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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SF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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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용 Jul 02. 2022

지구종(種)의 세계를 꿈꾸며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과 트러블과 함께하기

SF에서의 이야기의 주체들


우리가 접하는 이야기는 결국 인간이 만들고, 인간들이 소비한다. 그러기 때문에 이야기에서 인간은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다. 하지만 근대 이후로 ‘인간중심적’인 사고방식과 그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부조리들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현대에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사고실험들이 이뤄지고 있다. 이야기 또한 예외가 아니었는데, 그중에서도 SF는 이러한 시도에 언제나 밀접하게 관여하고 있었다. 이 지구에서 더 이상 인간만이 의미 있는 존재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지구 상의 모든 개체들이 하나로 어우러져서 벽을 허물고 새롭게 정의되는 존재에 대한 새로운 정의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았을 때 SF 텍스트가 기존의 차가운 금속 재질의 비생물 느낌으로 대표되고, 기술만능주의와 비인간적인 것에 대한 우려를 보여주던 것에서 최근 ‘인간 냄새나는’ 혹은 ‘휴머니즘적인’이라는 언표로 설명되곤 하는 이유를 새롭게 이해해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간 냄새와 휴머니즘은 이전까지 신봉하던 의미 있는 존재로서의 현생인류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다양한 행위자들이 상호 연관성을 가지면서 어우러진 모습을 의미한다. 거기에는 종의 구분도 없고, 주체에 대한 위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그러한 의미의 최상위에 존재하던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가치 판단들을 배제하려는 움직임들이 오히려 강조된다.


식물-인간-기술들의 세계


결국 인류가 모스바나와 함께 공진화하는 형태로 재난적 상황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좀 더 흥미로운 지점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기술의 활용 혹은 개입을 수행한 것 역시 이러한 공진화의 영역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캐서린 헤일즈는 공진화를 설명하면서 단지 유전자에 의해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과 신경을 구성하는 문화와도 관계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기 때문에 유기체와 기계 간의 구분이 해체되고, 다양한 종이 주체성을 가지고 기존의 인류와 함께 존재하는 것에 대한 가치들이 중시될 것이라 예견했다. 또한 질베르 시몽동은 이를 통해 개체초월적 집단화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능동적이고 전-개체적인 에너지를 강조했는데, 『지구 끝의 온실』에서 보여주는 인간과 모스바나의 공진화가 바로 이러한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소설이 보여주는 유토피아적 지향점은 식물-인간-기술을 연결하는 다양한 개체들이 ‘서로 함께-되기’를 수행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지구종(種)의 세계에서 트러블과 함께하기


서로 함께-되기는 도나 해러웨이가 이야기한 트러블과 함께하기의 맥락과 닿아 있는데, 김초엽의 소설 『지구 끝의 온실』도 마찬가지이다. 해러웨이는 인류세의 시대 담론의 한계들을 지적하면서 모든 것들이 서로 뒤엉켜 있고 그것에 반응하면서 관계 맺고 살아가는 개념의 중요성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종들 간의 구분이나 우위도 존재하지 않고 퇴비 더미와 같이 하나의 거대한 군집을 이루어 그 안에서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트러블들을 마땅히 감내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에서 더스트로 인해서 멸망한 세상에서의 생존의 가능성도 이와 같은 모습들에서 발생한다. 특히 모스바나와 보여주는 종을 초월한 변화와 진화의 과정은 트러블과 함께하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에 대한 일종의 표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이 소설이 팬데믹을 지나면서 발표되었다는 것은 시대적인 상황에 비추어 보았을 때 주목해 볼만하다. 팬데믹은 결국 인간이 자연과의 관계 맺기에 실패하면서 발생한 전 지구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바이러스와 인간의 새로운 관계 맺기에 대한 시도는 2년 여 동안 계속되었고 그 사이에 우리는 우리들의 삶의 방식과 방향이 이전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달라진 방향에는 바이러스를 비롯한 수많은 지구 상의 개체들과 우리가 밀접하게 관계 맺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러한 방법들을 새롭게 점검해 보아야 한다는 인식들이 포함된다. 이러한 현실에서 『지구 끝의 온실』은 그러한 관계 맺기 방법을 SF적 상상력과 경이감의 세계를 통해 보여준 훌륭한 사고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포스텍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의 웹진 《크로스로드》2022년 7월호(통권 202호) "SF-Review"섹션에 실렸습니다. 챕터별 일부를 여기에 옮겼고, 전문은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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