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무 지겹지만 그래도 내가 포기가 안된다는게 솔직한 내 마음
어떻게 하면 하루에도 수십 번, 이런 똑같은 생각을, 10년 넘게 해온 저의 순간에 "예"라고 허용해 줄 수 있을까. 나에 대한 연민을 느끼고, 허용을 해주라고? 나는 나를 떠올리면 '지겹다'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드는데.
그러나 자기 연민으로 껴안기 쉽지 않은 감정이 있다. 바로 수치심이다. 수치심은 나 자신이 나와 남에게 해를 입혔다는 생각에서 시작되는데, 자칫 자기 부정과 열등감, 열패감으로 커진다. (중략) 수치심을 잘못된 도피처에 빠져 있을 때 더욱 우리를 괴롭힌다. 잘못된 도피처는 나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해를 끼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자기를 비난하며 다시금 예전의 행동을 반복한다.
내가 자기 연민에서 용서가 아닌, 자기부정으로 이어졌었나 생각해 보니 내가 관계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피부 때문에 생긴 음식에 대한 걱정이, 가족끼리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는데 망친다는 생각.
피부에 대한 과도한 스트레스로 부모님께 짜증을 내서 그들을 속상하게 만들었다는 생각.
피부 트러블 때문에 수업에 집중하지 못해, 더 눈을 마주치며 수업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
피부 트러블이 걱정돼서 놓쳐온 수많은 주변 사람들이 밥 먹자고 제안한 것에 대한 거절. 그로 인해 좋은 인연을 놓쳤다는 생각.
피부 때문에 술 마시는 게 두려워서 대학생활을 온전히 즐기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을 놓쳤다고 생각하니 주변에 항상 미안했고, 죄책감이 그들에 대한 주 감정이었다. 내가 아니었다면, 음식 종류 걱정 없이 맛있게 밥 먹었을 텐데.
사실 폭식이나 거식증이 매우 극단적으로 보이지만 식이장애는 생각보다 일반적인 현상이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자신의 경험을 통제하는 최초의 방법이 바로 '먹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불안해질 때 우리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 가장 즉각적으로 쉽게 이용하는 방법이 먹기다. p110.
인간이 스스로를 통제하는 최초의 방법이 '먹기'이기 때문에 음식을 제한하려고 하는 것은 생각보다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말이 나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이전에 먹토를 하거나 피부 때문에 먹는 것을 제한하며 살아온 나의 오래된 삶의 방식이 어쩌면 내가 태어나 배운 첫 번째 통제 방법이기 때문이라면 내가 그렇게 비정상은 아니라는 뜻이 아닌가. 나는 오랫동안 정상이고 싶었던 것 같다. 무난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상대방이 '이거 먹을래?' 하면서 제안했을 때 웃으면서 (아무 걱정이나 머릿속 계산 없이) '응 먹을래! 맛있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약속을 잡을 때 뭘 먹으러 가자는 약속이 제일 두려웠다. 이건 안된다고 말해야 되거나, 아니면 가서 꾹 참으면서 먹어야 하니까. 그런데 이게 어쩌면 내가 나를 통제하는 방법을 '먹기'로 선택해서 그런 거라고?
앞에서 성폭행 피해자가 '그건 내 잘못이야.'라고 말하면 처음에는 무력감을 덜고 일종의 통제감을 느끼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내 잘못이라고, 내 탓이라는 생각을 계속 갖고 산다면 자신을 고통 속에 가둬두는 격이 된다. p112
나는 내 탓을 하는 게 오히려 더 상급 버전(?)의 반응인 줄 알았다. 타인이나 상황 탓을 하면 그건 발전적인 방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상황 탓을 해봤자 달라질 게 없지 않나. 그건 그 순간에 나에게 통제권을 주는 임시방편일 수는 있으나, 길게 보면 '내 잘못, 내 탓'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고통스러운 삶을 스스로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고백하고 싶은 건, 나는 버터나 고기 음식을 먹게 한 상대방의 탓도 했다. 그러니까 나한테도, 상대방한테도 안 좋은 건 다했네.
피부에 트러블이 나는 이유를 찾아보니 호르몬 변화, 세균 감염, 유전성 요인, 정서적 긴장, 스트레스, 수면 부족, 화장품 등이 있다고 한다. 원인에 음식 이야기가 없음에도 예방 방법, 식이요법에 대한 내용에는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많네. 아마 호르몬 변화, 세균 감염, 유전, 스트레스는 여드름 환자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 때문이겠지.
그럼 나는 피부 때문에 오랫동안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피해자(?)로서 어떤 마음을 가져야 나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홀로 있을 때조차 부끄러움을 느끼는 우리
스스로 '감추어진 자기' '비밀스러운 자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러한 나를 받아들여 주리라는 믿음을 갖지 못하게 된다. 내가 나를 싫어하는데 다른 사람이 나를 좋아할 거라는 생각은 상당도 못하는 것이다. 나의 진짜 모습을 다른 사람이 알면 거절당할까 봐 우리는 두렵다. 그래서 더더욱 자신을 감추고 믿지 못한다. 자신에 대한 불신을 우리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한다. (중략)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일중독자가 된다. 있는 그대로 괜찮지 않은 자신을 열심히 일함으로써 보상받으려고 한다. 우리는 불안과 무가치하다는 생각을 느끼지 않으려고 계속해서 많이 먹는다. p114-115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정말 열심히다'라고 하면 나는 부끄러웠다. 사실은 집에서 먹토 한 적도 있고, 피부 때문에 나이 30 넘게 먹고도 어린애처럼 엉엉 울기도 했고. 학생의 옷 지적에 수업하다 말고 나와서 눈물을 닦고 다시 들어간 적도 있고. 영어공부한다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집중 못하고 유튜브 본 적도 있으니까. 내가 혼자 있을 때 나의 모습은, 매일 관계든, 일이든, 뭐든 전전긍긍하면서 불안해 떠는 사람이었으니까.
감추어진 나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 역시 나를 받아주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는 것보다 나에게는 뭔가를 하는 것이 훨씬 더 심적으로 편했다. 내가 수치심을 느낄 새를 주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술이나 게임에 중독되기보다 열심히 사는 모습으로 극복하는 나 자신이 그나마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낫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폭풍 같은 일이 끝나고 나면 더 큰 공허함과 헛헛함으로 눈물을 흘린 적이 많으니까.
2주 전에 미국으로 건너와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이 시간 동안에도 참 많은 것을 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물어볼 것을 대비해 오늘 한 일에 대한 답변을 준비했다.
아침에는 브런치 글을 썼어. 이게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데 좋은 것 같아서. 그리고 진짜 효과도 있는 것 같아. 그리고 기도를 하고, 성당에 다녀왔어. 마침 성당에 갔는데 십자가의 길을 해서 엄마랑 성지 다녀왔던 생각을 하면서 십자가의 길도 했어. 영어로 기도문이라도 말하니까 영어 공부도 되고 좋잖아. 집에 와서 잠깐 점심을 먹었어. (나만 먹는데) 청양 고추를 너무 많이 사다 놓은 것 같아서 얼른 먹으려고, 두부 1/3모에다가 간장 찍어서 먹고. 두부를 4개나 사놨는데 언제 다 없어졌냐고 할까 봐 1/2모는 못 먹겠더라고. 그리고 청소기를 한 번 돌렸어. 이건 눈치 못 챘겠지만. 집에 있으려고 하니, 자꾸 그래놀라에 손이 가서 할 일 하러 밖으로 나갔어. 대학교 도서관에서 책도 읽고, 파이썬 공부도 했어. 그리고 저녁 할 시간에 맞춰서 저녁을 하러 집에 와서 제육볶음 레시피를 찾아서 요리를 했어. 아 그리고 요가도 알아봤는데, 첫 등록 고객한테는 30불이면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었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다. '오늘 하루 잘 보냈어? 응! 잘 보냈어.' 이렇게 심플하게 답변하면 되는 질문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행동 하나에 구구절절 이유를 붙어가며 머리를 끊임없이 굴렸다. 그러니 혼자 있는데도 항상 피곤하고 지쳤다.
혼자 있는 시간에도 복잡하게 생각하는 나 자신이 싫었고, 내 생각이 지겨웠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말도 믿기가 어려웠고, 조금만 상대방의 표정이 안 좋아져도 '내가 너무 돈을 많이 써서 그런가? 내가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을 하고 있으니 옆에서 지겨운가? 지쳤나?' 하는 나의 탓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