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런 선택을 한 자신에 대해 또다시 비난하고 자책하기 시작한다.
정신없게 사는 것도 그 한 가지 방법이다. 방사상으로 뻗은 횡단보도를 개미 때처럼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정말 바쁘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들이 바쁘게 지내면서 많은 것을 성취하려고 하는 , 그리고 무언가를 고치고 향상하고자 하는 모습은 마치 전투를 하는 모습과도 같다. 적어도 혼신의 힘을 다하는 동안은 '나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 부족하다'라고 느끼지 않는다. p68
정신없게 뭔가를 해 왔다. 급한 일이 없는 주말 낮에도, 횡단보도에 섰을 때 딱 초록불로 바뀌어서 시간을 아낄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저 멀리서부터 뛰어갔다. 예전에는 엄마도 나에게 너는 정말 쉴 틈을 안 주는구나. 언제 엄마랑 시간 보낼래? 하면서 아쉬워하셨다. 그때는 그 말이 서운했다. 할 일이 많은데 어떻게 하라고! 이런 마음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꼭 그날 하지 않아도 되는 영어 공부나 책 읽기, 그냥 취미일 뿐이었다. 그냥 내가 세워놓은 강박적인 루틴을 하기 위해 해나가느라 주변에 가족들에게 항상 나는 '바쁜 딸, 바쁜 동생'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항상 부족함과 공허함을 자주 느꼈다. 아무리 해도 원어민처럼 안 되는 영어 실력에, 아닌 한국에서 영어를 웬만한 잘하는 사람보다 못하는 실력에 참 가성비 없게 공부했다라고 자책했다.
... 그런데 사람들이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잘못된 도피처가 있다. 바로 '모든 일을 항상 올바르게 하려는 성향'이다. 우리는 모든 일을 실수하지 않고 완벽하게 해내려고 한다. 어떤 선택의 순간에도 가장 효율적이고 완벽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생각을 거듭한다. 뭔가 잘못되지 않을까, 혹은 잘못된 결정을 내리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혹 잘못된 결정이라고 스스로 판단되면 거기에 집착해 후회하고 자책한다. 그것은 일상의 아주 작은 일에서도 일어난다. p69-70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리고 엄마 아빠가 얼마나 돈을 힘들게 벌었는지 깨닫게 되면서 물건을 사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던 것 같다. 부모님이 힘들게 버신 돈으로 내가 의미 없는 걸 사서, 안 쓰게 되는 나 자신을 용납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어떤 가방은 계속 보기만 하다가 일 년 뒤에 결국 오빠가 사준 적이 있다. 그때 그 방을 선물 받기까지(?) 이런 생각의 과정이 있었다.
백팩이 하나 필요한데. 이 가방 예쁘다. 아니다. 이 가방은 나한테 너무 클 것 같은데? 근데 나 백팩 이미 있지 않아? 흠 근데 그 백팩은 노트북까지 들고 다니기는 어려워. 노르웨이 가서 쓰려면 한국 브랜드보다는, 그래도 외국 브랜드 가방을 사는 게 낫겠지? 아, 노르웨이는 비랑 눈이 많이 오니까 방수가 되면 좋겠다. 이건 방수가 되나? 근데 엄마는 가방이 여러 개 있지 않은데, 내가 가방이 있는데 또 가방을 사도 되나. 엄마한테 가방을 사드린 적은 있었나. 그래도 석사 하러 가는데 뭔가 새로운 마음으로 예쁜 가방은 하나 사고 싶다. 나도 돈 버는데 이 정도 돈은 나에게 써도 되지 않을까? 무슨 색이 좋을까? 내가 보통 어두운 색의 옷이 많으니까 가방은 좀 밝은 베이지 색이 낫겠지? 근데 비랑 눈이 오면 금방 더러워지긴 할 텐데. 하. 그런 생각까지 다 하면 가방 못 자. 적당히 생각하고 그만 주문하자. 시간이 금이라는데 고민하다가 오히려 가방 더 비싸지겠네.
가장 가성비 있고, 예쁘고, 부모님께도 미안하지 않은 완벽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나는 애썼던 것이다. 생각과 판단의 악순환은 중독처럼 이어져 끝에는 '백팩 사는 결정도 쉽게 못하는 내가 답답하다'라고 자책까지 했었다.
... 아직 한참이나 부족하다고 여기며 만족하지 못했다... 6-7년간 더 열심히 했다. "제가 이제 뭘 더하면 될까요?" 그러자 스승들은 한결같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냥 편히 쉬어라." 그러면 나는 "네, 알겠습니다. 편히 쉬기만 하면 된다는 말씀이죠?"라고 하며 그것을 나의 다음 수행으로 삼았다. 그다음은? 나는 편히 쉬는 것에 도사가 될 지경이었다. 수행에 있어서도 강박적인 성향을 버리지 못했던 나의 어리석은 시절의 이야기이다. p71
며칠 전 산책하면서 집으로 오는 길에 내 옆에 있던 사람에게 '나는 시간이 지나면 항상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나름 정말 최선을 다하는데, 왜 항상 그립고 아쉽고 후회되는 일이 많을까. 내가 뭘 더해야 아쉬운 마음이 없을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냥 즐겁게 시간을 보내면 돼'라고 말했다. 그 답을 듣고 나는 또 어떻게 하면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을 시작했다.
내가 상담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OO 씨 아무것도 안 해도, 그냥 쉬어도 괜찮아요."였다.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 돈과 시간을 쓰면서 상담에 왔으니까 나는 시간과 돈을 축내는 사람이었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스스로를 '돈이 남아돌아? 누구는 밥 사 먹을 돈도 없어서 아낀다는데, 상담에 그렇게 많은 돈을 쓰고.'라고 생각하면서 채찍질했다. 그러니까 빨리 마음아, 좀 나아지라고. 마음속에서 재촉하고 있었다. 상담에서도 50분 내내 정말 최선을 다했다. 할 말이 없어도, 가만히 뜸 들이는 시간이 아까워 생각을 쥐어짜 내 뭐라고 얘기하고, 그것에 대한 선생님의 조언이나 공감을 받아 마음이 충만해지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상담 시간 내에서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 그만큼 우리는 자기 계발이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으며,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모니터링한다. "내가 지금 더 좋아지고 있는 걸까?" "내가 기준을 충족하고 있는 거야?" "자격증을 더 따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우리가 충족시켜야 할 기준은 만족되지 않는다. 내가 세운 기준, 세상과 사회가 부과하는 기준은 언제나 지금 내 모습과 너무나 멀고, 설령 기준에 도착했더라도 또 다른 기준이 새롭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마치 신기루처럼 말이다. p75
고등학교 때는 원하는 대학 진학이 나의 목표였다. 대학교 때는 영어 공부, 학과 공부, 요가 수련이 나의 목표였다. 대학교 4학년 때는 임용 시험 합격이 나의 목표였다. 선생님을 하면서는 '아이들의 이름을 최대한 많이 불러주기,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대하기'가 나의 목표였다. 4년 차 때는 '석사 유학, 영어 공부'가 목표였고, 석사 때는 '논문 마무리, 혼자 살며 자유로워지기'가 목표였다. 복직 후에는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대하기, 영어 공부, 석사 논문 publish 하기'가 목표였다.. 그렇게 커리어에 목표를 두고 살아온 내 삶에 후회가 되고 나서부터는 나의 목표는 '가족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기, 가족들과 시간 많이 보내기, 사랑하는 사람 만나기' 등이 목표였다. 항상 목표가 있었다. 차라리 커리어에 목표를 두고 있었을 때는, 혼자 시간을 쏟아부으면 됐다. 그런데, 관계 속에서 목표가 생기니 내 뜻대로 안 되고, 뭔가가 나를 더 옥죄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늘 판단하고 결정하려 한다. 자신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평가한다. 판단은 부정적인 쪽에 무게를 둔다. 나는 왜 이럴까. 왜 그랬을까. 그리고 두려움과 상처, 분노를 느끼는 자신을 비난한다. 뭘 두려워하는 거지? 왜 그때 화를 낸 거야. 그것도 못 참니? 같은 생각들. 우리는 그런 감정을 느끼는 자신이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과식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지나치게 시청하는 방법 등으로 그 짐을 덜어내려고 한다. 잘못된 도피처에 마음을 숨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알기에 우리는 그런 선택을 한 자신에 대해 또다시 비난하고 자책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1차적 수치심과 2차적 수치심이라는 악순환의 사이클이다. p78
부끄럽지만, 수업을 하면서도 나는 학생들을 평가한 적이 있다. 그럼 그런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왜 그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선생님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런 나의 생각의 꼬리를 잘라내기 위해, 학생들에게 더 말을 많이 걸었고, 나에게 잠깐의 쉬는 시간도 허락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나를 '친절한 선생님'이라고 좋아해 줬지만, 사실은 나의 생각을 멈추게 하기 위한 다른 행동으로 도피였다. 그래서 나는 생각의 악순환으로 학생들이 나를 좋아하면 더 죄책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진심으로 너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 아니고, 그냥 내 생각의 꼬리를 끊어내기 위해서 말하고 있을 뿐인데 하면서 말이다.
다시 말해 1차적 수치심은 현재 있는 그대로의 나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느낌과 감각을 말한다. 그 감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뭔가에 정신을 쏟다가 중독의 악순환에 걸려든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이 잘못된 도피처에 빠져든 것을 알고 다시 수치심을 느끼며 점점 더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긴다. p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