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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윤 JiYoon Park Apr 06. 2022

이별과 상실너머, 여성의 미래는 역사에 없기에

드라마 <파친코> 속 여성들과 선택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해당 글의 저작권은 모두 글쓴이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에 나오는 첫 문장인 동시에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전시 제목이다. 이처럼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한국부터 80년대 말 오사카와 뉴욕까지 재일 교포들의 삶을 한 가족, 특히 선자라는 한 여성의 시각을 통해 담아낸다. 애플TV라는 자본력 덕에 이야기의 큰 스케일을 온전히 스크린까지 옮겨왔으며,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상과 이민자로 살아가는 설움을 보편적으로 공감가능하게 그려내 해외 관객들에게 동아시아 역사교육까지 제대로 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여성들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자칫하면 '고통을 감내한 위대한 어머니들'이라는 모성신화에 빠지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각 여성이 하게 되는 선택들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며 여성들의 서사를 확장한다. 특히 4화에서는 여성들 사이의 관계 묘사에 더욱 공을 들였다. 각기 다른 시간과 위치에 있는 여성들의 서사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여성의 역사와 운명'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 인물들의 이야기와 감정선까지 충실히 다루고 있기도 하다.

<파친코>(2022) 스틸 - 선자(오른쪽)와 양진(왼쪽)

먼저, '선자'와 선자의 엄마 '양진'은 4화에서 기약 없는 이별을 맞는다. 양진은 선자가 임신을 한 사실을 알고서 좌절하고 원망하지만, 결국은 선자의 선택을 지지한다. 여러 번의 유산 끝에 선자를 낳고 남편도 일찍 잃은 양진에게 선자는 유일한 가족이다. 그런 딸을 떠나보내기 쉽지 않지만, 선자가 어떻게든 책잡히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데 집중한다. 당시 여성이 혼전 임신 후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것은 굉장히 수치스럽고 비난받는 일이었기에 양진은 선자의 미래가 걱정된다. 선자가 일본으로 떠나기 직전, 양진은 남편에게도 말하지 말고 남몰래 가지고 있으라며 과거에 자신의 시어머니에게서 받은 은반지를 선자에게 건넨다. "여자는 꿍치논 돈이 있어야 된다"라며 선자가 자립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지지를 보탠다. 단순히 엄마와 자식 간의 관계를 넘어, 당시 여성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모색하는 여성 간의 연대라는 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파친코>(2022) 스틸 - 복희(위), 동희(아래)

다음은 양진의 하숙집에서 일하는 '복희'와 '동희'로 자매인 두 사람은 밥과 빨래를 하며 하숙집 살림을 도맡아 하고 선자의 또래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존재감과 서사는 선자가 일본으로 떠나며 이별하는 4화에서 부각된다. 동희와 복희 그리고 선자는 빨래를 한가득 머리에 이고서 냇가로 간다. 선자의 결혼 소식에 들떠 자신의 결혼을 상상하는 동생 동희에게 복희는, 족보도 없고 가난한 우리가 결혼하고 애 낳으면 고생뿐이라며 현실을 직시하라고 한다. "이게 우리 팔잔기라"라는 말과 함께 손빨래를 이어가던 복희는 이내 고개를 숙여 눈물을 흘린다.


복희와 동희, 선자는 말없이 손빨래를 하며 각자의 눈물을 흘린다. 깊숙한 산속 냇가에서 손빨래를 하는 세 사람의 모습이 와이드 샷으로 잡히고, 1989년 일본의 눈부신 경제성장에 대한 뉴스 사운드와 함께 50년 뒤 선자의 손자 솔로몬이 옷을 갈아입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여성들의 가사 노동과 한 국가의 경제성장을 알리는 공식적 뉴스 사운드를 병치시킴으로써, 여성의 가사 노동이 지닌 영향력과 의미를 전복시킨다. 비록 그때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선택은 손빨래였지만, 이 드라마에서 그 손빨래가 지닌 의미는 닛케이지수의 상승만큼이나 중요해진다.


<파친코>(2022) 스틸 - 나오미

그렇다면 1980년대 말, 20대 일본 여성의 삶은 좀 더 나아졌을까? 물론 일제강점기 20대 한국 여성들의 삶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윤택하다. 솔로몬의 회사 동료 일본인 여성 '나오미'는 미국 명문대 유학까지 다녀와 영어도 유창하며, 남성 중심의 금융 조직에서 거의 유일한 여성으로 버티고 있다. 하지만 나오미는 일류 은행들의 제안을 모두 거절하고 지금의 시플리 은행을 선택했다. "아시다시피 여자는 덜 성공한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게 도움이 되거든요. 여기선 성공할 수 있어요"라며 본인이 '해고된 남자들이 오는 묘지 같은 곳'이라고 묘사한 시플리 은행에서 성공을 꿈꾼다. 나오미는 선자와 복희 자매보다 선택지가 넓지만, 여전히 또래 남성들과 비교해 커다란 제약들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마치 자신의 운명을 아는 듯 시플리 은행을 선택한 이유를 말하는 나오미의 얼굴에서, 50년 전 빨래를 하며 자신의 팔자를 얘기하던 복희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수난을 다룬 이야기 속에 일본인 여성의 서사가 절묘하게 맞물려 있음을 통해, 국가와 시대와 관계없이 여성은 끊임없이 차별받아 왔음을 알 수 있다.


<파친코>(2022) 스틸 - 오페라 가수

한편 일제강점기 당시 유명 가수로 여객선에서 일본인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던 '오페라 가수(이름 미기재)'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한다. 4화에서만, 그것도 후반부에 잠깐 등장하지만 4화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가수인 그녀는 선자를 비롯한 다른 한국인들과 달리 고급 옷을 입고 여객선의 화려한 연회장에서 일본인들과 만찬을 함께 하기도 한다. 하지만 늙은 일본인 남성의 성추행을 참아야 하고, 식민지 가해자들을 위해 노래하는 수치를 견뎌야만 하는 입장이다. 무대 위에서 헨델의 가곡을 부르던 가수는 잠깐 멈춰 서는데, 텅 빈 눈에 눈물이 고일 때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 운명이 계속될 것임을 자각한 듯 보인다. 그러다 갑자기 가수는 우렁차게 한국의 민요를 부르기 시작하고 여객선 다른 칸에 있는 선자와 한국인들에게도 그 노래가 닿는다. 마지막까지 자신이 원하는 노래를 부르던 가수는 사람들에 의해 끌어내려지기 직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파친코>(2022) 스틸 - 금자

가수가 노래를 하는 장면은 '금자'가 계약서 서명을 위해 시플리 은행에서 일본인들을 마주하는 장면과 교차편집으로 이어진다. 가수와 금자의 고민과 선택은 긴장감 있게 촘촘히 연결되며, 50년의 시차가 있는 두 사건은 마치 동시에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가수의 나이대와 50년 전 금자의 나이대가 비슷하다는 점에서, 마치 금자가 자신의 과거 모습을 회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100억을 제안하는 시플리 은행에 결국 자신의 땅을 팔지 않게 되는 금자의 선택과 그 선택을 솔로몬이 결국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가수의 노래 장면과의 연결을 통해 온전히 설득된다. 가수가 자신의 선택을 위해 옷에 숨겨온 칼날은 계약서 서명을 위해 금자가 쥔 펜 촉과 닮아있다. "그 몸속에 한 맺힌 피가 그 핏방울 하나하나가 이걸 못하게 막는다 하면 뭐라 말씀드릴 거야?"라고 말하는 금자의 대사 조금 뒤에 실제로 피를 흘리며 무대에서 죽어가는 가수의 모습이 나온다. 비록 가수는 그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있었지만, 50년 뒤 금자는 계약서에 서명을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과 가족 그리고 그때 죽어간 사람들의 존엄을 지킨다.


<파친코>(2022) 스틸 - 양진

이처럼 그 시절 어머니들, 할머니들의 고난과 희생이라는 해석으로만 국한시키기엔 <파친코> 속 여성들을 다루는 텍스트는 너무 풍부하다. <파친코>가 일제강점기 및 일본 사회를 다루며 한국인과 재일 교포(자이니치)의 수난과 극복을 그린다는 점에서도 물론 커다란 의의가 있다. 하지만 한국 여성들은 일제강점기의 피해자인 동시에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속되어 온 '한국 식민지 남성성'의 피해자이다. 따라서 한국 여성 관객들에게도 <파친코>가 단지 한국인과 이민자의 한에 대한 이야기로만 끝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드라마 <파친코>는 (특히 4화에서) 여성 7명의 서사와 이들의 관계 및 역사를 공들여 그려내며 여성 관객들을 소외시키지 않았다. 앞으로 남은 5화부터 8화까지에서도 새로운 여성 등장인물들과 함께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표현될지 기대된다.



일제강점기는 오래전에 끝났지만 또 다른 차별들과 그로 인한 선택의 제한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파친코>는 넷플릭스가 아닌 애플TV에서 제작되어 애플 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볼 수가 없고, 따라서 넷플릭스보다는 덜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애플TV가 제작한 이유는 애플TV만이 유일하게 등장인물을 백인이 아닌 아시안으로 캐스팅하는 것에 동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이니치에 대한 차별 및 아시안에 대한 인종차별까지 다루고 있는 콘텐츠가 백인으로 화이트워싱 되지 않기 위해 제작사 선택에 제약이 생겼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도박 기계를 뜻하는 제목처럼 <파친코> 결국 팔자와 운명, 선택에 대한 이야기다. 어쩔  없이 하는 선택들과 그로 인한 결과들의 이어짐.  결과는 도박의 결과처럼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선택지가 적을 수록, 내가 주체적으로 원해서 하는 선택이 아닐수록  선택은  도박 같아질 수밖에 없다. 미래는 항상 불확실하지만, 선택에 대한 주체성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삶이  것처럼 느껴지는 정도도 다르다. 그리고  선택의 주체성은 불확실함을 견디고 나아갈  있게 하는 삶의 중요한 의미가 된다.


"최후의 식민지는 여성"이라는 말이 있다. 인류의 5천 년 역사는 가부장제의 역사고 여성 혐오의 역사다. 인종차별도 국가 차별도 경제적 차별도, 세상에 있는 모든 차별들에 대해 논의가 다 이뤄져도 5천 년 역사를 지닌 여성에 대한 차별은 각기 다른 형태로 질기게 존재해왔다. 많은 것들을 상실한 <파친코> 속 여성들은 살아남기 위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국경을 건너고 또 서로 이별해왔다. <파친코>는 팔자와 운명, 선택에 대한 이야기지만 동시에 '여성으로 살아남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4화를 보고 난 뒤에 자발적으로 이렇게 기나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그리고 그게 너무 싫어서 떠났던 서구권 국가에서 아시안 여성으로 살면서 나는 항상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여성으로 살기엔 한국이 더 심했지만 해외에선 아시안이라는 정체성까지 입어야 했기에, 난 자주 둘 중에 어느 게 더 나은지 저울질 해 보곤 했으며 현재도 저울질 중이다.) 이 글에서는 내가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겪고 보고 느낀 것들까지 설명하진 않을 예정이다. 대신 내가 원하는 결론만 간략히 말하자면, 나는 내가 내 삶에서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질 수 있길 바랐다. 우리가 더 많은 선택의 권력을 가지고 진짜 온전히 삶을 '선택'할 수 있길 바랐고 그 선택을 남들이 비난하지 않기를 바랐다. 조선시대에 비하면 나아졌지 않냐는 말 대신, 엄마나 할머니 때보다 나아졌다는 말 대신, 더 많은 '선택의 권력'을 얻기 위해서는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듣고 싶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는 책 <파친코>의 첫 문장처럼 역사는 한 번도 온전히 우리 편이었던 적이 없다. 그래서 여성의 미래는 역사 책에 없다. 우리에겐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역사가 없다. 그렇기에 절대 과거를 기준점으로 삼아 미래를 상상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지금보다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질 수 있고 그래서 우리가 팔자와 운명을 바꿀 수 있길 바라며, 그리고 그렇게 원하는 삶을 사는 여성들을 이 사회가 더는 욕하지 않기를 바라며,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이 '뒤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가서 결국엔 살아남아야 한다. 여성의 미래는 역사엔 없지만, 살아남으면 그 미래를 볼 수 있을 테니까.


글. 박지윤

2022년 4월


*해당 글의 저작권은 모두 글쓴이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커버 이미지: <파친코>(2022)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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