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과 싸우고 싶지 않다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야. 나는 특별하지 않아. 나는 무가치한 존재야." 이러한 날것 그대로의 느낌을 느끼는 것은 무척 괴롭다. 그래서 우리는 "나는 거절당할 거야. 나는 혼자 상처와 수치심을 느껴야만 할 거야."와 같은 핵심적인 괴로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 다양한 전략으로 자신을 무장시킨다. (중략)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위장전략을.. 마련해두고 있다. 어떤 이는 커다란 성취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또 '눈에 띄지 않음'이라는 망토를 뒤집어쓰고 스스로를 가려버린다. 자신의 경험을 속이거나 망토를 뒤집어쓰고 스스로를 가려버린다. 자신의 경험을 속이거나 과장하거나 왜곡하기도 한다. 섹스나 도박, 약물, 카페인, 향락 같은 여러 중독 행동에 탐닉하기도 한다. 모두 자신의 취약함을 감추기 위한 우주복들이다. (p30)
나의 위장 전략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던 것 같다.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는 것. 나는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름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것으로 인해 얻어지는 성취와 주변 사람들의 인정도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혼자 있을 때에도 마치 누가 갑자기 연락 와서 뭐 해?라고 물어봤을 때 '누워서 유튜브 봐 또는 친구랑 놀고 있어'라고 말하기가 싫어서 부단히 뭔가를 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누군가의 연락에 대한 답변 준비라기보다는, 내 마음속에 CCTV가 있었던 것 같다.
요가를 할 때에도 순간순간 집중하지 못하는 내 모습에 '오늘 요가는 좋은 수련이 아니었다'라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오늘 요가 어땠어?'라고 물어볼까 봐 항상 전전 긍긍했다. 안부차 같이 요가하는 친구가 물어보면 그냥 심플하게 '응 좋았어.'라고 말하면 될 텐데, 너무 진지하게 누군가 할 수 있는 질문에 끊임없이 좋은 답변을 하기 위해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사실 처음에는 어렸을 때부터 엄격했던 엄마의 목소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노르웨이로 석사 유학을 떠났을 때, 내가 학교를 가든 안 가든, 심지어 내가 여기서 혼자 죽어도(?) 아무도 모를 땅 덩어리에 와 있는데도, 나는 그 자취방에서 항상 분주했다. 매일 같이 운동을 갔고, 매일 도서관에 가서 논문 한 줄이라도 쓰고 왔다. 엄마가 '딸, 잘 지내고 있어?'라고 물어봤을 때 '잘 지내고 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다. 사실 그냥 밥 잘 먹고 있는 것도 잘 지내는 것일 텐데, 매일 운동하고 논문 쓰고 있냐는 걸 물어보는 것은 아니었을 텐데.
상담을 하면서,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데에는 분명 나에게 이득이 되는 기능이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기능은 뚜렷했다. 최선을 다하면 성취가 분명히 따라오니까. 운동을 하면, 날씬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고, 논문을 열심히 쓰면 논문이라는 결과물이 나오니까. 그런데 문제는, 잠시라도 나의 쉼을 허락하지 못하고, 내가 유튜브를 보거나 잠시 여유를 가지면 불안했다는 것이다. 누군가 연락이 올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대상이 없는 누군가에 대한 원망이 생겼다. "왜 날 내버려 두지 않아. 나 좀 쉬자."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나에게 안부를 물어보는 친구도 그렇게 많지 않았고, 그냥 '안녕' 정도의 인사였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최선을 다해서 인정을 받고 싶다는 내 마음속의 CCTV가 매 순간 작동해 나를 괴롭혔던 것 같다.
그 가운데 우리가 사용하는 가장 일반적인 '우주복' 전략, 다시 말해 우리를 부족함의 느낌에 계속해서 가둬놓는 가장 기본적인 전략은 바로 '판단'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못마땅하게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더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고 있다. 이것 역시 우주복 전략 중 하나다. 우리는 자신을 바꾸려고 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 지금 상태로 '괜찮지 않다.'는 무력감을 있는 그대로 맛보지 않기 위해 그로부터 달아나려 한다. 무가치함이라는 미몽 상태에 빠진 우리는 다양한 은폐 전략을 마련한다. 그리고 자신을 그것과 동일시해 버린다. 그 우주복이 곧 '내가 누구인가'를 말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p30)
가만히 있으면 '괜찮지 않다'라는 생각이 내 마음속 깊이 박여있었다. 지금도 알아차렸을 뿐 여전하다.
선생님의 가장 좋은 장점은 방학이라고 하는데, 사실 나는 그 방학이 항상 불편했다. 학기 말이 되면 생기부 업무와, 아이들의 상담으로 이해 육체적으로는 너무 쉬고 싶었지만, 갑자기 출근을 안 하게 됐을 때 내가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 같은 느낌에 허우적거리는 게 더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정신 건강의학과 상담도 1월에 시작했고, 심리 상담도 7월에 시작했었던 것 같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과 싸우고 싶지 않다. (p35)
정말 나는 더 이상 나 자신과 싸우고 싶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 배우자의 눈치를 보며 (사실은 내 마음의 눈치를 보며) '제발, 오늘은 뭐 할 거냐고 물어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전전긍긍하고 싶지 않다. 하루를 묻는 가벼운 질문에 가볍게 글 쓰고, 책도 읽으려고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글 쓴다고 하면, '무슨 글? 작가도 아니잖아? 네가 쓰는 글 몇 명이나 읽는데?라는 (스스로의) 예상 질문에 구독자는 29명이고, 그래도 10개 이상의 좋아요는 눌려. 한 명이라도 천천히 읽어주면 너무 감사한 일인 것 같아.' 라며 덧붙이는 나의 대답을 그만하고 싶다. 생각했으면 그렇게 말이라도 하든가.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하고, 내가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않고, 그냥 심플하게 살고 싶다. 나의 마음과 치열하게 싸우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