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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윤 Jun 12. 2018

우리는 여기에 있다, 있었다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Faces, places>

*해당 글에 들어간 글의 저작권은 모두 글쓴이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신작 다큐멘터리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6월 14일 개봉, 아녜스 바르다)을 개봉 전에 미리 볼 기회가 있었다. 이번 6월 7일까지 신촌 메가박스에서 열린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예매 오픈과 동시에 일찌감치 매진을 기록한 기대작이었다. 표를 구하지 못한 나는 아침 9시부터 줄을 서서 현장 예매표를 기다려야 하나 고민이었다. 다행히 틈틈이 클릭하다 보니 취소 표를 구할 수 있었고, 평소 같았으면 절대 앉을 리 없는 P열 맨 구석 자리에 앉아 영화를 봤다.


영화제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극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소위 '예술영화'라 불리는 영화는 대체로 5명 안팎의 관객들과 함께 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렇게 꽉 찬 영화관에서 다른 사람들의 작은 웃음소리와 숨소리를 들으며 영화를 보게 되다니. 관객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된 우리들은, 서로의 웃음을 영화관에 새겨 넣으며 약 한 시간 반을 공유했다.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바르다와 제이알


영화의 원제는 <Faces, Places>이다. 제목에 걸맞게, 영화는 80대 영화감독 바르다와 30대 사진작가 제이알(JR)이 프랑스의 작은 마을들, 사라져가는 공간과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얼굴을 찍는 프로젝트를 담았다. 두 사람은 사진을 인화할 수 있는 특수 트럭을 타고 프랑스 북부 탄광, 공장, 항만 등을 여행하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을 촬영한다. 건물을 가득 뒤덮을 만큼 거대한 크기로 인화된 흑백 사진은 집과 공간의 벽면에 붙여진다.


제이알은 고다르 감독을 연상시키는 턱수염과 모자를 고집하며 절대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 파리에서 활동하는 유명 사진작가다. 은색-빨간색 투톤 염색을 한 바르다는 프랑스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거장이자, 올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82명의 여성 영화인들과 함께 영화계 내 성평등을 요구하는 레드카펫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반세기를 넘는 세월이 있지만, 두 사람이 진짜 친구로 보이는 건 서로를 편견 없이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보는 게 업(業)'인 두 사람은 동등한 예술가로서 서로를 바라본다.


그런 두 사람이 촬영하는 얼굴들은 우리 주변에서 매일 볼 수 있는 평범한, 하지만 평범하다는 이유로 우리의 시야에 잘 포착되지 않는 얼굴들이다. 폐허가 된 마을에 남아있는 주민, 주·야간 교대 근무를 하는 공장 노동자들, 탄광을 지키는 마지막 광부, 여성 항만 노동자들, 농장관리자, 작은 마을의 까페에서 일하는 직원. 저마다의 방식으로 각자의 하루를 시작하고 닫는 그들은, 지금 이 시간 어딘가에서 숨쉬고 있을 또 다른 우리들이었다. 세상은 넓고,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을까. 모르는 사람들의 존재를 깨닫는 것이 이리도 경이로운 경험으로 느껴진다는 게 놀라웠다. 지금 여기 존재하는 사람들의 얼굴과 몸이 공간을 채우는 그 광경이, "이 사람들은 여기 이렇게 있으며, 그들의 존재는 지워질 수 없다"라는 선언문처럼 다가왔다.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제이알과 바르다


"우리가 여기에 있다"라고 말하는 그 선언. 공간에 새겨진 얼굴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가장 분명한 방식의 선언이었다. 압도적으로 많은 남성 노동자들 사이에서 일하는 여성 항만 노동자 세 명의 전신사진이 스크린에 등장했을 때, 극장 여기저기서 작은 탄성이 튀어나왔다. 땅에 발을 딛고 우뚝 서 있는 자신의 사진이 붙은 컨테이너에 세 사람이 올라타자 "우리는 이렇게 여기에 존재한다"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롤랑바르트는 저서 <밝은 방, 사진에 관한 노트>에서 "사진에서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점은 사물이 거기 있었다는 것이다. 한 장의 사진은 그것은 그것, 이게 그것이야! 라고 말하지만 그 외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예쁘고' '새로운' 사진들에 숨이 막힐 지경인 이 시대에 사진이 잊고 있는 건 아마도 "우리가 여기 존재한다. 존재했다"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루에 7천만 건 이상의 사진이 업로드되는 인스타그램의 이미지에 묻혀서, 그 이미지를 찍은 사람들의 실재는 볼 수가 없다. 이 영화 속에서 바르다와 제이알은 사람들의 실재를 담으려고 노력했고, 관객인 나는 그 사람들의 실재를 마주한 느낌이 들었다. 그건 두 사람이 예술가로서의 위계를 내비치는 태도가 아닌, 인간 대 인간의 위치에서 이야기를 나누려 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아녜스 바르다


올해로 90세가 된 아녜스 바르다는 눈 건강이 좋지 않다. 사라져가는, 잊혀져가는 사람들과 그들을 찍는 동료 제이알을 바라보는 바르다 감독의 시야는 초점이 흐린 렌즈처럼 보이기도 한다. 날카롭고 아름다운 시선을 지닌 거장의 영화를 더는 못 보는 순간을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누구든 어느 곳이든 사라지는 걸 막을 순 없다. 우리는 모두 매일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존재다. 하지만 바르다와 우리가 아직 여기 있고, 언젠가 여기 있었다는 걸 기억하는 한, 사라진다는 게 두렵지만은 않을 것 같다.


눈을 착취하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결국 우리가 봐야 할 건 언젠가 사라질, 하지만 지금 이렇게 우뚝이 서 있는 서로의 얼굴이며 눈동자가 아닐지. 영화가 끝나고 극장에 다시 불이 들어왔을 때 옆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이 문득 궁금해졌다.


2018. 06. 12

글. 박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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