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걱정을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해결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해결하려는 생각들
운명과 맞서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바로 우리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과 신념을 점검해 보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각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우리는 자신의 생각에 반드시 굴복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을 알게 된다. "너의 생각을 믿지 마라"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가르침 중 하나다. p126
.. 나의 신념을 파악하기 전, '나는 나 자신을 모른다'는 가정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정확하고 정직하게 신념을 파악할 수 있다. p131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라는 책에서도 이야기의 핵심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틀릴 수도 있겠지. 나 주장이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야라고 내가 이미 그것을 잘 행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나의 생각은 남들에게 하는 주장이 아닌, 내가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내가 미국을 가기로 마음먹기까지 2년의 시간이 걸렸는데, 그때 가장 많이 들었던 걱정은 부모님의 건강이었다. 이제 60대 중반이 되신 부모님이, 내가 미국에서 돌아오면 최소 5년은 걸리는데 70이 넘으실 거고 그 사이에 언제 어떻게 되실지 모른다는 걱정이 마음을 너무 힘들게 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 한국까지 경유밖에 안 되는데, 그 15시간 넘는 비행시간과 경유하는 시간 동안 부모님의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내내 울면서 갈 나의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꽉 막히고 벌써 눈물부터 났다. 지금도 가끔 이런 걱정이 꼬리를 물면 미칠 것 같을 때가 있다. 이런 얘기를 상담 선생님과 했었는데, 상담 선생님께서는 '물론 걱정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요즘 기술이 좋아져 70세에 돌아가실 확률이 낮기도 하고, 오히려 보통 사람이면 다녀와서 칠순 해드리면 되겠다고 할 텐데, OO 씨는 너무 걱정이 많은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해 주셨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너무 오버하는 거였나 싶어서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지만, 여전히 그 걱정이 밀려오면 너무 불안하고, 한국으로 당장 돌아가고 싶다. 그런데 나를 불안하게 하는 이 걱정은 지금 일어나지 않았고, (부모님이 지병이 있으신 것이 아니기에) 일어날 확률도 매우 낮다. 그리고 내가 미국에 왔다고 부모님이 아프시는 게 아니라, 혹여나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것은 나의 탓은 아니다. 상상하기 싫지만, 일어날 일이 일어났을 뿐.
극단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걱정하고, 불안함을 느끼는 것에는 '기능'이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상담선생님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이렇게 불안함을 느끼면 뭔가를 더 열심히 했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열심히 살지 않으면 그 벌을 우리 가족들이 받을까 봐였다. 예를 들면, 내가 오늘 열심히 살지 않거나 학생들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으면, 그 대가로 가족들이 아프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반대로 내가 열심히 살면, 가족들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가 나의 생각이었고, 그것은 내가 열심히 사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그런 마음속 깊이에는 나는 가만히 있으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자격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뭔데, 그런 호사를. 내가 결혼을 하고도, 엄마, 아빠, 오빠랑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을까. 소중한 사람을 한 명 신께서 보내주셨으니, 또 나의 소중한 누군가는 데려가겠지. 그럴 거면 나는 그냥 혼자 살아도 충분히 괜찮은데. 그러니 내가 미국 와서도 행복한 순간이 있을 때는 항상 한편으로는 불안하고 울컥울컥 한다. 이럴 때 상담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을 떠올리려고 한다.
"OO 씨는 충분히 그럴 자격 있어요. 그리고 정말 OO 씨가 열심히 살지 않으면, 부모님이 아프시게 될까요? 혹시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건 OO 씨 때문이 아니에요."
간디는 말했다. "당신의 신념이 당신의 생각이 된다. 당신의 생각이 당신의 말이 된다. 당신의 말이 당신의 행동이 되며 당신의 행동이 당신의 습관, 당신의 습관이 당신의 성격, 당신의 성격이 당신의 운명이 된다." p125
이 문구를 보니 또 마음이 조급해졌다. 내가 하는 생각이 말이 되고 행동이 되고 운명이 된다니. 그러면 얼른 나의 생각을 바로 잡아야 하는데. 내 부정적인 생각이 운명이 되면 우리 부모님은? 나는? 이렇게 이어지는 것이다. 뭐든 조급하고 마음이 급하다. 팩트는 내가 하는 생각이 내 주변 모두의 운명을 결정지을 만큼 큰 영향력이 있지는 않다. 아니 관련이 없겠지 사실. 그런데 이 책에서 계속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나에게 통제권을 주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함으로써 사는 안도감을 느끼는 것 같다. 마치 성폭행 피해자들이 본인에게 잘못을 있다고 인정함으로써 그다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해도 궁극적으로는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순간의 안도감은 생길지 몰라도, 항상 그다음 걱정과 불안이 나를 괴롭혔고, 나는 또 다른 할 일을 찾아 해야만 했다. 그래야 다시 안도감이 생기고 불안해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심적으로 제일 심플했던 시기를 임용 준비할 때라고 말한다. 그때는 목표가 '임용 합격'하나였고, 그래서 매일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됐다. 어차피 시험 합격을 위해서 공부만 해야 했으니까, 내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우리 가족들이 피해를 볼 것이다라는 나의 걱정은 항상 충족이 되었다. 어떤 이유로 불안해지든 그때는 임용 공부라는 방법으로 해결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까지 열심히 해야 할 일이 사라지니 너무 불안하고, 매일 사냥감을 찾아 나서는 동물 마냥 할 일을 어떻게든 만들어내는 것이다.
어제는 마음 편히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너무 평안하자 문득 딸을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할 부모님이 떠올랐다. 내가 이렇게 아무 일 없다는 건? 혹시 가족들에게는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해서. 어제는 웃으며 보내고, 오늘은 울면서 글을 쓴다. 얼른 미국 생활이 끝나고, 보고 싶은 사람들을 가까이서 원하면 볼 수 있는 시간이 오면 좋겠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을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마태오 6,34) 내가 내일을 걱정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자비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빵을 달라는데 아버지께서 돌을 주시겠는가. 아들인 내가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시겠는가. 내가 두려워한다는 것은 아버지를 믿기보다 나 자신의 의지와 능력을 더 믿어 교만하기 때문일 것이다. - 인생(최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