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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용 Dec 27. 2018

지용시선 세 번째

문학동네 시인선 003. 송재학 시집 <내간체內簡體를 얻다>

감당하지 못할 일을 저질렀다는 듯이
손금이라는 오래전의 생채기가 있다
별을 보는 창문도 흉터이다
이참에 그곳에 의자를 준비하려 한다
거기 앉아 나무의 생각을 흉내 낼 참이다

p.59 '생가' 中


문학동네시인선 003. 송재학<내간체內簡體를 얻다>


한줄평
섬세한 단어와 생경한 표현의 향연, 그야말로 언어의 축제     


시인 송재학


1955년 영천 태생. 올해로 예순 넷의 아니에 무려 9권의 시집을 냈다. 88년, 92년, 94년, 01년, 05년, 07년, 11년, 13년, 15년. 적어도 4년에 한번 시집을 엮어낸 것이다. 그건 정말로 대단한 일이다.



매우 주관적인 시집 소개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따라갔던 애매성의 공간에 명쾌함을 부여하려고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이 서투른 내 노래는 그 공간에 더욱 사로잡힐 뿐이다. 그 공간이란 날아다니는 새에 비유한다면 깃털과 깃털 사이의 꽈리 같은 허공일 것이다. 깃털이 빠지면 사라지는, 수사나 미학으로 세계를 읽으려는, 쓸데없고 분명하지 않은. 내 생각을 덧붙이자면 흰색과 격렬함을 집어삼킨 분홍빛에 내 시를 헌정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 송재학 시집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中 -


시인은 그의 시가 수사와 이미지에 치중해 의미의 교란(모호성)을 수락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 권형웅 문학평론가 -

         

그렇다. 시인의 표현처럼 이 시집을 읽는 내내 정말이지 ‘허공’을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허공’은 무엇이 무언지 모르겠는 어지러운 공간이 아니라, 대상과의 적절한 거리를 만들어 그것을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거나 아예 대상의 안으로 들어가 그것을 뜯어볼 수 있게 만드는 공간이었다.


다시 말해 시인이 만들어낸 허공은 대상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허공(虛 빌 허, 空 빌 공)이 아닌 허공(許 허락할 허, 空 빌 공)인 셈이다.     


그 허공을 헤매는 일은 정말이지 황홀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온전히 내가 창조한 허공 속에서 유유히 길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시인이 만들어낸 허공 속에서 길을 안내하는 문장들을 전한다. 이 문장들에 대해 과한 주관을 덧붙이는 일은 오히려 독서를 방해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여, 몇 개의 문장을 편집해 안내하는 일로 설명을 최소화하려 한다.


이제 그 황홀한 ‘허공’으로 함께 들어가보자     


          

버려둔 시골집의 안채가 결국 무너졌다 개망초가 기어이 웃자랐다 시멘트 기와는 한 장도 부서지지 않고 고스란히 폴삭 주저앉았다 고스란히라는 말을 펼치니 조용하고 커다랗다     


p. 11 '지붕' 中     



비의 중력장에선 물질은 모두 형광이다 비는 익숙하고 놀라운 감정이다      

손바닥만큼 고이는 비의 고요가 좋다 모래와 자갈, 자갈과 조개껍질 부딪치는 소리이면서도 까칠까칠하면서 젖어가는 느린 파문이 좋다 느린 빗발은 그림자까지 소소하다   


p. 24 '비의 악기' 中   



커브에서 덜컹거리는 게 너무 깜깜하여

붉은색과 노란색이 서로 치명적인 줄 알겠다

멀어져가는 선로가 흑백으로 바뀔 때쯤

간이역이 마중 나왔다

잡목림이 말끔하게 하역한

붉은색과 노란색 음역은

간이역 확성기의 힘을 빌려

번질 대로 번졌다

단풍 화물차에게

붉은색과 노란색 땔감은 더 필요하겠지     


p. 48 '단풍 기차' 中     



비 그친 뒤 생긴 골목의 작은 웅덩이, 흙탕물이지만 햇빛이 출입한 듯 놋그릇처럼 말끔하다 수면을 으깨지 않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구름을 절반 깨문 고요는 납작하고    


p. 52 '흙탕물 웅덩이' 中     



모래톱 해안선에 누우면

바다는 비스듬히 기울어진

꾸물꾸물 움직이는 창이다

나는 지금 창의 바깥쪽에서

안으로 실려가는 목록을 헤아리고 있다     


p. 53 '저건 창이야' 中     

       


잘 쓰인 시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요소는 ‘장면이 잘 그려지는가’이다. 다시 말해 글의 묘사가 선명하거나, 상상력을 자극하는지를 가늠해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송재학의 시는 잘 쓰인 시라고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풍경이 언제나 맑은 것은 아니다. 또, 맑은 풍경만이 좋은 정취를 제공한다고 할 수도 없다. 때로는 흐리고 안개가 자욱하고 비가 오는 풍경이 더 깊은 인상으로 남을 때도 있다. 아니, 떠올려보면 우리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은 풍경은 오히려 흔하지 않은, 맑지 않은 날씨의 그것일 때가 더 많다.

     

송재학의 시는 다양한 날씨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선명하지는 않지만, 강렬하다. 선명하지 않아서 더 강렬하다. 저 멀리서 어떤 이가 등장해 우리 앞으로 걸어오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그 장면이 맑은 날씨라면 그는 멀리서부터 정체를 들킬 것이다. 정체를 드러낸 채로 걸어오는 이를 바라보는 것만큼 지루한 일도 없을 것이다. 반면, 안개가 자욱한 곳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주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그의 정체를 가늠할 수 없다. 그가 적인지 아군인지조차. 작가가 두 장면에 같은 인물을 설정해놓았을지는 모르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더 많은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게된다. 그런 점에서 송재학의 시를 다시 본다면, 그의 시는 분명 잘 쓰인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외할머니는 밥공기에서 반쯤 밥을 자꾸 들어낸다 외숙모는 더 큰 그릇에 밥을 담아 외할머니가 밥을 들어내도 일정량이 되도록 조절해왔다 아무도 없을 땐 밥 한 공기를 다 비우신다 같이 식사할 때만 자꾸 밥을 비워낸다 반 공기의 밥도 억지로 먹는다고 중얼거리신다     


p. 20 '미안하구나' 中     



일곱 살 때 아버지와 함께 걸었던 금호길, 갈대 서걱거리는 금호라는 의성어를 날것으로 들었던 그때 새 신발이 아니라도 십 리 길은 멀고 높았다 외가에서 큰집까지 지금도 그 길의 되돌이음표를 새기면 몸의 뒤축은 아프다, 아프다 못해 잘린 팔의 허공이 가렵듯 아버지에게 매달렸던 수많은 내 오른손은 이제 잡아야 할 아버지 없어 연신 가렵고 아프다     


p. 22 '갈대' 中     



시집에는 위 2개의 글처럼 쉽게 따라 읽을 수 있는 서사시도 있다. 소재나 전개되는 이야기 자체는 진부하다고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내 몸속의 사원,

깜깜하지만

오십 년 너머 울금빛 건물이다

단출한 방이다     

감당하지 못할 일을 저질렀다는 듯이

손금이라는 오래전의 생채기가 있다

별을 보는 창문도 흉터이다

이참에 그곳에 의자를 준비하려 한다

거기 앉아 나무의 생각을 흉내 낼 참이다  

   

p. 59 '생가' 中   


  

시인은 정말로 ‘단출한 방’에서 새로운 언어를 적어온 사람같다.
그의 시집을 읽는 일은 마치 평생 소리를 해온 소리꾼의 공연을 듣는 것만 같다.   


     



울란바트로 산동네, 성숙지구

머린호르와 낙타가 우는 밤

하트갈에서 무렁 가는 길

마다가스카르 섬

푸르공     


위는 모두 시의 제목이다. 송재학의 시에는 여행기의 글이 많아 생소한 지명, 이름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것들에는 대체로 각주가 달려있어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다. 다만, 역시 생소한 단어들(특히 외국의 지명, 외래어)의 빈번한 등장이 몰입을 쉽지 않게 만든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흠이라고 할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 이유 없이 생소한 소재를 문법처럼 가져다 쓰는 요즘 문단의 풍토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니까.   

   

시집에서 또 하나의 특이점을 꼽자면 많은 시들이 연 구분 없이 나열되어있다는 점인데, 그 말은 그 시들을 각자의 호흡으로 읽어야한다는 것이다. 시를 자주 접하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대목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으로 인한 좋지 않은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 시집을 읽어보길 권한다. 송재학의 시는 문단이 나뉘지 않아도 신기하게 읽다보면 알아서 어디서 쉬어가며 읽어야할지가 보인다. 아니 느껴진다.


그건 시가 그만큼 정갈한 언어로 쓰여있다는 반증이다.



이 시집의 하이라이트는 제목 ‘내간체內簡體를 얻다’와 관련이 있다. 내간체는 조선시대 여성들이 사용하던 한글 문체인데 시인은 부러 고어사전까지 공부해가며 이 문체를 차용해 새로운 시를 적었다. 이는 이병기, 정지용, 이태준과 같은 시인들이 전통적인 한글 문체의 특징과 아름다움을 살리기 위해 했던 노력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말을 연구하는 직업이라면 어쩌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알다시피 현대어로 잘 쓰는 일만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이건 요즘 표현으로 ‘덕후’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언어로 만들 수 있는 새로운 표현을 위한 노력의 끝에 그는 내간체內簡體를 얻었다. 이건 단순히 그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넘어 시인으로서 갈 수 있는 어떤 경지에 올랐다는 말이 아닐까. 스스로 그렇게 칭한 것이라 해도 그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자기를 보낸 여동생에게 언니가 쓴 답장 형식으로 적힌 ‘늪의 내간체를 얻다’ 속 아름답고 섬세한 표현들은 시집을 사서 읽어보시길 권한다. 동시대의 사람이 쓴 내간체를 읽는 경험만으로 책값은 충분해보인다.     



시집 하이라이트


내 시의 안팎이

풍경만이 아니고
상처의 안팎이기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내 시가 때로 상처의 무늬와 겹쳐진
오래된 얼룩이었으면 합니다.


p. 3 '시인의 말' 中







한줄평


섬세한 단어와 생경한 표현의 향연, 그야말로 언어의 축제.     


평점 이유


내간체內簡體를 비롯해, 그가 언어로 만들어낸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일만으로 책값은 충분해보인다. 굳이 아쉬운 점을 이야기하라면 여행기의 글이 많아 생소한 지명, 이름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것들에는 대체로 각주가 달려있어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다. 다만, 역시 생소한 단어들(특히 외국의 지명, 외래어)의 빈번한 등장이 몰입을 쉽지 않게 만든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흠이라고 할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 덕에 시집을 읽다보면 여행을 떠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독서 소요 기간


3일

신선한 표현들로 가득해 페이지가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읽을 수 있다. 다만, 요즘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이 많아 종종 사전을 찾아보며 읽어야 할 수도 있다.      


추천 대상


어떤 일을 오랫동안 꾸준히 해온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울림과 감동은 감히 따라하기 어려운 것이다. 언어로 그 감동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시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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