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도란소란
핫초코와 허브티
여럿
이케부쿠로에 새로 생긴 카페에 가보기로 했다. 이케부쿠로는 연애를 하던 시절 남편이 자취를 하던 곳이라 남들은 모르는 우리 둘의 기억이 담겨있는 동네다. 카페 가는 길이 마침 남편의 옛 자취방 가는 길과 같았다. 몇 년 만에 찾은 반가운 거리에서 바뀐 것과 바뀌지 않고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것에 대해 떠들며 걸었다. 이게 없어지고 저게 생겼네, 그게 없어지고 이게 생겼네. 과거와 현재가 이상하게 교차하는 어떤 지점에 서있는 듯했다.
카페에 도착해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러 간다. 메뉴를 고를 때 이걸 골랐다가 저걸 골랐다가. 고르고 나서도 고른 선택지에 확신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에는 임신을 한 덕분에 카페인이 들어있지 않은 음료 중에서 택하면 돼서 편하다. 허브차와 핫초코 중 고민하다 허브차로 결정했다, 가 막판에 핫초코로 다시 바꿨다. 자리에 앉아서 허브차로 할 걸 잠깐 후회했다가 아니야 지금은 핫초코 마시기에 좋은 날씨다 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어려서부터 유독 선택하는 것이 힘들었다. 인생의 대주제에 대해서는 특히나 얼마나 우유부단했던지. 고등학교를 선택할 때도 대학교를 선택할 때도 도통 뭘 해야 좋을지 몰라서 누가 차라리 어딘가에 밀어 넣어줬으면 했다. 대학 전공은 그나마 문과 성향으로 좁혀지기라도 했지 취업 전선이야말로 최악이었다. 지원할 회사도 직무도 너무 많았다. 그 가운데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조금도 없었다.
선택을 두려워했던 것은 한 인간의 인생에 최적의 선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종교처럼 믿었기 때문이다. 최선의 선택은 사실 유니콘이나 용 같은 것이라고. 끝없이 팽창하는 우주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해줬다면 조금 덜 고민하고 더 빨리 행동할 수 있었을 거다. 선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선택의 결과를 손에 쥐고 어떤 마음으로 다음 선택을 해나가느냐가 더 중요한 거였다. 인생이라는 사이클은 작고 빈번한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기꺼이 다음 선택을 해내는 일이었다.
선택에는 연습이 필요하고 그 연습에는 독립이라는 전제가 주어져야 한다. 물리적,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않은 상태로 내리는 결정은 대게 주변인의 조언을 따라 내리게 되니까.
부산의 고향집을 떠나 아는 이 하나 없는 도쿄로 떠나온 6년 전의 나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어쨌든 홀로 떠났다. 홀로 살며 홀로 밥을 챙겨 먹고 홀로 집을 꾸미고 홀로 직장을 잡아 홀로 밥벌이를 했다. 홀로 된 시간은 스스로 하나의 독립된 인격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시간이었다. 혼자로도 얼추 자세를 잡고 서 있는 방법을 알게 되면 주위 존재의 입김에 선택의 결정권을 내어주지 않을 힘이 생긴다. 그렇게 됐을 때 주위 사람과도 더 깊어진 관계를 누릴 수 있다.
6년의 세월을 좋기만 했다고 회상할 수 없다. 다만 혼자 밥 벌어먹고 산 경험을 오롯이 내 선택으로 해냈다는 점을 자랑스러워한다. 누군가에게는 겨우 독립일뿐인데. 그 겨우에서 인생이 미묘하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엄마가 지닌 삶의 지혜로부터, 들려오는 친구의 소식으로부터, 언니들의 현실적인 조언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일구어낸 눈에 띄지 않는 결실이었다.
독립이라는 단어가 주는 자유로움을 안다. 최적의 선택이라는 신기루를 쫓기보다는 조금 못한 선택일지라도 그 선택을 한 나를 믿기로 마음먹는 게 더 낫다는 사실도. 어른이 된다는 감각이 있다고 한다면 꼭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인생의 많은 일이 핫초코와 허브티 사이의 선택보다 어렵지만 그렇다고 그것과 아주 크게 다르지도 않다. 핫초코도 허브티도 정답에 가까운 그 무엇일 뿐 완벽한 정답이지 않아서 고민이 되는 것이다. 둘 다 어느 정도는 맞고 어느 정도는 틀리다. 독립된 판단으로 어느 하나를 선택했다면 그걸 믿는 연습을 자꾸 해야 한다. 실패를 연습하고 다시 어떤 선택을 해내는 과정을 반복하는 일로 한 인간이 자라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