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식장애
나는 정말 폭식을 하고 있는 것인가. 배부르다는 착각 인가. 우선 이 부분부터 나 스스로가 판단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나는 중학교 때부터 몸무게에 관심이 많았고, 내 몸이 영양학적으로 필요한 칼로리 기준인지, 심리적으로 만들어낸 칼로리 기준인지 혼동된 지 20년이 다 되어 가기 때문이다. 나의 현재 키, 몸무게를 말하면 저체중이기 때문에 그건 그냥 몸이 그만큼 칼로리가 필요한 거야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키와 몸무게를 말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에게 몸무게는 단순히 말라 보이고 싶은 것 이상으로 복잡한 나의 여러 경험과 심리적 요인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폭식했던 나의 과거 경험, 그리고 여전히 스트레스받으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 경험은 나에게 숨기고 싶은 부분이다. 최근 거의 이 습관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미국에 와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다시 올라오려고 하자 겁이 난다. 그래서 브런치를 열고 무작정 쓰려고 열었다.
마침 최근 '자기 돌봄'책에서도 폭식을 다루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뭐라도 써보자.
'폭식을 멈추고 싶어, 그런데 멈춰지지 않아. 이런 내가 너무 부끄러워.' 그녀를 괴롭혀온 이런 생각과 느낌은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것이 자신의 아니라는 것, 다만 자신에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음식을 더 먹는 것을 묵인하고 방조하는 자신의 마음과 그에 따른 두려움과 수치심이 나 때문이 아리나는 사실에 닿는 순간 그녀에게는 '커다란 열림'이 일어났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인식하고 허용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런데 음식에 대한 중독을 일으키는 장본인이 자신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p111
내가 섭식장애를 처음 했던 경험은 중학교 때였다. 몸매에 관심이 많고, 남자친구도 있던 평범한 사춘기 학생이었다. 당시 남자친구는 아주 마르고 소위 노는 학생이었는데,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마르고 싶다는 욕망이 들기 시작한 것이.
이전에 나는 초등학교 5, 6학년 때 아주 잘 먹고 볼살이 통통한 아이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크는 과정에 어린아이었을 뿐이었다. (몸무게가 40킬로 조금 넘었다. 물론 키는 140대) 그런데 작은 아빠가 내 뱃살을 꼬집으며 '으휴 이것 봐봐'라고 웃으며 장난을 쳤던 경험이 있었고, 살찐 사람은 자기 관리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아빠는 나를 헬스장으로 데려가 PT를 시켰다. 오히려 볼살이 통통하고 주변에서 그런 얘기를 들을 때는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고, 그런 어른들의 잔소리 때문에 덜 먹지도 않았다. 오히려 교정기가 빠질 정도로 감자탕을 씹어먹거 매일 교정기가 떨어지기 일쑤였고 그래도 '헤헤'하는 내 인생에 가장 해맑은 시절이었으니까.
그런데 중학교 때 몸매에 관심이 생기면서, 이때 경험이 떠올랐던 것 같다. '더 예뻐지기 위해서 내가 뭘 해야 할까.' 그때 떠오른 것이 살 빼기였다. 몸무게가 50킬로도 안 됐던 것 같은데, 나는 엄마가 없는 점심에는 요구르트 하나만 먹고 버텼다. 그러자 살이 쭉쭉 빠졌다. 그러니까 친구들이 '왜 이렇게 말랐어.'라는 이야기를 해줬고, 나는 그것이 칭찬으로 들렸다. 그리고 엄마가 나를 걱정해 주기 시작했다. 맞벌이를 바쁘셨던 엄마가 좀 아파 보이자 (연약해 보이자) 관심을 주셨고, 나는 그게 좋았다. 거기서 멈췄으면 좋았겠지만, 안 먹다 보니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이 좀 생겼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초콜릿을 먹고, 후회가 돼서 변기를 잡고 초콜릿을 토해냈던 기억이 있다. 가나 초콜릿 하나 정도 먹었던 것 같은데, 그게 나한테는 폭식이었고, 그걸 다 토해내자 예상치 못한 개운함과 쾌감을 느꼈다.
다행히 나는 중3 때 외고를 준비한다고 공부만 했고, 자연스럽게 외모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학원으로 바빠지면서 먹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할 시간이 없어 자연스럽게 먹토는 줄어들었다. 그리고 아마 직업이 생기고 20대 중반이었던 것 같다. 내가 다시 살을 미친 듯이 빼고 싶어 졌던 때가.
정말 부끄럽게도.. 학생들을 만나는 교사라는 직업을 시작하면서 나의 섭식장애가 다시 시작되었다.
사람들(학생들) 앞에서 예쁜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가르치는 것 말고도 외모로도 인정받고 싶었다. 성형 수술은 돈이 들고 위험요소가 있으니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살'을 선택했다. 그리고 당시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남자친구에게 관심받는 방법은 '연약해 보이는 것'이었던 것 같다.
당시 나의 목표는 '여리여리하고 예쁘게 마른 선생님'였다. 그래서 나는 요가를 매일 하루에 두 타임씩 듣고, 일요일까지 했다. 꼭 이 이유만은 아니었지만, 먹을 것을 생각할 시간을 없애버리게 움직였고, 먹는 것은 최대한 줄였다. 교사로서 두 번째 방학을 맞이했을 때 나는 몰타로 3주 여행을 갔었다. 그때 정말 빵 한 조각이 한 끼였고, 과일 먹고 토한 적도 있고, 가장 심한 식이장애를 겪었던 것 같다. 몸무게가 37킬로까지 빠졌는데, 한번 최저점을 찍고 난 앞자리 4만 봐도, 큰일 난 것 같았다.
내가 섭식장애를 멈추게 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토가 안 나왔던 어는 날 때문이었다. 많이 먹으면 토하고, 다시 원상복구를 할 수 있었는데, 전날 토한 탓인지 목의 근육이 아파서 더 이상 토를 하기 위해 힘을 줄 수가 없었다. 너무 아팠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아 이제 많이 먹어도 토할 수 없을 때도 있구나. 그럼 안 되지. 토를 멈추자. 이런 마음이었다.
다행히 예전처럼 아주 많이 먹고, 토하는 일은 최근 기억에 없긴 하지만 오늘 마음껏 먹고 토하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요가를 다녀온 후) 오후 1시 30분. 배고픈데 뭐 먹고 싶다. 남편은 오늘 아침에 같이 오트밀을 먹고 간 후 이따 저녁에 나랑 밥 먹으면 된다고 했는데? 나는 그런데 아침에 먹은 오트밀로는 아침 허기짐이 채워지지 않았어. 왜 나는 오트밀로 허기가 채워지지 않는 거지. 내가 더 덩치가 크지 않은데. 그렇지만 나는 요가 갔다 왔잖아. 남편도 오피스에서 뭔가 먹을 수 있지? (체크카드 내역 확인 후) 흠.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배 안 고픈가? 그 정도로 일이 바쁜가? 나도 바빴으면 먹는 거 떠오르지 않고 좋았을 텐데. 시간이 많으니까 뭔가 더 먹고 싶어지는 것 같아. 내가 혼자 있을 때 두부를 계속 먹고 있는데, 나중에 두부 요리 해 먹자고 했는데 내가 다 먹은 상태면 어쩌지? 그때 장본 상태 그 재료는 계속 남아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래놀라도 먹고 싶다. 그래놀라 근데 줄어들면 또 이번 주에 가서 사야 하는데. 벌써 그래놀라 다 먹었냐고 하면 어쩌지. 조금씩 먹은 티 안 나게 몇 입만 먹자.
돈을 쓰는 것에 대한 눈치인지, 그냥 먹는 것에 대한 눈치 인지. 그래서 오늘 요가를 다녀온 후, 두부 1/3모, 청양고추 +간장, 황태포무침 6조각, 오트밀 + 그래놀라 + 요구르트 한 접시, 포도 4알, 정도 먹었다. 그런데 이걸 처음에는 두부만 먹으려고 했다가, 허기가 차지 않자 조금씩 늘려나간 것이다. 여전히 허기가 져, 꿀과 메이플 시럽, 땅콩버터 한입씩 번갈아 먹으며 당을 충전했다. 먹다 보니 그냥 고삐가 풀어질 것만 같았다. 다행히 황급히 치울 수 있는 자제력이 있었고, 양치를 하고 책상 앞에 앉아 거의 2시간째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남편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내 마음이 목소리 인가. 그렇다면 나의 이런 목소리는 어디서 오는 건가.
나 때문이라는 협소한 생각에서 벗어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문화 등 모든 외적 조건을 고려해 보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무엇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느끼도록 만들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인간 역시 어머니의 사랑이 충분치 못한 경우 다른 데서 그 허전함을 채우려 하고, 정서적으로 우울과 슬픔에 빠지기 쉬우며 스스로를 미워하기도 한다. 그녀가 그랬다. 이 모든 것을 헤아린 그녀는 폭식이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 나아가 폭식을 일으킨 다양한 원인과 조건을 알게 되었다. p110
그녀는 수련을 거듭하면서 자책하려는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니야. 단지 나에게 일어난 일일 뿐이야.'라는 새로운 메시지를 자신에게 계속 보내는 연습을 했다. 물론 이것은 그녀가 정당하게 책임져야 할 것을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내 책임이 아니니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없다.'라는 태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능동적인 해결을 찾으려는 자세를 불러왔다. 즉 나에게 일어난 일일 뿐이라고 허용함으로써 자신이 처한 상황에 현명하게 대응할 수 있는 틈, 혹은 자유를 갖게 된 것이다... 자신을 비난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이 변화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강박적으로 음식을 먹는 사람이 아니라 거기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관찰하면서 친절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각의 현존이 되었다. p112
나의 섭식장애의 외부적 요인은 무엇일까. 엄마가 어렸을 때 일하기 시작하면서 사촌언니나 삼촌에게 나를 맡기고 갔을 때 내가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것일까. 내가 아파야지만 엄마가 돌봐줬던 기억 때문에 마르고 싶고, 연약해 보이고 싶고, 오히려 아프면 묘한 안도감을 느끼며 쉴 수 있는 것일까. 내가 식이장애로 나를 수치스러워하기보다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고 말할 정당한 요인은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내가 눈치를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은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 남편이어서 배우자 눈치를 보고 있지만, 사실 부모님과 함께 살았을 때는 엄마가 돌아와서 '어 이거 누가 다 먹었어?'라고 하는 상상을 했었기 때문에 이건 배우자나 부모님의 탓은 아닌 것 같다. 지금은 내가 돈을 벌고 있지 않아서 돈에 대한 눈치가 추가되었을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