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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치 Jun 25. 2024

첫 자취 이야기

무언가를 돌보는 일은 나를 돌보는 일과 같다.


 스무 살이 되어 자취를 시작했다. 나의 공간에서 홀로, 하루를 꾸리는 중이다. 생활을 배우고 싶고 자립에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순천 살이를 한 해 더 경험했었다. 그러나 스스로를 책임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체감하던 기억만이 가득하다. 나는 열다섯 살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했음에도 그리 깔끔한 편이 아니며, 아침에 칼같이 눈을 뜨고 이른 저녁잠에 드는 바른생활의 습이 없다. 그럼에도 내가 먹을 밥을 짓고 깨끗이 청소하던 경험, 룸메이트에게 스트레스를 받고 스트레스를 주던 경험, 지지를 얻고 웃음을 나누던 경험 그리고 때때로 옷과 쓰레기에 파묻힌 방과 함께 파묻혀있다. 어느 날 방도 마음도 개운히 닦아내던 그 모든 경험들이 지금의 일상엔 아주 큰 양분이 되고 있다.

  홀로 사는 일상은 스스로 어떤 성정인지 빤히 바라볼 수 있는 기회이다. 마라탕이 먹고 싶어 장을 보아도 집에 오니 입맛이 없어 재료들을 방치하는 인간, 화장실 청소는 하면 할수록 개운하지만 부엌 청소는 하면 할수록 기분이 찜찜해지는 인간, 더럽다는 소리를 듣고도 타격 없던 지난 삶을 거쳐 머리카락 하나만 바닥에 떨어져 있어도 집을 쓸고 닦고 미친 듯이 청소하는 인간, 창밖으로 앞집 사람의 눈에 들고 싶지는 않지만 멍한 눈으로 창밖 풍경을 바라보다 잠들고 싶은 인간, 침대 위 시간이 소중해 공복 상태로 8시간을 일하더라도 끝끝내 잠에 빠져있는 인간, 13년 동안 살던 본가에서의 하루를 못 견디고 내 집이 그리워 밤을 새우는 인간. 요즘의 내가 지켜보는 모습이다.

  이십 대를 보내는 주변인들과 꼭 나누게 되는 대화 주제가 있다. 나 하나 먹이고 재우고 생활하는 일에 너무나 큰돈과 시간, 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내 청소년기를 가득 채워준 좋은 어른들을 닮기도 전에,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과 지갑이 부실해진다. 스스로 먹고살기 연습은 참 어려운 것 같다. 갓난아기로 태어나 노인이 되어 삶을 마무리 지을 때까지, 인간은 자신이 인지하든 인지하지 못하든 평생을 돌봄 속에 살아간다. 나는 지금도 수많은 돌봄을 주고받으며 일상을 지탱하고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돌보는 일은 스스로를 돌보는 일과 같아서, 아담한 나의 집엔 식물들과 거북이 치치가 함께 살아간다. 물을 주고 화분을 갈아주고, 똥을 치워주는 일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개운하게 만들어준다. 행위만으로는 내가 돌보는 듯 보여도, 함께 있어주고 나를 필요로 해주는 그들의 존재 자체가 엄청난 위안이 되기 때문인 것 같다. 돌보고 돌봄 받는 지탱의 관계가 늘어갈수록 온전하고 평안한 자립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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