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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뱅 Aug 09. 2022

[하루 글짓기] 비오는 날

오늘의 주제

: 비오는 날



어제부터 서울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는 중.

여름 내내 장마와 함께한 기분이 든다.

더웠던 날보다 비오고 흐렸던 날이 더 많이 기억되는 이번 여름.

다행히 비오는 날을 싫어하지 않는다.

더블린을 다녀온, 더블린에서 살아본 이라면 누구나 비에 대해 할 이야기와 스토리가 있을텐데,

구 더블리너로서 비오는 날을 좋아한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이면 늘 더블린이 생각난다.


기본 날씨 디폴트가 미스트 미였던 더블린.

그러다 소나기라도 내리면 세차게 우다다 쏟아지는 비는 'pouring rain'이라고 불렸다.

진짜 말 그대로 누군가 쏟는 것 같은 비.

사실 이런 비는 금방 멈춘다는 걸 거기서 알았다.

비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비가 일상이 되면 비를 부르는 언어도 세분화된다는 사실도 그곳에서 깨달았다.

영국 날씨가 안좋은 건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런던에서도 2달 정도 살아본 내가 경험한 바로는 런던보다 더 북쪽에 있는 더블린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날씨가 훨씬 버라이어티하다.

4계절이 하루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바람이 불었다가 해가 났다가 비가 내렸다가 흐렸다가 추웠다가 하루에도 몇번씩 날씨가 바뀐다.


더블린에서 살다보니 가방에 우산과 선글라스를 동시에 갖고 다니게 되었다.

잔뜩 흐린 하늘이었다가 갑자기 해가 나타나면 어찌나 눈이 부시던지 왜 유럽인들이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는지 이해가 가는 부분.

우산도 갖고 다니긴 했지만 기본 비가 바람과 함께 부스스 내리는 비이다 보니 우산은 영 쓸모가 없다.

대신 털모자, 비니, 캡모자, 후드 티, 점퍼에 붙은 모자를 쓰는게 훨씬 낫다.




비가 잔뜩 내리는 광경을 볼 때면 생각나는 날이 있다.

아마도 어학원에 갔다가 동네 부츠(한국의 올리브영 느낌)에 가서 샴푸든 무엇이든 샀던 날이다.

사고 나서 가게를 나서려는데 미스트 비가 아닌 엄청난 소나기가 오고 있었다.

하늘에서 누군가 양동이로 비를 붓는 것처럼 거센 비에 입구에는 나처럼 우산을 갖고 있어도 선뜻 거리로 발을 내딛지 못하는 행인들이 있었다.

나도 그 무리에 합류했다.

그리고 세차게 비가 내리는 도로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더블린 거리에서는 상점에서 트는 노래가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는다.

도로에는 그저 비 내리는 소리만 있을 뿐.

솨솨 어디에서 이 많은 비가 생겨나고 떨어지고, 이 많은 비는 어디로 흘러갈 지를 가늠하는 동안에도 비는 솨솨솨 내렸다.

현지인조차 입구에서 비를 구경하고 있는 건, 그들은 이 거센 비가 곧 지나갈 걸 알기 때문이다.

매일 비가 내리는 나라에서 거센 비는 금방 지나갈 것을 알기에,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멈춰 비를 구경하는 여유쯤은 식은 죽 먹기일 지도 모른다.

비를 기다리는 3-4명의 무리 중 핸드폰을 들여다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모두들 비가 오는 도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더블린을 떠난 지 어언 5년이 넘어가지만, 여전히 거센 비가 오는 날이면 더블린에서의 그 날이 떠오른다.

거센 비가 지나가길 기다렸던 그 순간.

핸드폰에 눈을 두지 않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고, 어디론가 흘러가는 빗줄기를 바라봤던 그 순간.


더블린에 유학을 오거나 어학연수를 오는 사람 중 비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은 비를 좋아하는 사람이 된다.

비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어학연수를 1개월도 못 채우고 돌아가는 이도 있었다.

난 비를 좋아해 다행이다.

원래 비를 좋아했는데, 비가 매일 내리는 나라에서 살다 왔더니 비가 익숙해졌고, 정겨워졌다.


물론 한국 생활에 익숙해진 요즘에는 며칠 동안 지겹도록 내리면 피곤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싫지는 않다.

언젠가 비는 그칠 걸 알기 때문에.


나에게 비는 더블린이다.




나에게 비가 더블린인 기억이 얼마나 지속될 지 한국에 돌아올 때 궁금했는데, 지금 5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하다. 이 기억이 퇴색되기 전에 더블린에 꼭 다시 가고 싶다.


내일의 주제 

: 스쳐 지나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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