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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의 나라 파라과이 4

3-Rio Paraguay

by Jiyoon L



파라과이로 이민을 갔었던 무렵은 내 나이 12살 동생은 9살 때다.

왜 하필 남미에서 제일 못 사는 나라 파라과이를 택했냐고 다 커서 물으니, 그때 아빠의 사업이 망해 우리가 이민을 갈 수 있었던 유일한 나라였다고 엄마는 말했다.

거기서도 소수의 한인끼리는 서로서로 알고 지냈다.


경수 오빠는 나보다 네댓 살은 많았다. 경수 오빠밑으로 형주라는 남자 동생이 있었다. 경수오빠는 얼굴이 하얗고 선이 고운 잘생긴 전형적인 꽃미남의 얼굴이었다. 거기에 성격까지 다정해 사촌동생과 나는 경수오빠를 보면 괜히 그렇게 수줍어했다.


형주오빠는 경수오빠 와는 정 반대였다. 얼굴도 까맣고 잘생긴 얼굴이긴 했지만 경수오빠가 다가가기 힘든 스타일이라면 형주오빠는 오빠는 보급형 미남이었다. 형주오빠는 한국말을 거의 할 줄 몰랐다. 대신, 스페인어와 그 나라 인디언 언어인 ‘과라니’ 어 까지 했다. 그러고 말이 되게 많았다.


우리가 이민 초기 안정이 되기 전 살았던 아파트는 시내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번화가에 지어진 새 아파트였다. 처음 파라과이서 살게 된 집엔, 화장실에 변기 말고 또 하나의 변기스러운 것이 있었다. 세 숫대하 같이 둥글게 모서리가 처리된 사각의 그것은 변기 옆에 있었고, 물을 틀면 그것의 바닥에서 분수처럼 나왔다. 이게 도대체 뭘까 하는데, 아빠는 양치질하고 물로 헹구는 걸 거 같다고 했다. 그 당시 “불란서 다녀온 여자” 엄마는 그것도 모르냐며 비대라고 설명해 줬다. 우리 불란서 에선 흔한 거라며…


아파트에 왼쪽으로 걸어서 십여분 가면 그 도시에서 젤 번화한 거리 palma 길이라는 데가 나왔고 꺾지 않고 같은 길을 내려가면 파라과이의 젖줄이라고 할 수 있는 Rio Paraguay가 나왔다.

Rio 란 강이란 말인데, 파라과이강 이란 이름이었다. 강은 풀이 우거지고 깊진 않다고 했다. 어종으론 젤 흔한 게 식인어류인 피라니아가 있고, dorado라는 민물고기가 있다고 했다. 경수오빠와 형주오빠는 낚시를 자주 가서 물고길 잘 낚아 온다고 했다. “피라니아가 물면 어떡해?!” 라자, 수영할 때 빨리 움직이면 물진 않는다며…


난 우선 낚시도 관심 없었지만 피라니아며 풀숲에 들어가는 게 안 내켜 낚시 얘길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지만, 내 동생은 “나도 갈래!!” 라며 형들을 졸랐다.

하루는 늦은 오후 형주오빠가 맨발로 집에 찾아와 “바로 지금” 낚시하기가 딱 좋을 거라며 동생을 데리고 갔다. 걱정 어린 엄마에겐 “정석이 잘 볼게요!”라고 굉장히 어설픈 한국말로. 내 동생은 그때 나이 7-8살쯤, 유난히 겁이 많았던 아이다. 지금이야 두 아이 아빠로 한가정의 가장으로 아저씨 돼있지만 그때 그 아인 누나의 보살핌이 필요했던 아이였다. ㅋㅋㅋㅋ저걸 혼자 보내도 되나…. 싶었지만 경수오빠와 형주오빠 둘 다 간다고 하니 그냥 모른 척을 했다.


한두 시간 지났을까, 해가 길던 날은 어느새 어둑해졌다. 그러고 갑자기 동생이 혼자 돌아왔다. 얼굴이 하얀 채로,

“엄마, 사람이… 사람이…” 라며 동생은 할머니가 계시던 방으로 들어가고 문을 잠갔다. 얼이 빠져 있던 동생의 얼굴이 내가 봐도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너 왜 그래? 응?!” 묻자, “사람이 있어. 사람이”

애가 눈도 뭔가 이상하고, 표정도 그랬다. 그러곤 침대밑에 누가 있다고 한참을 그랬다.

얼마 안 있어 경수오빠와 형주오빠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얘 왜 이러니? 무슨 일 있었어?” 놀란 엄마가 물었다.

“아, 그게…. 정석이가 낚시로 나무토막을 잡았는데 그걸 사람이라고 착각한 거 있죠!?” 라며 경수오빠가 얘길 했다. 원래 차분했던 오빠와는 다르게 굉장히 과한 목소리와 몸짓으로.

동생은 여전히 방에서 할머니와 달라붙어 있고 “아니야 아니야”라고 중얼거린다.

경수오빠는 안 보이는데서 한참을 엄마와 얘길 하더니 갔고, 엄마는 또 동생과 한참을 방에서 같이 있었다.


“무슨 일이야?”라고 엄마한테 묻자, “나무토막을 낚았는데, 뭐가 긴 줄기가 있었나 봐. 그게 꼭 사람 같았데”

엄마는 동생한테 가서 한참을 넌 ‘나무토막’을 봤을 뿐이라고 말을 했다.


내 동생은 워낙에 겁이 많은 아이였어서, 남자가 그러면 쓰겠냐며 아빠는 담력훈련을 시켰을 정도였다. 그런 아이기에, 내 동생이라면 별거 아닌 거로 놀랬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한참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동생은 침대밑에 누가 있나 좀 확인해 달라고 하고 난 “아 없다고!” 라며 하루에도 몇 번씩 소릴 질렀다. 그러고 동생도 어느 순간부턴 ‘나무토막’ 였을 뿐이라고 저도 인정을 하고 또 어느 순간부턴 침대밑에 좀 봐 달라고 하는 소리도 없어졌다.

.

몇 년인가 지나 내가 고등학생이 됐을 때쯤 엄마가 말을 했다.

“그거 사람 맞았데.” 그날 동생이 얼이 빠져 돌아온 날 낚았던 건 사람얼굴이 맞았다고 한다. 10대 후반인지 20대 초반인지였던 경수오빠도 보고

놀라 기절을 할파였는데, 너무 어린 내 동생이 보고 몸이 굳고 얼굴이 하얘지기에 (그걸) 얼른 던져버리고 왔다고 한다.

당시 파라과이는 무법천지, 리오 파라과이는 우거지고 사람은 별로 없던지라 가끔 한 번씩 그렇게 살인이 나고 그때당시니 피해자도 가해자도 못 가린 엽기적인 사건 투성이었다고 한다.


그걸 경찰에 신고를 했는지 어떻게 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경수오빠와 형주오빠 형제도 행방이 묘연해서 그 이후론 그들도 볼 수 없었다. 언젠가 몇 년이 더 흐른 후 어딘가서 형주오빠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다고 들었고 꽃미남였던 경수오빤 아직이라고 했다.


낚시 이야기는 우리 집에선 한참 동안 쉬쉬 하는 비밀이야기처럼 어른들만(그러고 어른 같은 나만) 아는 얘기였고, 동생에겐 일언반구도 할 수 없었다.


한참 더 시간이 흐른 후 동생은 더 이상 담력훈련 같은 건 필요치 않았던 시건방진 고등학생이 되었다. 언젠가 한 번은 지 친구들끼리 얘길 하는데, 그때 그 낚시 얘길 하는 걸 들었다. “아 그게 사람인 거야!!” 라며.


하… 우린 여태 이 아이가 ‘나무토막’으로 인정 한 줄 알았는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수년동안 그리도 비밀을 지켰는가…


“너 알았어?”

“응”

“근데 왜…”

“그땐…. 엄마가 말한 거처럼 나무토막이라고 믿지 않으면 더 무서워서 그렇게 믿었지. 근데 나…. 눈도 마주쳤어. 나무토막 아닌 건 확실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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