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그 이후
‘지영아, 자?’ 여러 번 되묻던 목소리, 내 몸을 본인 어깨에 짓누르던 손, 천천히 눈을 뜨자 나를 응시하고 있던 시선, 다시 잠들라며 몸에 끌어당기던 손의 힘, 그리고 택시 안에서 발견한 열린 바지 지퍼. 눈을 꾹 감고, 이를 악물었던 내게 그날의 냄새는 잊혀지지 않는다. 집에 돌아와 수없이 양치해도 지워지지 않던 가해자의 침 냄새. 눅눅하고 어두웠던 심야버스의 엔진 냄새. 가해자의 몸에서 풍기던 옅은 소주 냄새. 그날의 냄새가 떠오를 때면, 수억 마리의 작은 벌레가 내 몸 위를 넘실 거리는 것만 같다.
작년 7월, 나는 준강제추행 피해자가 되었다. 시간이 흘렀고, 여전히 괴로운가 묻는다면 그렇지만도 않다. 어쩌면 나보다 주변인들이 더 분노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기억과 감정이 불분명한 채 해리 증상을 겪었던 영향이 남아 있는 듯하다. 애인은 당시 내 상태를 ‘꿈을 꾸는 것처럼 몽롱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무감각했다. 더 정확히는 무엇을 느끼고 생각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공황 상태에 가까웠다.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 어떤 감정도, 어떤 생각도 침범할 수 없었다. 내가 유일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변화뿐이었다. 얻은 것과 상실한 것. 사건 이후 나는 지능이 저하되었고, 대화하는 소리를 견딜 수 없을 만큼 귀가 예민해졌다. 잘 살아보겠다는 다짐으로 머리칼을 짧게 잘랐지만, 왼팔 위에는 자살 시도의 흔적이 하나둘 늘어갔다.
가장 어려웠던 변화는, 버스에 타면 몸이 얼어붙는다는 점이었다. 차 없는 뚜벅이인 내게 버스는 필수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버스의 퀘퀘하고 시린 엔진 냄새, 어둡고 축축한 밤의 향기를 견딜 수가 없었다. 코를 부여잡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잦았다. 코가 아팠고, 귀가 아팠다. 그 소리와 냄새, 몸을 기어 다니는 듯한 감각이 나를 잠식했다. 비록 그날의 버스도, 그날의 자리도 아니었지만, 가해자는 언제나 내 곁에 앉아 있는 듯했다. 마치 그날의 공간으로 나를 잡아끌어 앉혀놓는 것처럼.
냄새는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냄새는 시간이 지나도 희미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냄새 하나가 나를 한순간에 과거로 돌려보낸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그날의 감각이 다시 살아난다. 버스에서, 밤거리에서, 혹은 낯선 사람의 체취 속에서 가해자의 흔적을 마주하고는 한다. 이 냄새가 언젠가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냄새가 될 수 있을까. 더 이상 나를 짓누르지 않는 날이 올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언젠가는 이 냄새가 나를 덮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스쳐 지나가는 날이 오길 바랄 뿐이다. 나는 그날까지 이 냄새를 버티며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