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예창작학회 제31회 학술세미나 "문예창작의 외포와 내연" 발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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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르문학의 정의와 접근 방법의 문제
‘장르문학(genre literature)’이라는 단어는 1990년대부터 언급되고 나서, 2000년대에 들어서는 기존에 사용하던 통속문학(通俗文學)이나 대중문학(大衆文學)과 같은 용어들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이는 상당히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는데, 대중문학이 단어가 가지고 있는 함의처럼 독자에게 수용되는 형태에 가치 판단의 기준이 경도되어 있던데 비해, 장르문학은 각각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 좀 더 의미를 부여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대중문학에 대한 이론들은 그람시(Antonio Gramsci)가 규정하는 대중의 정의1)로부터 담론 발전을 적극적으로 꾀하지 않았다. 때문에 윌리엄스(Raymond Williams)에 와서 대중의 개념이 수동적인 우중(愚衆)에서 사회 변혁의 주체적인 측면을 담당한다고 정의되고, 이러한 모습들이 문화예술 영역에도 그래도 적용되어 대중이 주도하는 문화예술의 양상들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론적인 변화는 크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때문에 담론의 진행이 지체된 용어에서 벗어나 작품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 대해서 견지할 수 있는 장르문학으로의 용어 전환은 급진적이긴 해도 이전의 곡해된 개념들을 전환하기에 효율적인 방법론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용어의 변화에 비해 이론적이고 학술적인 측면에서의 장르문학에 대한 담론의 진행은 이제껏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로도 장르문학에 대한 연구들이 드물게 등장하기는 했지만 대중문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때와의 차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장르문학이 가지고 있는 용어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게 정의되어 이전과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장르문학에 대한 정의는 조성면이 언급한 “고유한 서사규칙과 관습화한 특징들이 있어서 독자들에게 별다른 정보가 제시되지 않고 또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누구든지 책을 펼쳐드는 순간 그것이 어떤 장르에 해당되는지 알게 되는 작품”2)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수많은 에피고낸(epigonen)을 탄생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코드”3)라는 장르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 정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이해를 좀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장르’가 가지고 의미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보충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장르문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장르의 의미가 기존의 문학의 갈래를 분류하는데 사용되었던 ‘역사, 사회적 맥락을 내포한 양식의 하위 갈래’라는 개념이 아니라 ‘플롯이나 캐릭터, 세트, 촬영기법, 주제 등이 관객들에게 즉각적으로 인지될 수 있는 관습(conversation)으로 나타나는 특성’을 일컫는 영화의 장르적 개념에 수렴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정보들을 정리하여 장르문학은 ‘수많은 에피고낸을 탄생시킬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가진 코드들이 관습화되어 나타나고 있어, 작품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수용자들에게 그 특성이 인지될 수 있는 문학의 형태’4) 정도로 정의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장르문학에 속한 텍스트들을 아우르는데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용어에 대한 정의들이 해결된 다음에도 장르문학에 대해 학술적이고 이론적인 접근을 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장르문학의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장르를 결정하는, 각 장르에 해당하는 관습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르문학에서 관습화된 코드들이 독자들에게 수용되기 용이하다는 특성을 지닌다면, 이러한 코드들이 형상화되는 형태가 텍스트의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이는 본격문학에서 일반적으로 작품의 가치를 판단할 때 견지하지 않던 부분이며, 대중문학이라고 정의되었을 때도 역시 고려하지 않던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각 장르와 하위분류의 세부적인 관습적 특성까지는 면밀히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로맨스, 역사허구물, 추리, SF, 판타지, 코미디, 무협 등의 명확한 특징을 가지고 크게 분류되고 있는 장르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게 규정하여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서사적 특성을 파악한다면 텍스트의 분석과 아울러 창작방법론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5)
2. 장르문학의 창작방법론적 특성
장르문학은 용어의 정의에서 도출되는 것과 같이 관습화된 코드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관습화된 코드라는 것은 다시 말하면 일정한 창작방법이 정형화되어있다는 말로 달리 해석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장르문학의 관습성은 오랜 시간동안 장르문학 텍스트들의 미학적 가치를 폄하하는 기제로 작용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관습적인 코드를 비판적 수용 없이 미메시스(mimēsis)한다는 것은 도식성으로 흐르기 쉬우며, 이러한 작품들의 경우 문학이 미학적 가치를 습득하는데 기본적으로 작용하는 낯설게 하기에도 벗어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예술의 본질적인 측면에서의 가치인 창의력, 즉 전통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본류로 삼아 혁신을 추구하는 활동에 반하는 것이 된다. 때문에 관습화된 코드가 형상화된 작품이라는 말은 기존의 문학이론 영역에서 파악하면, 클리셰(cliché)를 빈번하게 활용해 미학적인 가치를 획득하기 어려운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과 다름없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관습화된 코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특정한 주제와 캐릭터, 혹은 세계관을 활용하여 이야기를 구성하는 안정적인 창작방법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습작을 하면서 기존의 작품에서 드러난 방법론을 모사한다거나, 필사 등을 통해 비교적 안정적으로 구현되어 있는 문체와 구성에 대한 연습을 하는 것은 지난 시간동안 반복적으로 활용되어 오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해당 방법론에 대한 유용성과 지속성, 의미획득의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이러한 방법론의 활용은 기본적으로 서사가 지닌 일정한 구조를 파악하고 체감할 수 있는 방법론이 된다. 장르문학이 가지고 있는 관습화된 코드들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에피고낸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서사가 가지고 있는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이는 완성된 창작자에게는 과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연습이 필요한 학생들에게는 그 유용성을 무시할 수만은 없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장르문학의 관습적 코드들은 장르문학에 속해있는 대표적인 장르들이 각각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갈래를 형성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면 알 수 있다. 때문에 장르문학에 가치를 부여하고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관습화 되어있는, 그래서 명확하게 드러나는 창작방법론에 대한 분석이 일차적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방법론의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서사를 분석하던 방식보다는 장르문학 전반에 걸쳐서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는 특징인 텍스트 간의 상호연관성과 그 결과로 축적된 데이터베이스 활용의 양태6)를 파악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본의 이론가인 아즈마 히로키가 언급한 데이터베이스 소비 이론은 문화예술 창작이 기존의 이야기 소비 구조와는 다르게 “리얼리즘의 의식이 희박해 원작 작품조차도 선행 작품의 모방이나 인용”을 통해 이뤄지고, “현실 세계를 참조하지 않고 처음부터 선행 작품의 시뮬라크르로서 원작이 만들어자고, 나아가 그 시뮬라크르의 시뮬라크르가 증식되고 소비된다”7)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가 언급한 데이터베이스 소비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디지털콘텐츠 등에 한정되는 것이었지만 이러한 양상은 해당 매체들의 서사로 폭넓게 자리하고 있는 장르문학 텍스트들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되는 부분이다. 그러기 때문에 해당 이론의 적용을 통해 장르문학이 가지고 있는 텍스트의 형태적 특징을 밝히고, 학술적으로 분석해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가능해 진다.8)
데이터베이스 활용 이론을 풀어서 대입해 보면, 장르문학에 속해 있는 텍스트들은 장르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른바 정전(conon)을 통해 형성된 커다란 이야기의 요소들을 활용하는 특징을 보인다. 아즈마 히로키의 표현을 빌리면 '커다란 비 이야기'의 활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세계관을 축조하여 이이야기를 전개해야 하는 SF나 판타지 서사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판타지의 경우 기존의 환상 서사와의 차별점을 명확하게 획득하고 있는 부분이 톨킨(J.R.R Tolkin)의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을 커다란 이야기로 상정하면서부터이고, 이렇게 성립된 커다란 이야기는 톨킨과 함께 소위 3대 판타지 작가라고 불리는 루이스(C.S Lewis)나 르귄(Ursula K. Le Guin)에 의해 확장되고 보충(supplément)되었다. 판타지의 이러한 정전 확장은 2000년대 들어 롤링(J.K Rowling) '해리포터(Harry Porter)' 시리즈들이 나오면서 또 한번의 확장과 보충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는 SF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며, SF의 경우 커다란 이야기의 등장으로 형성된 커다란 비이야기의 확장은 하위장르의 생성과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장르에서 견지할 수 있는 영역의 확장까지도 유도한다.
이렇게 확장된 커다란 이야기는 다시 이전보다 더 많은 에피고낸을 양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립하면서 다양한 시뮬라크르들을 생산해내고 있다. 또한 커다란 이야기의 지속적인 확장, 즉 소비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의 확장은 이를 활용해 구성되는 작은 이야기들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고, 이렇게 확보된 다양성은 결국 또 다른 정전의 탄생을 기대할 수 있는 확률적인 가능성을 높여준다. SF작가이자 이론가였던 시어도어 스터전이 “SF의 90퍼센트는 쓰레기들이다. 하지만 모든 것의 90퍼센트도 쓰레기들이다.”라고 도발적으로 이야기한 것은 이전시기에도 유의미한 것이었지만, 콘텐츠의 생산과 소비가 빈번해지고 그 사이클이 빨라진 현대에는 그 의미를 간과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이제까지 창작을 교육하거나 창작물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데 있어서 오히려 터부시 해왔던 부분이다. 작가 개인의 고유한 경험과 그를 개성적으로 구현화하는 것을 창작의 가장 높은 의미로 여기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정전으로 여겨지는 작품에서 구현된 요소를 활용하여 작품을 구성한다는 것은 전통적으로 규정하던 창작의 개념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작품의 구성 방법들은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부분이고, 또한 시대적으로 그 필요성이 점점 확대되고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아즈마 히로키는 “문화의 작품은 근대적인 한 사람의 작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와 같은 무수한 모방이나 표절의 연쇄 속에서 생겨나고 있는 셈이다.”9)라고 이야기 했고, 그와 함께 데이터베이스 소비 이론에 대한 담론을 이끌고 있는 오스카 에이지의 경우에는 “어떤 창작물도 결코 독창적일 수 없다.”고 이야기하면서 “창작에서 중요한 건 얼마나 베낄 것인가 하는 기술이다”라고까지 과격하게 표현하기도 한다.10)
장르문학은 결국 포스트모던 시대에 소비에 중점을 두고 구성되는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기존의 서사창작 방법론에서 지양하고 있던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론을 통해 현재 수많은 서사들이 생산되고, 또 빠르게 소비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이렇게 다양한 층위에서 발생하는 창작방법론들에 대한 명확한 가치판단과 그 구성요소들의 대한 면밀한 분석은 대학교육을 통해 전공영역에서 창작을 교육해야 한다는 시각에서 접근했을 때 이전까지와는 다른 의미를 제시할 수도 있다.
3. 장르문학을 활용한 창작 수업의 유용성
창작이 전공수업을 통해서 학습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이전부터 계속되어온 지난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문예창작과 등에서의 수업 실제를 통해 체계적인 교육으로 얻을 수 있는 성과적인 부분들이 증명되었고, 이를 좀 더 효율적으로 구조화하고 체계화하기 위한 노력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것은 강상대11)와 김성렬12)과 나소정13) 등이 있는데 이 중에서 가장 최근에 해당 담론을 정리한 나소정의 연구는 현재 한국 창작교육의 현실과 이후로 견지해야 할 지평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나소정은 “소설을 창작하는 경험의 구조화는 곧 소설을 이해하는 과정의 구조화와 맞물려 있으며, 둘은 상보적인 관계로 맺어져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보다 발전적인 공존을 모색해야 할 것”14)이라고 그 현황에 대한 해결지점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해결지점이 구체화되는 방법론중 하나로 ‘디지털 서사’15)의 구현과 활용성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장르문학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베이스 소비라는 창작방법론적 특징은 더 이상 기존의 창작방법론과의 차이를 이유로, 창작 수업에서 활용하는데 터부시해야 할 지점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장르문학에서 커다란 이야기들을 구성하는 요소, 즉 장르의 형성이 가능하게 하는 창작방법론적 특징은 기존의 서사창작에서 방법론으로 제시되었던 것들과 다르지 않다는데서 창작방법론 교육으로서의 유용성을 가진다. 예를 들어, 조셉 캠벨이 주창하고 보글러가 정리한 영웅 서사의 12단계와 같은 요소들은 이제는 서사를 분석하고 창작하는데 일반적인 방법론이 되었다. 이러한 이론들이 그 의미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수용의 유용성에 대한 부분을 언급하는데, 장르문학 역시 이와 같은 층위와 상당수의 텍스트에서 마찬가지로 영웅의 12단계를 구조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이론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장르문학의 관습적 특성들은 장르문학만이 활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서사 전반에서 도출된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장르문학은 그러한 특징들 중 일부를 서사의 전반적 특징으로 활용하여 관습화 시킨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부분들을 좀 더 살펴보면, 로맨스 장르의 특징은 사랑으로 총칭되는 감정이 인물들 간의 심경의 변화와 사건의 흐름을 통해 구현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로맨스 장르뿐만 아니라 소설 전반에 걸쳐서 드러나고 있는 특징이며, 이러한 요소들이 정형화 되어있는 로맨스 서사를 이해하고 이를 창작에 활용한다는 것은 창작자가 해당 요소를 내제화 할 수 있는 유용한 방법론이 될 수 있다. 추리서사가 독자들의 추지를 유도하기 위해서 사건의 배열을 특정한 공식에 의해 배열한다거나, 서스펜스 효과를 얻기 위해 적절한 위치에서 복선을 제시하는 방법을 그대로 모사하여 작품을 구성한다는 것 또한 기존의 서사가 활용하고 있던 기술적인 부분을 연습할 수 있는 좋은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SF나 판타지, 무협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를 구성하고 이를 활용해 이야기를 전개할 때 서사 구조 내에서 확립해야 하는 핍진성을 이론적인 탐구와 아울러 실제 구현해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지점들을 제시한다. 역사허구물의 경우, 전사에 대한 접근이나, 전사에서 제시되는 소재들을 활용하기 위해 방대한 역사적 사료들에 대한 취재와 자료검토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해당 장르에 속해 있는 텍스트에 대한 분석과 창작실제를 진행하면서 소설 창작의 기본이 되나, 실제 창작 교육에서 견지하기 쉽지 않은 자료조사와 취재 영역에 대한 연습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다.
또한 현재 전통적인 문학보다 장르문학이나 이를 기반으로 하는 콘텐츠들에 대한 경험이 더 익숙한 세대들에게 서사 창작을 교육하는데 있어서 이러한 지점들의 견지는 생각보다 더 효율적이다. 전통적인 영역에서의 문학이나 서사들에 대한 경험이나 애착이 이전에 비해 덜한 세대들에게 익숙한 구조의 서사방식과 관습들을 통해서 서사 전반에 대한 창작 방법을 교육한다는 것은 세대가 가지고 있는 개성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함양하는데 도움이 된다. 실제, 수업시간에 이러한 부분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기존에 문학적인 개성이 두드러지지 않는다고 여겨졌던 학생들 가운데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들을 볼 수 있다. 이는 본격문학을 지향하고 있는 학생들보다, 방송이나 영화, 게임 등의 영역에 대한 관심이나 진로를 희망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더 명징하게 나타나는 부분이다. 문예창작과에서 순수문학 이외에도 이러한 다양한 분야의 창작 실제들을 가르치고 있고, 이후로도 이러한 영역에 대한 필요성이 확장될 것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장르문학은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파악하는데서도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현 시대에 문학과 그 문학을 창작한다는 것이 이전시대에서 견지했던 전통적인 텍스트 창작을 지칭하는 것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언어 표기의 속도와 언어를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는 속도가 문명과 문화의 발전 속도와 비례”16)한다고 했을 때 전통적인 언어의 가치도 변화하고 있다. 이는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가치의 성립체계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뜻하며, 이를 통해 볼 때 “전통적인 미학적 가치로서의 ‘문학성’과 디지털 언어와 환경이 변화시킨 ‘문학성’을 균등하게 바라보는 시각”17)의 필요성은 우리 세대가 정립해야 할 필수적인 과제와 같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디지털 시대의 확장된 이야기 창작 개념, 즉 스토리텔링 교육을 진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트랜스 미디어(tran-media)에 대한 영역인데, 변환되는 매체에 대한 구조적인 이해가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존의 서사방법론으로 서사의 완성도나 가능성에 대해 파악하는 것은 부적합한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장르라는 관습적인 코드는 수용자 입장에서 보았을 때 미디어의 완성도나 가치를 규정하는 중요한 잣대이다. 그리고 이러한 코드는 매체 변환시에도 그 의미의 변화가 최소화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는 트랜스 미디어 시대에 원소스로서 혹은 타 미디어에서 변환된 텍스트에 대한 가치판단 방법을 확립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장르문학에 대한 이해와 이를 통해 드러난 창작방법론들을 적극적으로 창작 수업에 활용하는 것은 이러한 지점들에 대한 탐구를 실질적으로 현상화하며, 아울러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선순환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는데서도 의미 있는 작업이다. 이러한 방법론 변화는 문예창작 교육이 지향해야 한다고 제시된 ‘인문성’, ‘전문성’, ‘실용성’18)을 시대의 흐름에 맞게 충족하는데 중요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창작 수업에서 장르문학 텍스트들에 대한 이해를 견지하고, 이를 필요에 맞게 활용하는 것은 현 시대의 서사 텍스트들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이후로 담론들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 그람시는 그의 저서에서 대중의 개념과 대중문학의 개념에 대해 정의하면서 당대에 대중문학이 현대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모습은 범죄와 추리소설뿐이고 그 중에서 볼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평가했다. (안토니오 그람시, 박상진 역, 『대중문학론』, 책세상, 2005, 42-46쪽 참조.) 뿐만 아니라 대중소설의 한 모습으로 연재소설의 형태를 지칭하면서, 연재소설을 통해 대중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해속하는 일종의 장치로 활용하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대중들의 열등감에서부터 비롯된 것이고 이러한 열등감의 표출로 인해 대중들의 악감정을 달래고 누그러뜨리는 마취제와 같다고 이야기 했다. (위의 책, 75쪽 참조.) 이와 같은 대중과 대중문학에 대한 정의들은 거대담론의 시기를 오래도록 지나왔어야 할 한국에서 대중문학이 그 의미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게 하는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거대담론의 시대에 대중문학의 독자 수용성과 흥미위주의 서사들이 터부시 되었던 것은 저항을 위해 응축해야 하는 대중의 에너지를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들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은 한국에서 대중문학의 가치에 대한 재고가 일어나는 것이 거대담론의 시기를 벗어나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부터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구조가 고도의 소비사회로 전환되고, 멀티미디어와 네트워크의 비약적인 발전이라는 문화예{술 소비 디바이스의 구조적인 변화의 요인도 간과할 수 없지만, 사회적인 층위에서는 이러한 담론의 변화가 결정적이었던 걸로 보인다.
2) 조성면, 『경계를 넘고 간극을 메우며 - 장르문학과 문학비평』, 깊은샘, 2009, 109쪽.
3) 우지연, 「꿈꾸는 세계가 있느 자만이 장르를 지지한」다, 『북페템』 제5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4, 40쪽.
4) 이는 기존에 규정된 조성면의 정의를 거의 그대로 따르는 것이지만, 해당 정의에서 언급된 "책을 펼쳐들자 마자"라는 즉각성의 부각이 장르간의 혼종 양상이 뚜렷한 특징으로 나타나, 슬림스트림(slipstream)화 되어가고 있는 현대의 장르문학 텍스트를 정의하는데 다소 부담된다. 때문에 즉각성에 대한 내용들을 완화하면서, 관습화된 코드를 내포하고 있어서 수용자가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이 없다라는 의미로 조정을 하는 것이 장르문학을 규정하는데 좀 더 용이한 지점이라고 여겨진다.
5) 장르문학에 속하는 장르들의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에 대해선 아직 학술적인 논의가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만, 대중서사장르연구회에서 2007년부터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시리즈를 발간했는데, 이를 통해 구분하고 있는 장르는 ‘멜로드라마’(2007), ‘역사허구물’(2009). ‘추리물’(2011), ‘코미디’(2013), ‘환상물’(2016, 이상 출판연도)이다. 2016년에 발간된 환상물을 끝으로 발간작업이 마무리 되었으며, 환상물에는 SF와 판타지, 공포물 등이 포함되어 있다. 때문에 현재 한국에서 학술적인 논의를 시작하는데 용이한 장르는 해당 간행물에서의 구분을 따르는 것이 용이하다. 다만, 한국의 장르문학을 설명할 때 무협(武俠)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무협에 대한 언급을 추가하였다.
6) 최수웅, 「판타지 장르서사의 가치와 창작방법론 연구」, ⟪한국문예창작⟫ 제14권 제1호, 한국문예창작학회, 2015, 87쪽 참조.
7) 아즈마 히로키, 이은미 역,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문학동네, 2007, 57쪽 참조.
8) 최수웅, 앞의 글, 88쪽 참조.
9) 아즈마 히로키, 앞의 책, 57쪽.
10) 오쓰카 에이지, 김성민 역, 『캐릭터 소설 쓰는 법』, 북바이북, 2013, 43쪽. (물론 여기서 언급한 “어떤 창작물도”라는 말은 순수문학 작품에 해당되기 보다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과 같은 서사를 가진 콘텐츠 전반을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 주.)
11) 강상대, 「대학교 소설창작 교육의 방법론」, ⟪동양학⟫ 제35집,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2004, 107-124쪽.
12) 김성렬, 「문예창작교육의 현황과 전망」, ⟪한국문예창작⟫ 제1호, 한국문예창작학회, 2002, 219-237쪽.
13) 나소정, 「문예창작교육론의 구조적 지형과 논점 - 소설창작교육론을 중심으로」, ⟪한국문예창작⟫ 제10권 제3호, 한국문예창작학회, 2011, 133-163쪽.
14) 위의 글, 21쪽.
15) 여기서 언급한 ‘디지털 서사’는 서사와 정보환경과의 관련성, 하이퍼텍스트 서사, 멀티미디어 서사, 인터랙티브 서사 등을 총칭하는 말이다. (위의 글, 154쪽 참조.)
16) 정기철, 「다지털문화시대의 문예창작, 문예창작학과」, ⟪한국문예창작⟫ 제6권 제2호, 한국문예창작학회, 2007, 351쪽.
17) 위의 글, 360쪽.
18) 강상대, 「디지털 스토리텔링 창작 연구」, ⟪한국문예창작⟫ 제6권 제1호, 한국문예창작학회, 2007, 21~22쪽 참조.
참고문헌
조성면, 『경계를 넘고 간극을 메우며 – 장르문학과 문학비평』, 깊은샘, 2009.
아즈마 히로키, 이은미 역,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문학동네, 2007.
안토니오 그람시, 박상진 역, 『대중 문학론』, 책세상, 2005.
오쓰카 에이지, 김성민 역, 『캐릭터 소설 쓰는 법』, 북바이북, 2013.
강상대, 「대학교 소설창작 교육의 방법론」, ⟪동양학⟫ 제35집,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2004, 107-124쪽.
_____, 「디지털 스토리텔링 창작 연구」, ⟪한국문예창작⟫ 제6권 제1호, 한국문예창작학회, 2007, 7-40쪽.
김성렬, 「문예창작교육의 현황과 전망」, ⟪한국문예창작⟫ 제1호, 한국문예창작학회, 2002, 219-2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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