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중과 상연' 선망과 원망 사이,열등감과 오해에 대해

by 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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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또 좋은 작품을 만났다,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15회라는 긴 호흡에도 작품의 몰입감이 너무 커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은중과 상연'은 두 인물의 10대부터 40대까지에 걸친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때로는 사랑하기도, 때로는 미워하기도 하며 선망과 원망 사이에서.



작품을 보는 내내, 여러 번 울컥했다. 단순히 슬픈 이야기라서가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눈빛과 말 사이에 담긴 무게가 너무 현실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특히 김고은 배우의 눈빛은 몇 번이고 내 마음을 무너뜨렸다. 대사보다 더 많은 감정을 전달하는 그 힘을 보며, “배우가 가진 에너지가 작품을 어떻게 살리는지” 새삼 실감했다. 문득 영화관에서 봤던 '대도시의 사랑법'속 김고은 배우를 보고 '정말 저 캐릭터 그 자체이구나'라고 느꼈던 순간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은중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든 배우 덕분에 은중의 감정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은중과 상연은 서로의 거울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사랑하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부딪히고, 결국 상대를 통해 자기 안의 결핍과 열등감을 마주하게 된다. 은중과 상연은 서로에게서 안정감을 얻으면서도, 동시에 상대가 가진 어떤 빛 앞에서 작아지는 순간들을 겪는다. 그 모습이 너무 솔직해서 마음이 쓰라렸고, 나 역시 관계 속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겹쳐졌다.



너처럼 사랑받지 못해서, 너처럼 사랑하지 못해서,
너처럼은 할 수가 없어서, 아낌없이 줄 줄도 받을 줄도 몰라서,
좋아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나는 힘이 들었다.
그래서 파괴했다.

사랑하고 미워했던 나의 친구



은중과 상연은 서로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행동하지만, 그 마음은 종종 오해를 낳는다. 선의라고 생각해 한 행동이 오히려 상처로 돌아오고, 사랑으로 건넨 말이 오해로 굴절되는 순간들을 보며, 결국 우리는 아무리 가까워도 끝내 완전히 닿을 수 없는 타인임을 이 드라마는 보여준다.


상연에게.

길버트 그레이프가 집을 불태우고 떠날 때 태운 건 삶을 짓누르던 과거일 뿐, 자신은 함께 불타지 않았어
새로운 곳으로 떠날 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였고 누구도 버리거나 잃어버리지 않았어.

너를 태워버리지마.



말 한마디의 힘은 얼마나 센가. 오맹달의 말 한마디는 상연을 다시 살게 했다.

사랑하는 오빠가 떠났을 때, 그리고 엄마가 떠났을 때도.


너 아직 이렇게 잘 걷고, 잘 웃잖아
그래서 가는거야

내가 나일때 선택하고 싶어서


그리고 끝내 마주하게 되는 건 상연의 죽음이었다. 은중과 상연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스위스 여행을 떠나고, 상연은 가장 사랑했고, 가장 미워했던 은중 곁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낸다. 죽음은 설명하지 않고, 준비시켜주지 않는다. 그저 갑작스럽게 다가와 남겨진 자에게 긴 숙제를 남긴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오래전에 겪었던 가족의 죽음을 떠올렸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 끝내 찾을 수 없는 이유. 그래서 은중의 마지막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은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 고통을 단정적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 나 역시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에서 멈춘 결말 덕분에 두 사람의 이야기가 '영원히 그 순간에 머무는 느낌'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드라마의 분위기를 완성시킨 건 OST였다. 폴킴, 권진아 같은 아티스트들이 부른 노래는 장면에 깊이 스며들어, 마치 한 편의 시처럼 남았다. 화면이 끝난 후에도 귓가에 오래 맴도는 선율은, 이야기를 음악으로 이어주는 또 하나의 장치였다.



<은중과 상연>은 우정 이야기로 시작해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불완전함, 상처, 끝내 닿을 수 없음까지도 품어낸다. 그래서 나는 이 드라마가 오래도록 잔상을 남길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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