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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용 Jan 07. 2023

SF의 세계가 내려와 일상에 닿는다

오정연, 『단어가 내려온다』(허블, 2021)

SF의 세계와 일상이란 모습


일상은 반복적이고 소소한 삶에 주목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무의미하거나 가치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특히 사회가 복잡한 형태로 발전하면서 일상은 역설적으로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의 일상성을 이야기했던 르페브르(Henri Lefebvre)는 일상성이 가지는 생산 활동의 재생산과 재시작의 변화 모습들이 현대성을 만들어내는 요소라고도 했다. 그러기 때문에 일상성에 대한 담론들은 단순히 소소하고 무의미한 반복되는 행위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의미들을 만들어내면서 현대사회에서 자리매김해 왔다. 또한 일상이 예술작품 등을 통해 형상화되는 과정에서 합리주의적 문화의 어떠한 단절을 맞닥뜨리게 함으로써 사회구조의 부조리한 환각을 극복할 수 있는 시도들로 이어지기도 했다.


(중략)


그리고 현대 한국 SF들은 이러한 일상성을 통해 세계의 문제들에 진입하는 방법론들을 반복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보여진다. 소프트하다는 평가 혹은 인간 냄새가 난다거나 구조적인 문제들을 개인적인 연대와 관계 등으로 풀어낸다는 일련의 감상들은 이러한 방법론들에 대한  인식의 결과일 수 있다. 그런데 방법론들은 오히려 SF가 현대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능동적으로 모색하는 것의 증명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일상성의 형상화는 수용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오히려 구조적으로 은폐되어 있는 부분들을 드러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SF에서 보여주는 일상성의 형상화를 통한 메시지 전달은 이후로도 새로운 의미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거대한 구조속에서의 헤게모니 단위의 힘이 약동하는 방식의 문제 해결만으로는 우리의 삶이 바뀔 수 없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일상을 통해 질문하는 정체성의 문제


(중략)


또 다른 작품인 「단어가 내려온다」는 오정연이 보여주는 SF적 세계의 개성을 한껏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국어학 SF’라는 분류를 스스로 한 이 작품은 언어 자체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사고실험들이 흥미롭게 개진된다. 배명훈 작가에 대한 언급이 작가의 말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차카타파의 열망으로」가 생각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차카타파의 열망으로」 역시 언어가 가지고 있는 인식의 문제를 포착하고, 이를 흥미로운 설정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하지만 「단어가 내려온다」는 단순히 한국어 자체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언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들에 대한 확장을 통해 좀 더 폭넓게 사고실험 하면서 언어를 통해 형성되는 정체성의 문제들 역시 사고실험 하는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에서는 만 15세 즈음, 사람들에게 단어가 갑자기 턱하고 내리는 지학(志學)이라는 현상이 등장한다. 이것은 그 사람의 인생뿐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구조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요한 현상이다. 실제 그것이 그러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에 대한 명확하고 논리적인 증명은 되지 않았지만, 세간의 소문들과 사람들의 인식은 그것을 완전한 사실과 논리로 만들어 버린 세계인 것이다. 소설 속의 세계는 언어와 세계의 구성에 대한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의 사고실험들이 현실화 되어있는 세계이기도 하며, SF에서 종종 사용되었던 ‘사피어 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의 형상화된 세계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이 세계의 흥미와 함께 큰 균열을 야기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이 글은 포스텍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의 웹진 《크로스로드》2023년 1월호(통권208호) "SF-Review"섹션에 실렸습니다. 전문은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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