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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윤 JiYoon Park Oct 31. 2018

멀고도 가까운 이름, 우리

영화  <한낮의 우리>

*본인이 편집진·필진으로 참여했던 매거진 '세컨드' 3호 <엄청나게 큰 것의 반대>에 실린 리뷰입니다.


나를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 ‘멀리’ 떠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익숙했던 기존의 관계에 남은 거라곤 의무감이라는 껍데기뿐일 때,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어진다. 멀고 낯선 미지의 어딘가는 그늘이라는 구원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싶기 때문일까. 가까운 관계일수록 서로를 이해한다고 착각하기 쉽다. 가깝다는 근거로 책임과 희생을 강요하면서, 가깝다는 핑계로 시시각각 변하는 서로의 상황과 감정을 헤아리기는 어렵다. 그래서 관계가 짐이 되어 ‘우리’라는 이름이 무거워질 때면,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먼 곳’이 필요하다.


‹한낮의 우리›(2016)의 주인공 진주(문혜인) 역시 ‘멀리’ 떠나고 싶다. 한국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가고 싶은 진주는 나레이터 모델로 일하며 차곡차곡 돈을 모은다. 몸매가 부각되는 옷을 입고 에어 간판 옆에 서서 익명의 행인들을 향해 춤추는 낮이 지나면, 밤에는 시간을 쪼개어 파리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프랑스어 단어를 외우고, 서점에 쪼그려 앉아 사지 않을 여행 책자를 읽는다.


치열한 하루가 끝났지만, 그 하루의 이야기를 공유할 사람은 없다. 중학생 동생과는 말 섞기는커녕 눈인사조차 하지 않고, 술에 취해 널브러진 아빠는 없는 게 차라리 나을 정도로 걸리적거릴 뿐. 혹여나 그들이 자기 돈을 가져갈까 봐 방문을 걸어 잠그고 집을 나서기도 한다. 기생충이 되어버린 가족을, 그녀는 이미 마음속에서 죽여버린 듯하다.


가고 싶은 곳을 빼곡히 적은 파리의 지도가 붙은 작은방을 유일한 피난처 삼아 떠날 날만을 기다리던 진주는, 동생이 반 친구를 때렸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동생 때문에 팔을 다친 아이 도이(이민선)를 찾아가자 아이의 아빠는 합의 전에 돈부터 가져오라 한다. 진주는 악에 받친 채 동생을 걷어차면서 “니 알아서 해결해라. 그냥 가족없다고 하라고”라며 소리치지만, 그렇다고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 동생을 차마 버리지도 못한다. 그토록 힘겹게 모은 돈을, 진주는 자신을 위해 지킬 수 있을까.

영화  <한낮의 우리>


나레이터 모델인 진주에게 춤은 곧 노동이다. 얼굴 근육을 잔뜩 끌어올려 미소를 지으며 춤을 추고, 무심히 지나치는 행인들에게 친절히 전단지를 건네기도 한다. 진주는 춤을 무척 좋아하지만, 노동으로써의 춤에는 자신의 고단한 마음이 눈곱만큼도 반영되지 못한다. 그래서 그나마 믿었던 엄마에게 마저 도움을 요청하기가 어려워 도저히 기댈 곳이 없게 됐을 땐 지하의 노래방으로 향한다. 건조한 얼굴로 최소한의 표정만 짓던 진주가 혼자 소파 위를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르는 풍경은, 고통을 견디기 위한 언어의 발화로 보인다. 미안한 듯 집 대문 앞을 서성이는 동생을 바라본 뒤 옥상에서 춤을 출 때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보지 않고 듣지 않지만, 곧 픽 쓰러질 것처럼 위태롭게 이어지는 춤은 진주가 계속 숨 쉴 수 있게 하는 아가미다.


하지만 그 언어를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은 없다. 파리로 떠나려는 진주의 발목을 잡은 동생도, 술에 취해 방문을 두드리는 아빠도, 전에 빌려 간 백만 원을 아직 안 갚은 전 남자친구도, 오랜만에 만난 딸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냐고 묻는 엄마까지. 그들은 진주의 춤이 말하는 걸 제대로 듣지 못한다. “니는 다리가 예뻐서 인기 많을 텐데. 돈도 많이 받고”라 말하는 엄마에게 진주의 춤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한 꽤 적절한 수단으로 보이는 듯하다.


독백이 되어버린 진주의 춤을 처음으로 제대로 바라봐 주는 사람은 진주의 동생 때문에 병원 신세를 지게 된 도이다. 자기 적금을 포기할 결심으로 다시 병원을 찾은 진주는, 팔에 깁스를 하고 환자복을 입은 채 병실에서 춤추는 도이를 우연히 보게 된다. 음악은 도이가 귀에 꽂은 이어폰으로만 흘러들어가기에 그 춤은 아주 고요해 보인다. 하지만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자기 춤에 신나게 빠져있는 도이를 보며, 진주는 처음으로 자기 내면에 근거한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결국 파리로 떠나기 위해 모은 돈을 동생을 위해 쓴 뒤, 다시 나레이터 모델이 되어 춤을 추는 진주. 약간은 찡그린 듯한 얼굴로 음악에 맞춰 몸을움직이는데 빨간 풍선을 든 도이가 멀찍이 서서 진주를 바라본다. “언니 되게... 멋있어요.” 눈을 반짝이며 부러워하는 중학생 도이에게 진주는 “그냥 돈 벌려고 하는 거지”라며 자조 섞인 답을 한다. 하지만 진주는 “저도 멀리 가고 싶어요”라 말하는 도이의 얼굴을 오래도록 살핀다. 그리고 노래방으로 이어지는 다음 장면에서도 계속, 춤추는 도이를 바라보고 있다. 도이 역시, 자신의 다친 팔을 이용해 가해자의 가족으로부터 돈을 받아내려 애쓰는 아빠를 외면하고 싶었을 테다. 진주는 그런 도이를 바라보며 잠깐 동질감을 느꼈던 걸까.

영화 <한낮의 우리>


‹한낮의 우리›는 땅으로 떨어지는 비행기로 시작해 하늘로 떠오르는 풍선으로 끝나는 영화다. 탈출에 대한 진주의 소망을 상징하는 비행기는 진주가 짊어진 짐만큼 무겁게, 빠른 속도로 떨어진다. 그리고 노래방에서 두 사람이 함께 춤추는 컷 다음, 작고 빨간 풍선 하나가 하늘 위로 올라간다. 진주를 찾아온 도이가 들고 있던 그 풍선이다. 진주는 결국 아직, 자신에게 주어진 물리적 공간을 떠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에겐 새로운 관계라는 좀 다른 공간이 생겼다.


혼자 지하와 옥상에서 춤추던 진주는 두 공간의 딱 중간 정도 높이의 노래방에서 도이와 춤을 춘다. 너무 밝아서 숨을 곳 없는 한낮의 시간. 햇살이 가득 차오르는 노래방 안에서 같은 노래에 맞춰 함께 춤추는 두 사람은, 각자의 세상에서 도망칠 수 있는 심리적 공간을 아주 잠깐, 서로에게 내어준다. 노래방 시간이 다 끝나면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겠지만, ‘우리’라는 이름이 진짜 그 이름을 되찾았던 짧은 순간은 쉽게 잊히는 게 아닐 테다.


‘멀리’ 떠난다는 것의 또 다른 의미는 새로운 연대를 꿈꾸는 것일지도 모른다. 리베카 솔닛은 자신의 저서 『멀고도 가까운』에서 이렇게 말한다. “세상이 크다는 사실이 구원이 된다. 우울함은 말 그대로 푹 꺼진 웅덩이다. 자아를 깊게 파고드는 일도 필요하지만, 자신에게서 빠져나오는 일, 자신만의 이야기나 문제를 가슴에 꼭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는 큰 세상 속으로 나가는 반대 방향의 움직임도 필요하다.”


멀리 있을 어딘가, 누군가가 구원일 리가 없다. 잠깐의 연결과  환멸의 무한 반복일 뿐이겠지. 하지만 서로의 춤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진주와 도이처럼, 그리고  사람을 보채거나 판단하지 않고 그저 멀리서 지켜봐 주는 영화의 시선처럼, 우리는 단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공간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정도 거리의   공간이 필요한 건지도.


2018

글. 박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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