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사랑은 제대로 된 사랑이 아닌 무조건적 사랑
.. 역설적이게도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의 전제 조건이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뒤집어 버린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두 번째 화살을 계속 맞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중략) 성폭행 피해자 중에 스스로를 비난하는 피해자가 그렇지 않은 피해자보다 심리적인 치료 예후가 더 좋다는 결과가 있다... 내 잘못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책임감이다. 그러나 비난의 대상으로 삼은 '나'는 바로 내 안에 있으므로, 이 또한 나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자책과 자기 비난도 근본적으로 나에 대한 사랑, 나를 보호하려는 자기애의 또 다른 표현이다. 자신을 어느 정도 비난하는 것은 스스로를 방관하지 않고 무력하게 버려두지 않는 역할을 한다... 단, 자기 비난이 오래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자기 비난과 같은 잘못된 책임감을 오랫동안 안고 가면 발달적 정체 상태에 빠지고 만다. 자기 연민이 필요한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잘못된 책임감으로 힘들어하는 '나'를 받아들이고 안타까워하며 눈물 흘려주는 것이 자기 연민이다. p96-97
나는 나의 피부가 좋지 않은 것이 '내가 가공식품을 먹어서, 내가 절제력이 없어서, 내가 중학교 때 폭식증으로 토해서'인 줄 알았다. 피부는 타고난 것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통제권 안에서는 최선을 다했다. 1) 가공식품 먹지 않기 2) 고기 먹지 않기 3) 유제품 먹지 않기 4) 땀 많이 배출되도록 운동하기 5) 일찍 잠들기 6) 술 마시지 않기. 7) 밀가루 끊기 이것을 모두 지켰는 데도 피부가 좋은 편은 아니었어서 그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걸 하자라고 생각한 것이 '몸무게 조절'이었다. 외모의 어느 한 부분에서는 최고가 되고 싶었다. 성형으로 완벽한 탈바꿈하는 것도 방법이었겠지만, 그건 타인에 의존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제외했다. 반면, '뼈 말라'는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너 '진짜' 말랐다. 이 얘기를 듣고 싶었다.
너 '진짜' 예쁘다. 또는 너 '진짜' 피부가 좋다. 는 들을 수 없으니까.
피부는 많은 것을 조절해야 겨우 좋은 상태로 유지될 수 있는 반면, 살은 안 먹거나 운동하거나 둘 중 하나만 하면 됐다. 나에게는 너무 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걸 못 지키는 날에는 '폭식하고 토하기'를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목이 너무 쓰라려서 토도 못하겠다고 생각했 던 날, 변기 앞에서 운 적이 있다. 내가 너무 불쌍해서. 그 뒤로는 다행히 먹토는 거의 고쳤다. 대신 적게 먹기, 운동 많이 하기로 전략을 바꿨을 뿐.
그때 거의 처음으로 스스로를 '불쌍하다'라고 생각해 본 것 같다. 자기 연민이었을까. 그런데 오래가지는 못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토한 나 자신이 한심했고, 내 학생들이 보면 진짜 수치스럽다로 생각이 바뀌었다.
치유의 시작점은 우리가 맞은 두 번째 화살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런데 우리가 나를 찾는 영적인 여정을 더 깊이 걸어갈수록 그 화살을 점점 더 예민해진다. 어떤 특정한 생각에 아주 약간 기울어지려 하면 얼른 스스로에게 불만을 품는다. '나에겐 뭔가 문제가 있어.'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p97
"당신이 끊임없이 고통에서 도망가고 기쁨을 구한다는 사실은 당신이 스스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징표다."라는 구절은 잘못된 도피처가 지금까지 우리가 스스로를 돌보기 위해 기울인 최선의 노력이었음을 말해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비난하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자신에 대한 사랑을 더 완벽하게 만들어야 한다. 무엇이 가장 완벽한 사랑일까.
나는 내가 피부도 좋지 않고, 얼굴도 그렇게 예쁘지 않고, 항상 뭔가 열심히는 하는데 선생님으로서 수업이 진짜 재밌는 것도 아니고, 영어 공부는 매일 하는데 영어 실력이 중급 이상도 아니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자존감이 낮다고 생각했고, 자존감에 대한 영상이나 책을 정말 많이 읽었었다. 그 시기에 엄마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는 너에 대한 생각만 하고 있어. 너에 대한 기준이 엄청 높은 거지. 그러니까 네가 자존감이 낮은 게 아니라 오히려 자기를 높게 평가하는 거야." 그 말을 듣고 이유는 모르겠는데 화를 냈던 기억이 있다.
위 구절을 읽고 이때 엄마와 싸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의 말도 맞고 내 말도 맞았네. 나는 나를 너무 사랑해서 뭐든 잘하고 싶었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나를 완벽하게 사랑하는 건데?라고 의문이 들던 찰나 바로 이런 문장이 나왔다.
여기서 '완벽하다'는 '제대로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완벽하다'는 것은 '무조건적인'이라는 의미다.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을 거두지 말고, 자신의 존재를 자신의 가슴 바깥으로 밀쳐내지 말라는 것이다. p99
완벽한 사랑을 위해서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닌 그냥 무조건적으로 나를 받아들이라는 뜻. 그냥. 이유 없이. 근데 어떻게 그렇지.
오늘 아침에도 배우자와 일이 좀 있었다.
나는 피부 때문에 오랫동안 고기랑 유제품을 멀리해 왔다. 일주일에 한 번 밖에서 외식을 하거나 친구, 데이트를 만날 때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한 대가(?)로 나에게 그런 음식을 허락해 주었다. 혹시 피부에 트러블이 나도 스스로에게 납득이 될 것 같아서. 피부보다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먼저이니까. 문제는 결혼을 하게 되면서 이제 좋아하는 사람과 매일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러니 매일 고기나 버터가 들어간 음식을 쉽게 먹게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언젠가는 이런 음식에 대한 제한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 나도 안다. 그런데 지금 당장 갑자기 고기를 안 먹던 사람이 야채와 곁들여진 제육볶음도 아니고, 고기만 덩그러니 있는 스테이크를 먹거나, 두부를 먹는데 버터가 묻은 기름에 만들어졌거나, 볶음밥이 계란 볶음밥일 때는 여전히 당황스럽고, 마음속으로 많은 생각이 든다. 힘들게 만들어줬는데 고마운 마음에 맛있게 먹고 싶지만, 머리는 복잡하다.
오늘 브런치로 버터 + 소고기 스테이크 (고기 중에는 소고기를 제일 속 불편해함), 그 기름으로 두부를 구워주었다. 이제 곧 생리할 때라 어제 배 아파서 새벽에 깰 정도로 컨디션이 안 좋았는데, 그 얘기를 들으니 기분이 확 안 좋아졌다. "나 버터에 구운 거면 소고기는 반쪽만 먹을게." 나도 모르게 말을 뱉었다. 그러고 브런치를 먹는데 뭔가 모르는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밥을 다 먹고 내가 "버터에 구워서 고기 적게 먹는 게 첫마디여서 미안해."라고 말했다.
그러자 "나 갈게." 하고 준비하고 오피스로 떠났다.
내가 버터와 고기를 먹으면 마음이 불안하고, (심리적인 문제인지 몸이 정말 안 받는 것인지) 트러블이 올라오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짜증이 나고, 나이 30대 중반이 됐는데도 이런 거에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나 자신이 답답했다.
그러다가 화도 났다. 아니 나도 아무거나 먹고 싶어! 내가 이러고 싶어서 그래? 내가 고기 먹는 거, 버터 먹는 거 싫어하는 것 뻔히 아는데 이런 표현도 못해?
이거 먹고 피부에 뭐 나면 어떡하지. 언젠가 먹어야 하는데 뭐. 근데 차차 늘리려고 했는데 갑자기 2주 동안 거의 매일 고기, 계란, 또는 버터를 먹는 건 나에게 너무 가혹한데. 나도 배려 많이 했다고. 지난주 금요일에도 외식할 때 치즈가 듬뿍 들어간 음식만 파는 샌드위치 먹으러 갔었잖아. 그날은 심지어 소화가 안 돼서 허리를 잘 펴지 못할 정도로 배도 아팠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내 이런 피부에 대한 스토리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 나일 것이다. 내 주변 가족들도 지겹겠지만 내가 제일 지겹다. 배우자도 지겹겠지만 내가 더 지겹다. 하루에 세끼를 먹는 동안 내 살과 피부를 동시에 계산하는 나 자신이 지겹다.
그렇게 조절하지 않아도, 피부가 좋은 사람들이 보기에 얼마나 내가 별거 아닌 거에 매달리는 느낌일까. 응 나도 알아. 근데 네가 뭘 알아? 중학교 때 드름이라는 별명 들어본 적 있어? 대학생 때 동기 오빠에게 'OO아 너 피부 진짜 더럽다'라고 얘기 들어본 적 있어? 모든 사람이 내 피부만 쳐다보는 것 같아서 눈도 못 마주치고, 불 끄고 세수하는 기분을 알아? 세수할 때 오돌토돌한 게 몇 개 있는지 매일매일 테스트하는 기분으로 세수하는 기분 알아? 환한 빛이 있는 공간에는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내 피부가 더러운 게 보이면 어떡하지 하는 이런 내 복잡한 마음을 아냐고!
이런 감정이 오늘 아침에 올라와서 화가 났다. 그러다 문득 배우자가 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 스스로에 대한 화남이었고 외침이었다. 밥을 먹는 내내 배우자의 눈치를 봤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또 피부에 대한 걱정으로 (음식을 맛있게 해 준 사람에게) 고기 적게 먹겠다는 말부터 뱉었네 하는 나 자신에 대한 화남 때문에 나는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다.
내가 제일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고 있다. 사실 진정으로 이해해주고 있다면, 매일 피부 때문에 걱정하는 내 마음을 안쓰럽게 여겼다면 나는 당당하게 스테이크를 해준다고 말했을 때부터 "나는 스테이크는 별로 안 당겨서, 내가 따로 구워 먹을게. 고마워"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 마음보다는 상대방이 함께 먹는 즐거움을 느끼는 게 내 걱정스러운 마음보다 우선이었다. 아마 상대방은 내가 얼마나 피부 걱정을 하고 있는지, 소고기나 버터에 벌벌 떨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그런 마음을 직접적으로 자세히 표현한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하루에도 수십 번, 이런 똑같은 생각을, 10년 넘게 해온 저의 순간에 "예"라고 허용해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