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물은 썩기 마련
*해당 글의 저작권은 모두 글쓴이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지난 3월, 김민정 작가의 전시 Timeless에서 만났던 작품 '산(Mountain, 2021)'시리즈는 시간이 지나도 계속 눈에 남아있었다. 굽이치는 산맥인지 혹은 흐르는 물결인지 모를 그 형상에는 작가가 그 작품을 만들기 위해 거친 '과정'과 '시간'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한지를 불태우고 겹치거나 한지 위에 수묵으로 그려서 완성되는 김민정 작가의 작품에서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결과도 중요하지만 내게 더 의미 있는 것은 그 과정"이라고 말했다. "노동하는 과정의 상태가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라며 "집중한다는 것은 나(에고)를 지우는 것이다. 극도의 집중력과 인내력, 정성으로 1㎜가량의 한지를 태우며 나는 시간의 흐름도, 내 마음의 번뇌도 잊는다. 굴곡진 내 삶도 그때 비로소 평화를 찾는다."라고 했다.
그의 작품이 특별함을 지니는 이유는 그 작품이라는 결과물에 그가 온몸으로 겪고 수없이 고민한 흔적과 과정이 오롯이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창작물에서 표절과 도용, 짜깁기가 너무나도 쉬운 시대에 '과정의 시간'을 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삼은 그의 작품엔, 분명 남들이 결코 쉽게 베낄 수 없는 작가만의 고유함이 있었다. 그가 직접 경험한 무수히 많은 층의 시간들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을 보는 각각의 관람객들 역시, 그 작품을 통해 각자 자신이 경험한 무수히 많은 층의 시간들을 발견했으리라 생각한다. 영화는 시간의 예술이기에 나는 작품에서 특히 시간의 흐름을 눈여겨본다. 작가의 '산' 시리즈에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이어지고 있었다.
예술은 언제나 치유와 회복의 에너지를 경험하게 하고, 우리가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준다. 과거를 현재의 관점으로 소생시켜 우리가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의 방향성을 찾게 하고,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는 공간으로 작용한다. '희망'은 결코 함부로 말해선 안 되는 것이지만, 예술은 우리 삶에 주어진 것들을 기반으로 희망과 가능성을 말하는 영역이라 생각한다.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미래는 어둠이고 그게 유일한 희망"이라고 했다. 미래의 알 수 없음과 불확실성이, 미래가 가진 유일한 희망이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고 불확실하며 그렇기에 무조건 부정적이지만은 않을 테니까. 무조건 부정적일 것이라 지금 판단할 수는 없을 테니까. "미래는 어둠이고 그게 유일한 희망"이란 말은 <변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무력감이 밀려올 때면 자주 그 문장을 떠올렸다.
지난여름에 본 다큐멘터리 '미래의 아이들에게'(프란츠 뵘, 2021)는 칠레와 홍콩, 그리고 우간다에서 일어나는 정치적인 일들에 대항하는 세 청년 여성들의 이야기였다. 영화는 칠레의 사회 정의를 촉구하는 레이엔, 홍콩의 민주화를 부르짖는 페퍼, 그리고 기후 변화가 우간다에 초래하는 일들에 저항하는 힐다의 모습을 담는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지만, 영화는 이 세 여성들에게 왜 맞서 싸우는지, 저항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그 세 청년에게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각자 다른 상황들이 있지만, 그렇게 저항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로 '다음 세대'를 공통적으로 이야기한다. 미래의 세대에 더 나은 현실을 물려주어야 한다는 생각. 그들은 다음 세대를 상상하고 있었다. 지금의 청년 여성 세대가 그다음 청년 여성 세대를 상상하며, 오늘 어떤 저항을 하고 있고 지금의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더 나은 미래가 오기를 바라면서.
'세대'를 의미하는 <Generation>과 '재생과 회복'을 의미하는 <Regeneration>이라는 두 영단어 사이의 연결성을 생각해 본다. 어쩌면 두 단어 모두 '미래'를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과거라는 역사로부터 흘러온 물결을 따라 여기까지 온 우리 한 명 한 명은 어떤 세월 그 자체를 품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어떤 식으로든 미래에 영향을 끼친다. 그 영향력이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나은 상황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다음 세대에는, 여태까지는 역사적으로 불가능했던 '회복'이 가능했으면, 잃어버렸던 일부를 되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김민정 작가의 작품 '산' 연작을 다시 바라보며, 여러 위기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나아가려 하는 재생(regeneration)의 힘을 상상해 본다. 끝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산맥 혹은 거대한 물결처럼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장소를. 아직 오지 않은 먼 미래 세대(generation)까지 아우르며 서로를 통해 경험이 확장되는 공간을.
과거에만 머물러있으면 발전이 없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혹은 생산적인 비판을 거부하는 사람이나 조직은 후퇴하기 마련이다. 흐르지 않는 고인 물은, 반드시 썩기 마련이다. 그리고 물은 위가 아닌 아래로 흐른다. 물이 흐르고 시간이 흐르고 삶이 자연스레 흘러가는 것처럼, 그 자연스러움을 따라 변화를 받아들여야만 지금까지 못 보던 풍경도 보고, 과거의 경험들로부터 회복하고, 궁극적으로는 성장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의 슬픔을 뒤로하고 그저 묵묵히 대차게 다시 흘러가는 물결을 떠올린다. 그리고 우리가 여길 떠난 한참 뒤에, 그 후에 태어날 다음 세대들을 어렴풋이 상상해 본다.
글. 박지윤
2021년 10월
* 해당 글의 저작권은 모두 글쓴이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커버 이미지: 김민정 - 붉은 산(2020), by Min Jung Kim, Red Mountain(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