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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치 Jul 25. 2024

어쩌다 피해자

한시간, 버스에서 강제추행 피해자가 된 날의 기록

담배가 피고 싶었다. 푸주는 내 가방을 들어주고 있었고, 구석진 골목을 찾아 함께 담배를 피웠다. 이런저런 쓸모없는 이야기를 나누다 정류장으로 향했다. 늦어진 귀가 시간, 취해서 잘 되지 않는 연락. 화가 난 애인에게 카톡을 보내며 내가 제대로 글자를 쓰는지 걱정이 되었다. 푸주는 나의 고장 난 맞춤법을 하나하나 고쳐주었다. 잠이 쏟아졌다. 앉아있고 싶어 쪼그리자 푸주는 나를 일으켰다.

파란 버스가 왔고 잘 열리지 않는 지갑 속 버스 카드를 간신히 찍었다.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들었고 잠을 청했다. 여전히 토할 것 같았다. 얕은 잠에 빠지자, 푸주는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나를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했다. 깊은 잠에 들었다. 그러다 내 가슴을 스치는 손에 잠에서 깨었다. 눈을 뜨지는 못했다. 푸주의 손길이 불쾌했지만 무슨 상황인지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푸주는 내 가슴 위에 올려진 머리카락을 치우며 가슴을 쓰다듬더니 그대로 손을 넣었다. 5분, 10분 주무르고 만지는 손길과 함께 시간은 흘렀다. 이는 소금의 전화로 잠시 멈췄다. 푸주는 소금과 전화하며 잘 가고 있다고, 둘 다 자면서 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버스를 내릴 때가 되자 푸주는 내 어깨를 치며 나를 깨웠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푸주를 따라 내리자 처음 보는 곳이 눈앞에 있었다. 서울에도 광교가 있었나. 그 생각을 하며 걸었다. 푸주는 내 허리를 감싸 안고 걸었다. 그 손이 불쾌해 나는 너 옷을 잡고 가겠다며 거리를 두었다. 걸음은 여전히 꼬였다. 술이 얼른 깼으면 했다. 머리가 정지된 것이 술 때문인 것만 같았다.

광역버스를 탈 차례였다. 뒷자리에서 조금 앞자리인 곳에 푸주가 앉았고, 나도 앉았다. 내 애인은 화가 풀리지 않은 상태였고 버스에 갈아탔다는 카톡을 간신히 보냈다. 푸주는 옆에서 카톡 내용을 모두 훔쳐보았다. 여전히 잠이 쏟아져 거리를 두고 눈을 감자 푸주가 내 몸을 잡아끌었다. 또 어깨에 기대게끔 나를 고정했다. 자고 싶지 않았는데 잠이 왔다. 몸은 뻣뻣하게 굳어 깊은 잠에 들 수는 없었다. 탑승한 지 시간이 조금 흐르자 푸주는 다시 내 옷을 조금씩 들춰보았다. 그러다 또다시 손을 넣고 추행했다. 푸주는 내 이름을 부르며 자냐고 끝없이 물었다. 내가 대답을 하면 손을 뺐고, 대답을 하지 못하면 더 대담하게 만졌다. 그러다 바지로 손이 들어갔다. 눈을 뜨고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무서웠다. 뻑뻑한 청바지를 입고 있어 손이 잘 들어가지 않자, 푸주는 내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과 주머니에 있던 전자담배를 가져갔다. 그때 내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소금의 전화였다. 푸주는 나에게 온 전화를 받고 또다시 잘 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 때다 싶어 뒤척이는 척 거리를 두었다. 한쪽 눈을 뜨고 상황을 파악했다. 내가 눈을 떠도 될까. 멈춘 머리엔 그 질문만 가득했다. 전화가 끝나고 푸주도 잠을 청하는 듯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천천히 눈을 떠보았다. 그런데 잠든 줄 알았던 푸주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푸주와 눈이 마주치기도 전에, 내 몸은 또다시 푸주의 어깨에 처박혔다. 다시 자라며 내 머리를 끌어안고 고정했다. 푸주의 향이 역겹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숨을 죽였다. 다시 머리가 하얘졌다. 푸주는 내 가슴을 또다시 추행하다가 바지 지퍼를 열었다. 손은 속옷 안으로 들어갔고 몇 분을 만지다 손이 빠졌다.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상황파악이 안 됐다. 또 가슴을 만지며 이제는 내 얼굴을 잡아 자신의 볼에 입술이 닿도록 나를 고정했다. 내 손을 끌어 자신의 성기 쪽에 올려두었다. 그러다 내 입안에 혀를 넣었다. 나는 이를 꽉 다물었다. 정말 싫었다. 끔찍했다. 계속해서 몸을 만지는 움직임이 역겨웠다. 내가 애인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술에 취해 몸을 겨누지 못하는 것도 알면서 그냥 성욕을 해소하고 있었다. 푸주는 별로 취한 상태도 아니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다. 푸주는 또다시 내 어깨를 치며 나를 깨웠고, 내려야 한다며 지갑과 핸드폰을 쥐어주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내 애인에게 전화가 왔다. 애인은 화가 난 채로 집에 도착하면 다시 전화하라고 이야기했다. 푸주는 우리의 통화를 엿들으며 계속해서 나를 따라왔다 정류장은 대로변이었고, 갓길에 있는 돌 위에 앉았다. 푸주는 내가 집에 못 갈 것 같다며 자신의 집으로 가자며 여러 번 이야기했다. 나는 얼른 집에 가서 남자친구에게 전화해야 한다며 이를 거절했다. 빠르게 택시를 잡고 택시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옆에 서 있던 푸주는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택시가 도착하자, 짐을 챙기고 몸을 실었다. 문을 닫고 푸주를 바라보았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핸드폰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아주 기분 나쁜 꿈을 꾼 것 같았다. 현실감각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러다 문득 바라본 나의 바지 지퍼는 여전히 열려있었다. 그제서야  정말 나한테 있었던 일이구나 싶었다. 확인사살 당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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