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엄마의 육아일기를 보았다>

부모님을 이해하는 일은 나를 이해하는 일과 같다.

by 치치

아동학대라니. 율무의 아버지는 당혹스럽던 그날을 생생히 토로한다. 여느 때와 같이 율무는 직접 자기 의상을 선택했고, 개나리색 민소매 원피스와 줄무늬 타이즈를 고집했다. 칼바람에 눈까지 쌓이는 날씨도 율무의 취향을 꺾을 수는 없었다. 다정한 마트 할아버지의 아동학대 신고에, 율무 아버지는 경찰서로 소환되었다.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며 친척들에게 열변을 토하는 아버지. 품에 안겨있던 율무는 자신의 볼에 침이 튀기자 쓱싹쓱싹 닦아낸다. 강렬한 패션과 별개로 율무는 낯가림이 심하다. 벌써 반나절 동안 아버지의 품에 담겨있다가, 인제야 품을 꾸물꾸물 빠져나온다. 사촌 언니 이자란이 잠에서 깨어났기 때문이다. 자란은 수많은 사촌 동생 중 유독 율무를 편애했다. 낯가리고 새침한 면이 특별하다고 한다. 자란은 삐죽삐죽 탱탱 부은 얼굴로 율무를 껴안는다. 율무는 어서 놀이터에 가자며 자란의 얼굴을 이리저리 반죽한다. 이번에도 율무의 승, 자란은 두꺼운 패딩을 껴입고 율무를 안아 든다.


놀이터 산책은 세 시간의 대장정으로 막을 내렸다. 홍율무는 욕심쟁이다. 모든 놀이 기구에 몸을 실어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렇게 한 바퀴 두바퀴 돌고 나서야 본격적인 놀이가 시작된다. 사락사락 흙을 매만지고, 나뭇가지를 모아 요리 놀이를 한다. 그러다 눈꺼풀이 무거워질 때면 엉금엉금 자란의 등에 업힌다. ‘엄마가 섬 그늘에-‘ 흐르는 자장가. 어린 이자란이 가장 좋아하던 노래다. 자란의 어린 시절은 사실 할머니와의 기억이 전부이다. 고소하고 따뜻한 체향, 온화한 등의 열기, 잠자는 이의 귀를 스치는 담담한 자장가 소리.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겠다며 잘 시간에 자질 않으니, 점심만 되면 잠이 쏟아졌다. 할머니는 그런 자란을 토닥토닥 재워주고는 했다.


“자란이 언니- 이 책 읽어줘” 온 집안을 헤집던 율무가 조그마한 공책을 들고 다가온다. 끙차- 자세를 고쳐 앉은 자란이 율무를 무릎에 앉힌다. 자기가 본 책 중에 가장 작고 귀엽다며 조잘조잘 오물거리는 율무. 자란은 무슨 공책인지 이리저리 살피다 첫 장을 읽어본다.


‘엄마 딸 자란이. 너무 예쁘고, 소중한 나의 아기. 엄마는 참 감사해. 네가 엄마 딸로 이 세상에 온 것을. 너에게 항상 고맙고, 부족함에 미안해. 우리 즐겁게 재미나게 살자. 엄마가 꿈꾸는 건 시간이 흘러도 같이 얘기할 추억이 많고 웃을 일들이 많았으면 하는 게 바람이야. 편안한 엄마. 재미있는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 배탈이 나서 힘들 텐데도, 조금 아파서는 티도 안 낸 채 씩씩하게 놀아줘서 기특하고, 걱정도 되고 그러네... 사랑해, 매 순간 엄마의 사랑이 너에게 느껴졌으면... 엄마가 사랑을 충분히 표현하도록 노력할게’


자란의 눈이 커진다. 이건 엄마의 육아일기였다. 어린 시절의 자신에겐 할머니만이 전부였다 기억하는데, 엄마의 흔적을 마주하게 되었다. 늘 바쁘던 그 시절 엄마의 이야기. 자란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페이지를 넘긴다. 집중한 자란의 얼굴에 율무는 칭얼댄다. 왜 언니 혼자 읽냐며 보채기 시작하자 자란은 소리 내어 읽어본다.


‘오랜만에 비가 그쳤다. 자란이와 놀이터 산책하러 나갔다. 조그마한 게 어찌나 앙증맞고 야무진지. 그네를 두 손으로 꼬옥 잡고 타는 모습이라니. 20분은 넘게 탔나 보다. 팔이 아플 만도 한데 말이다. 자란이는 놀이터에 가면 모든 놀이기구를 다 타야만 직성이 풀린다. 눈에 들어온 것은 모두 해야 하는 아이. 새로운 것을 사랑하는 자란이지만, 순간을 잘 즐기는 법도 언젠가는 배우겠지.’


자란은 율무와 어린 시절의 스스로가 꽤나 닮았음을 인지했다. 어쩌면 율무의 낯가림, 고집마저 사랑스러웠던 것은 그 안에서 자기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을까. 어린 시절의 자란에게 엄마의 온기는 묻어있지 않다 기억했지만, 육아일기엔 자란을 향한 사랑과 함께 보낸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목이 칼칼해질 때까지 소리내어 읽던 자란은 문득 율무가 조용해진 것을 깨달았다. 어느새 잠든 얼굴의 율무. 육아일기를 덮고는 율무를 편안히 눕힌다. 포근한 이불 속 편안히 뉘고는 또 다시 작고 소중한 공책을 펼쳐본다. 율무가 발견해 온 엄마와 자란의 시간. 육아일기를 읽는 건 마치 어린 시절의 재구성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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