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지용시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지용 Jan 03. 2019

지용시선 네 번째

문학동네 시인선 004. 김언희 시집 <요즘 우울하십니까?>



너무 아름다워서 
추했잖아, 우리  

p.61 ‘기(忌)’ 中      

    

문학동네시인선 004. 김언희 <요즘 우울하십니까?>



한줄평 
심신이 미약한 사람은 읽지 마십시오.

    

시인 김언희  


1955 경남 진주 태생. ‘한국 시단의 메두사’라는 별명이 있다. 그녀를 수식하는 단어로는 ‘환멸, 극단, 잔혹, 그로테스크 등’이 있다. 2013년 이상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어울리는 수상경력이다.  



매우 주관적인 시집 소개  

  

고백하자면, 몇 년 전 한참 우울감에 빠져있을 무렵 이 시집을 산 적이 있다. 제목을 보고서다. 우울의 안부를 묻는 이 시집이 어떤 해결책이 되어줄 수도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을 산 다음날 바로 중고서점에 책을 되팔아버렸다. 위로와 공감의 말이 적혀있을 줄 알았던 시집에는 극단적으로 우울한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우울하다 못해, 외설적이고 파괴적인 글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열되어 있었다, 그 당시의 나에게는 그런 글을 읽을 힘이 없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시리즈를 리뷰하기로 하고, 이 시집이 그 시리즈의 네 번째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조금은 두려웠다.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는 이유로 건너뛸 수는 없기에 다시 이 노란색 시집을 집으로 데려왔다. 시집이 담긴 가방이 괜히 무겁게 느껴졌다. 

     

시집은 여전히 불편했고, 불쾌했다. 그래도 다행히 그리고 무사히 독서를 마쳤다. 아니, 무사한지는 잘 모르겠다.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역시 못 읽겠어’와 ‘그래도 읽어야지’ 사이에서 한참을 헤맸다. 그렇지만 한 편도 빼놓지 않고 모든 시를 삼켜내고 시집을 덮었다. 아니, 이 글을 써야 해서 세 네 번에 걸쳐 읽은 시도 상당수다.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간 조금은 단단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대체 이 시집이 뭐라고.     




성기

뒷구멍

변기

정액

내장

혓바닥     


이 시집에 다섯 번 이상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이 중 어떤 단어는 30번 가까이 등장한다.(직접 다 세어보았다)     

왜 이 시집을 읽기가 어려웠는지, 힘들었던 나를 왜 더 힘들게 만들었었는지 조금은 공감하실 수 있는 대목일지도.          


     

십일조를 받고

하느님은

내 죄를 

달게 먹어주신다 

    

자기!

부르면

동네 개가

다 

돌아보는      

일요일     


p14 해피 선데이 中 

    


가로수에 매달린 시체를

아무도 안 본다

샴쌍둥이도

이젠 별거 아니다     


줄을 세워서 똥을 먹이면

줄을 서서 똥을 먹는다

애국가를 부르는데

구지가가 나오다니, 스컹크를 잡는 데

썼던 장갑은 십 년이 지나도

냄새가 나고     


내 인생은

무료 증정 이벤트에서

무료로 증정받은

개도 웃을 

증정품     


p.18 이 밤 中     



호주머니에서 손을 꺼낼 때마다 똥이

묻어나온 호주머니가

없다면 손을

꺼낼 데가

없을까, 정말?     


p.27 9999 9999 9999 中     



발목을 잘라놓아도      


발목을 삶아놓아도 가버리는 것들아     


가버리고 없는 것들아

발을 끊은 것들아     


저기

저     


자지를 둘둘 말고 떠나가는 돼지들아     


p.36 ‘장충왕족발’ 中               



진짜 우울한 게 뭔지 알려줘?      



시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근데 명확히 느껴지는 몇 개의 시를 제외하고(참고로 위에 인용한 시들은 비교적 굉장히 명확하게 다가오는 축에 있는 글들을 발췌한 것이다) 대부분의 시는 무엇을 위한 풍자인지 알기 어렵다. 어떤 지점을 고발하고 싶었던 것인지, 이 글을 읽고 누가 불편함을 느꼈으면 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저 불쾌하고 불편하다. 외설적인 단어와 비속어가 남발되어있다는 느낌이다. 네가 사는 세상과 네 삶 자체가 우울이고 비극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불쾌함을 느끼고 세상의 불편함을 다시 바라보라는 걸까. 무엇을 의도한 것인지는 시집을 여러 번 읽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불편함이 목적이었다면 그건 명확하게 성공한 것 같다.   

   

과격함은 필요악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있다. 충격요법을 주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 일들, 아니 관심조차 가져주지 않는 일들도 있으니까. 그리고 모든 혁명이 타오르는 불꽃으로 시작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과격할 수는 없다. 그 힘은 실로 파괴적이라 그만큼의 부작용도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가장 무섭고 강력한 힘은 균형에서 나온다. 시도 때도 없이 화를 내는 사람보다 평온함을 유지하던 사람이 화를 낼 때가 훨씬 무섭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그의 화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분주해질 것이다. 그가 균형 잡힌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 사건은 그 균형을 무너뜨릴만큼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김언희의 시는 파괴적이나, 정말 파괴해야할 것을 부수지 못한다. 하지만 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어짜피 그 파괴는 한 개인이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러나 누군가는 분명 해야할 일이다. 과격함이 필요한 시기는 언제나 찾아오니까. 모든 것을 해낼 수는 없으나 누군가는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켜야한다. 다시 그런 점에서 김언희의 시는 계속 존재할 이유가 충분하다.

     

다만, 그 파괴의 칼이 조금은 더 날카로웠으면 좋겠다. 그 칼이 정말 무언가를 찌르고 벨 수 있도록. 그리하여 선이 악을 이기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파멸해야 할 것들이 정말 파멸할 수 있도록.     


     

시집 하이라이트     


나도 아니까 이제 아니까 시를 쓰지 않는 긍지를.     


p.17 시로 여는 아침 中                         





한줄평

심신이 미약한 사람은 읽지 마십시오.


평점 이유


뭉뚝한 불쾌함은 불편하기만 한데 그칠 수 있다. 날이 선 칼만이 악한 자를 파멸로 이르게 할 수 있다. 섣부른 화는 화를 부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할 일을 해주고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독서 소요 기간


2주 이상

시간을 두고 읽지 않으면 마음을 다칠 수 있음을 염두하고 읽을 것.


추천 대상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파괴뿐. 세상을 향한 불만을 표출하고 싶은 이라면 도움이 될지도. 정말로 추천하고 싶은 대상은 요지경인 세상에 어떤 불편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

매거진의 이전글 지용시선 세 번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