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지윤 Jul 20. 2022

지난 작업들에 대한 글

2020-2022년 작업에 대한 노트

*해당 글의 저작권은 모두 글쓴이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2021년 10월에 쓴 2020-2021 작업노트와 2022년 작업에 대한 글


[2020-2022년 작업노트]


작품들에서 이미지와 내레이션-텍스트 그리고 사운드는 서로 이질적으로 맞물리며 각자를 보완하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또한 사람이 거의 나오지 않거나, 인간이 아닌 제3의 존재가 사람이나 상황을 응시하고 관찰하는 듯한 스타일이 일관되게 나타난다. 이처럼 일상의 사물들을 낯설게 표현함으로써 기이한 풍경들을 만들어내고, 꿈과 현실을 오가는 듯 시공간을 초월한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담아내려 했다.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에>(2020)와 <아주 오래전에>(2020)를 통해 시간성에 대한 탐구를 지속해왔으며, 덧없음과 일시성 그리고 불확실함이 작품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요소로 자리매김해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2021)와 <제자리에 있지 않은>(2022)에서는 인간 마음의 헤아릴 수 없는 광활함을 담아내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에>는 시간에 대한 자각, 즉 시간의 유한함을 맞닥뜨리는 순간들을 보여준다. 덧없음과 일시성을 영화 전면에 드러내지만, 오히려 그 유한함으로 인해 일상의 사소한 부분을 특별하게 바라볼 수 있음을 강조한다. <아주 오래전에>는 과거의 기억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할 수 있음을, 따라서 각자의 삶은 한 가지 해석으로 환원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작업이었다. 기억에 대한 관점이 바뀌는 과정을 촉각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어떤 해방감과 회복성을 전달하려 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인간 각자가 지닌 정의할 수 없는 부분, 다 알 수 없는 지점, 그 모호함과 거리에 대한 존중을 유지하며 천천히 변화 가능성을 모색하려 한 작업이다. <제자리에 있지 않은>은 픽션같은 설정을 기반으로, 당연하게 존재하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현실로서 인식되지 못하는 어떤 현실에 대해 들여다보는 작업이었다.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에

영화는 곧 사라질 할머니의 집, 할머니가 지내던 병원, 그리고 파도로 인해 무너질 것 같은 모래성이 가까스로 지어지는 과정 등 다른 종류의 푸티지들을 교차시켜 보여준다. 이 모든 과정은 곧 있을 슬픔의 순간을 늦추려는 절박한 시도처럼 보인다. 다가오는 상실에 대한 영화인 동시에 희망에 대한 영화이다. 상실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지만, 그 과정을 제대로 바라보고 기록함으로써 삶이 그렇게 허무하지만은 않음을 공유하고 싶었다. 아주 먼 미래와 먼 과거를 연결하며, 그 커다란 시간에 기대어 현재의 상실감이나 불확실함을 극복하려는 의도였다.


아주 오래전에

영화는 예상치 못하게 과거의 기억들에 압도되는 순간을 그린다. 동시에 거기서 어떻게 빠져나오는지를 그리며, 기록이 어떻게 자기 치유의 기능을 하는지를 탐구한다. 내가 과거에 기록했던 것이 현재의 나에게 다른 방식으로 읽히고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때가 있다. 같은 경험을 시차를 두고 다르게 해석함으로써, 의미와 맥락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하기에 우리는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고 동시에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잘알지도 못하면서

영화에는 사람의 얼굴이 등장하지 않고, 대신 익명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는 장소들과 움직임이 나온다. 인간 마음의 헤아릴 수 없는 광활한 지형을 담아내고자 하는 시도였다. 타인의 마음은 결코 다 알 수 없겠지만, 그 알 수 없는 깊이를 상상하며 이해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과정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게 하려는 시도를 통해, 다큐멘터리의 윤리성을 전면적으로 고민할 수 있었다.


제자리에 있지 않은

영화는 광학장치들을 통해 ‘본다는 것' 그 자체에 대해, 그리고 여성들의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한국 여성인 동시에 아시안 여성으로 살아가며 자주 마주하는 현실은, 우리에게 공기처럼 당연하게 존재하는 현실임에도 그 현실이 현실로서 취급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궁극적으로 우리를 둘러싼 의미와 맥락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하기에, 우리는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글. 박지윤


*해당 글의 저작권은 모두 글쓴이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이별과 상실너머, 여성의 미래는 역사에 없기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