쪽으로는 운행하지 않는다 하고...


날은 슬그머니 저물어 퇴근시간이 되어 가고 있었다.

큰 트렁크를 하나씩 끌고 다니며 영어 단어를 더듬더듬 말하고 있는 우리의 상황이 갑자기 처량해 보이고 마음이 불안하기 시작했다. 내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누르고 침착하게 행동하려고 했다.

남편이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사정을 말하면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물어보러 다녔다. 위기 대처능력이 좋은 사람이었다.

덕분에 버스로는 갈 수 없고 지하철로 가야 한다는 것과, 지하철까지 태워주는 공항 전철, 히드로 익스프레스를 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터미널 4에서 히드로 익스프레스를 무사히 탑승했다


히드로 익스프레스를 타고 가서 우리는 다시 튜브로 갈아탔다. 런던은 지하철을 튜브라고 불렀다.

튜브의 내부는 아주 좁았다. 긴 의자가 마주하고 있고 그 사이 통행로가 너무 좁아 우리 가족의 대형 트렁크들과 가방이 공간을 꽉 채우다시피 했다. 마침 퇴근시간과 겹쳐서 지하철을 타는 런던 직장인들이 많아졌다. 눈치가 보였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우리 짐들을 요령껏 잘 피해 다니며 외국에서 온 관광객에게 너그러운 태도를 보여줬다.


런던 green park역에서 환승 중.


30분 정도 후, 우리는 숙소가 있는 핌리코 역에 무사히 하차했다.

각자 무거운 트렁크를 들고서 길고 낡은 지하철 계단을 올라와 겨우 런던 땅을 밟았다.

에스컬레이터가 없이 계단만 길고 긴 지하철이었다. 이건 고풍스러움일까.

어쨌든 이런 고달픔도 첫날이라 덜 힘들게 느껴진것 같기도 했다. 첫날부터 이렇게 고생일줄 알았으면 택시를 탈걸 그랬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지상으로 올라와보니 런던은 이미 어둠이 내려있었다.

비가 내렸었는지 도로는 살짝 젖어 있었고 그 길이 주황색 가로등에 반사되어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런던 거리의 첫인상은 낯설면서도 왠지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주황빛 가로등 덕인지 처음 와본 런던 거리가 묘하게 친근했다.


핌리코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