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딱지 이론

도쿄 도란소란

by 여럿

남편이 온라인 게임을 하는 걸 보고 있으면 화딱지가 난다. 이어폰을 끼고 한다한들 방안을 가득 채우는 소음이 일단 싫다. 타다다닥 울리는 마우스 소리, 이리저리 바쁘게 손을 움직이며 키보드를 쓸어내리는 소리, 용량이 큰 게임을 할 때 노트북 내부에서 우렁차게 윙윙 돌아가는 팬 소리... 무슨 중대한 임무라도 수행하는 양 입을 앙 다물고 집중하는 얼굴도 마음에 안든다. 뭘 하라고 하면 '이 판만 하고...' 흐리는 말꼬리도 싫다.




연애 초기 때부터 결혼 이년차인 지금까지 우리가 싸운 대부분의 이유가 게임이었다. 싸움이 간헐적이었던 것은 다행스럽게도 남편이 게임을 하느라 일을 뒤로 미루는 스타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일은 함께 분담하는 가사 노동이다. 남편은 집안일은 다 해놓고 게임을 한다. 할 일 해놓고 게임하는 남편에게 잔소리를 할 선명한 명분은 사실 마땅찮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좀 봐줘라-'하며 남편에게 불쌍하다는 눈빛을 보낸다. 그러면서 게임이 얼마나 건전한 취미인지 술을 좋아하지 않고 담배 안하고 밖으로 싸돌아다니지도 않는 남편이 얼마나 착한지 설득하려 든다. 요점은 그게 아니다. 아무리 부차적인 이유를 갖다 댄다고 하더라도 싫은 건 싫은 거다. 남편이 게임이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것처럼 게임에 집중하는 남편에게 한심스러운 마음이 드는 걸 나도 어쩔 줄 모르겠다.




이런 간극은 어떻게 건너야 하는 걸까. 결혼 초반 일기장에는 온전히 토로할 길 없는 고민을 쏟아낸 문장이 멈춤없이 쓰여있다. 상대를 탓할 수도 없고 싫은 마음을 억지로 감출 수도 없어 우왕좌왕하는 인간이 거기 있다. 일기장 몇 권을 더 채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우리는 서로가 다른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게임이 싫어서 그걸 하는 사람까지 미워하게 된 상황을 못견디는 인간을 남편은 인정해주었고, 게임이 어떤 인생에서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일 수 있다는 걸 나는 천천히 받아들였다.




"게임은 나한테 코딱지를 파는 습관 같은 거야."

며칠 전 밥을 먹다가 불쑥 말했다.


"어떤 사람이 십 분에 한 번 코딱지를 판다고 생각해봐. 그런데 코딱지를 파고 그걸 아무 곳에나 버리는 게 아니라 휴지에 닦아서 버리고 손도 깨끗하게 씻는다고 쳐봐. 그건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고유한 습관이자 취미인 거야."


남편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그걸 보는 나는 그게 꼴보기 싫을 수 있잖아. 아무 도움도 안되고 보기에도 안좋고 한심한 습관 같다고 여길 수 있지."


"그렇지."


"그럼 여기서 타협점은 뭐겠어."


숨을 한 번 고르고 자문자답 기법으로 가장 중요한 내용을 강조해준다.


"코딱지를 파는 사람은 자기 취미와 습관에 대한 상대방의 적대감을 이해하는 거고, 코딱지 파는 게 싫은 사람은 저걸 해야만 하는 사람 마음을 알아줘야 된다는 거지. 그러면 앞사람은 코딱지 파는 빈도를 좀 줄여볼 수 있을 거고 뒷사람은 코딱지 파는 걸 귀엽게 보려고 노력할 수 있을 거야. 결국 부부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이 코딱지를 이해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는 거야. 이게 바로 내 코딱지 이론이야."




청결에 예민한 남편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가 떨어진다. 잠깐 생각하는 듯 하더니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남편이 코딱지에 대해 가지는 반감과 내가 게임에 대해 가지는 반감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완벽하게 설명해낸 이론의 발견에 학문적 성취가 느껴져 가슴이 뻐근해진다. 우리는 완전히 다른 인간이고 영원히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직도 멍한 표정으로 게임을 하는 남편을 보면 속이 부글대는 걸 확실하게 감지할 수 있다. 다만 그 부글거림을 섣불리 폭발시키지 않는 방법을 이젠 안다. 남편은 그 부글거림이 한계에 도달하기 전에 노트북을 닫는 방법을 터득했다. 정답 아닌 편법으로 함께 사는 법을 배운다. 어쩌면 그것이 하나 아닌 둘로 사는 일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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