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에 대한 새로운 인지 방식
매체의 발달은 인지 방법(embodied cognition)을 바꾼다. 문자 중심으로 정보를 수용했던 시대가 영상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문자 역시 ‘읽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새로운 인지 경험들은 새로운 의미들을 만들어 낸다. 이를 특정한 구성원 내에서 의미를 은폐하기 위해 사용하는 은어와 같이 여기기도 하지만 새로운 인지 방식을 탄생시킨 매체를 적극적으로 유용한 계층에게서 먼저 나타난 현상일 뿐이다. 그러기 때문에 줄임말, 초성 표기, 이모티콘이나, 야민정음과 같은 현상들은 이전의 은어나 격이 낮은 비속어와는 맥락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매체의 발달로 인해 나타난 새로운 인지 경험이 만들어 낸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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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재의 새로운 언어 형태들은 문자가 가지고 있는 시각적인 기호를 해체하고 재정의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언어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법칙들과 그것들 위에 구축된 사회적 구조에 대한 일종의 부정과 개성적인 변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글에 대한 모독이나 폄하에 의한 훼손의 행태를 내포한 결과인가 하면 오히려 그 반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글의 새로운 조어 방식들은 한글의 자음과 모음 체계를 오히려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가운데서 발생한 유희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한글의 우수성이나 전통성이라는 유토피아를 끊임없이 제시하는 제도권의 모습과 문자의 사용 환경이나 텍스트 중심 시대의 종식 등의 급격한 변화의 위협적인 디스토피아 사이에서 나타나게 된 일종의 헤테로토피아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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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새로운 조어 형태들이 가지고 있는 은어적 속성들은 우려스러운 부분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타자를 대상화하거나 낮잡는 의미들이 새로운 형태로 조형되면서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판단들을 우회하는 방식으로 활용되는 예는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언어 형태에 의해 나타난 현상이라기보다는 언어 사용자와 새로운 형태에 대한 사회적 이해의 부족 뒤에 숨어 은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조어 형태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사회적인 관심을 통해서 의미들을 왜곡하여 은폐할 수 없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해체와 재맥락화를 통해 부여된 의미에 대해 사용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교육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한글 조어법들에 대해 경직된 기준에 의한 판단보다는 오히려 정확한 비평, 즉 정체를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변화하게 될 미래의 언어 환경에서 오히려 지금보다 더 큰 한글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원고는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제59호(2018.6)의 '한글 나누기2'에 실린 글입니다. 링크를 통해 전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