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첫 유럽3

3. 런던의 좁은 숙소

by 목하


저녁 7시가 되어가는 시간, 해가 짧아진 겨울의 런던 거리는 꽤 캄캄했다.

드르륵... 드르륵...

인적 드문 어둑한 거리에 트렁크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아주 요란했다.


숙소는 벨그레이브 로드의 호텔들 가운데 있었다. 우리가 내린 핌리코 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였다. 구글맵을 이용해서 숙소 방향을 잡고 찾아갔다.

3성급 호텔이라는 고만고만한 숙소들이 그 길을 따라 주욱 늘어서 있었다. 런던 중심가에서 가까운 좋은 위치의 숙소들이었다. 한두 블록만 벗어나도 숙박비를 아낄 수 있었지만, 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해서 가성비 숙소를 선택했다.

호텔들의 외관은 다 똑같아 보였다. 런던시의 거리정비 사업 차원일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3층 높이로 통일된 호텔들은 그 디자인까지도 같았다. 그래서 입구의 호텔이름을 잘 보고 걸어야 했다. 입구를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와서야 예약한 호텔에 체크인할 수 있었다.


런던 벨그레이브 로드의 호텔 앞에서



우리 방은 도로 쪽 1층이었다. 저렴한 숙소 위주로 물색하다 보니 이 방이 낙점된 듯했다.

더블 침대 두 개와 싱글 침대 하나가 좁은 방안에 희한하게 배치돼 있었다. 5인 가족도 사용가능한 방이었다.

한쪽에 간단히 차를 끓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남는 공간에 트렁크를 두니, 공간이 빽빽해졌다.

하긴 여행자가 숙소에 여백을 가질 필요는 없다. 런던의 물가는 한 푼이라도 저렴하면 감사하게 되는 겸손한 마음을 품게 해 주었다.


그나마 화장실과 샤워부스는 널찍하니 쾌적해 보였다. 샤워부스는 문을 달아 독립된 공간으로 마련돼 있었다. 여행자의 피곤함을 씻어내고 에너지를 회복하는 의미에서 중요한 공간이었다. 조금 위안이 되었다.


별달리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은 첫 숙소부터 실망했다. 이 좁은 데서 4일을 지내야 하는 건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런던 중심가에서 이 가격에 구할 수 있는 최선의 공간이었다고 애써 위로했다.


짐을 호텔에 넣어두고 우리는 바로 런던아이에서 런던야경을 보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우리의 일정상 오늘 저녁 외에는 런던에서 시간이 맞지 않는 까닭에 지금 움직여야 했다.

런던아이 야간탑승은 다녀온 사람들은 모두 추천하는 런던의 핵심 아이템이었다. 숙소에서 가까운 런던아이를 놓치고 가기엔 좀 아까웠다. 템즈강을 건너는 다리 위에서 택시가 잠시 밀리기도 했지만 다리를 건너니 바로 런던아이였다.


마지막 타임에 런던아이를 탑승했다


런던아이는 런던 시내의 상징적인 조형물로, 런던 시내를 한 번에 조망할 수 있는 캡슐 모양의 대관람차다.

실제로 보니 그 규모가 상당히 커서 놀랐다. 미리 인터넷 예약을 해왔는데 마지막 시간이라 그런지 많이 붐비지는 않았다.

관람차가 높이 올라갈수록 아름다운 런던 시내의 야경이 한눈에 다 들어왔다. 정말 멋졌다.



템즈강을 따라 조명이 화려한 런던중심가 야경. 런던아이를 탑승하고.
여기가 런던이라니...
조명 불빛에 둘러싸인
도시의 모습은
꿈을 꾸는 듯
몽환적이었다.

빅벤과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야경.



한강에 비하면 폭이 좁은 템즈강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조명을 이용한 볼거리를 만들어 내는데 더욱 활용하기 좋아 보였다. 강가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건너편 현대적 건물들이 조명 불빛과 함께 멋지게 모습을 드러내며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런던 시내의 화려한 야경을 배경으로 셔터를 눌러대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은 좀처럼 현실감을 주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지하철로 분주히 이동하고, 숙소를 찾고 바로 런던 야경을 배경으로 런던아이를 탑승해 있다는 것을 완전히 실감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었다.



런던아이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모퉁이에 마켓이 있었다. 당장 필요한 먹거리를 사기 위해 들어갔는데 가게는 좁지만 생각보다 많은 물건이 가게 내부에 가득히 들어차 있었다. 식자재 외에도 생필품을 살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오렌지와 물, 과자, 초콜릿 등을 샀다. 숙소로 돌아가 얼른 저녁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동네마켓에서 신선한 과일과 먹거리를 살 수 있었다.


한국에서 챙겨 온 라면을 가져온 휴대용 냄비에 끓이고, 햇반은 전자레인지가 없어 호텔의 전기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데웠다. 호텔에서 라면을 끓여도 될까 잠시 고민도 했지만, 전기 주전자가 비치되어 있으니 간단한 것은 해 먹어도 된다고 해석하기로 했다.


배고픈 우리는 용감했다. 배가 고픈 아이들은 허겁지겁 라면과 밥을 먹어치웠다. 불쌍해 보이기도 하는 그 광경이 한편으로 재미있어서 우리는 키득거리며 저녁식사를 했다.

우리의 아지트로 돌아와서 음식이 입에 들어가니 그제야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았다. 간단하게 먹는 이 저녁 음식이 어떤 만찬보다도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을 느꼈다. 마켓에서 산 오렌지까지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오이스터 카드와 파운드화

각자 짐 정리 후 번갈아 씻고 잘 준비를 했다.


여행자를 위한 오이스터 교통카드와 환전해 온 파운드화를 침대 위에 펼쳐놓고 내일 일정을 얘기 나누려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급 곯아떨어졌다.



얼마나 잤는지... 나는 창문 밖 버스정류장에서 수다를 떠는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잠깐 잠이 깼다.

지금 여기가 어딘지 순간적으로 파악이 안 돼서 멍하게 눈만 껌뻑였다.

잠시 후 런던에 와있다는 자각을 하면서 호텔방을 빙 둘러보고 각각의 침대에서 기절하듯 잠들어있는 가족들을 확인했다.

휴대폰에 톡이 와있는지 잠시 보았다. 나와 한국 지인들의 시차와 거리를 가늠해 보려다 바로 포기했다.

우리가 이렇게 타국의 호텔방에서 곤히 자고 있다는 것이 자다가 깨서도 신기했다.


오랜 비행 탓인지, 런던 물이 안 맞는 건지, 피부가 심하게 건조해져 있는 게 느껴졌다. 얼굴을 몇 번 문질러 보다가 푹신한 베갯속에 다시 머리를 묻고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