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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Sep 12. 2022

일본 화학 공장에서 3교대 뛴 이야기




3교대 실습의 목적

안전에 대해 배우고 그 중요성에 대해 체감한다.

제조 회사 일원으로서의 의식을 양성한다.

일하는 것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일하기 위한 마인드를 양성한다.



나는 신입 사원 연수의 일환으로 3주 간 일본 화학 공장에서 3교대 실습을 했다. 우리 회사의 경우 직무와 상관없이 신입이라면 모두가 3교대 실습에 반드시 참가해야 한다. 3교대 실습은 1타임(아침・朝番), 2타임(점심・昼番), 3타임(저녁・夜番)을 각각 일주일씩 근무해 모든 시간대 근무를 한 번씩 경험하게 된다.



3교대 실습 일지 작성



3주의 실습 기간 동안에는 실습 일지를 총 세 번 제출해 피드백을 받아야 했고, 실습이 끝난 바로 다음 날에는 3교대 실습 팀 테마 발표회가 있어 실습을 하면서 팀원들과 발표 준비를 함께 해야 했다.


내가 실습했던 제조 3부 ○○과에서는 같은 후쿠오카 사업소 동기 한 명과 요코하마 연구소에서 온 박사 출신 동기와 함께 세 명이서 실습을 했다. 동기들과 같은 시간대에 근무한 건 아니고 각각 A, B, C반으로 배정받아 교대로 근무했다. 나는 1타임→2타임→3타임을 차례로 경험했기 때문에, 순서대로 나의 경험을 공유해보려 한다.





2022.5.9-2022.6.3
후쿠오카 사업소 제조 3부 ○○과에서 3교대 실습(3주)


1타임(아침) 근무
(7:25~15:30)



각 공정 과정과 어떤 제품을 생산하는 지에 대한 설명 자료



3교대 실습 첫날은 비가 내렸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회사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고 헬멧을 쓴 뒤 실습처로 분주히 이동했다. 잔뜩 긴장한 채로 처음 실습 제조과로 가니 내가 속한 A반의 주임님(主任)과 운전원 분들이 계셨다. 50대이신 주임님을 제외한 A반 운전원 세 분 모두 30대 중후반이셨는데, 다들 친절하셔서 조금 안심이 됐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도 잠시, ‘다들 내가 많이 어려우신가?' 싶을 정도로 한동안 계기실에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알고 보니 내가 실습하게 된 제조과는 전체 반을 다 통틀어서도 여자는 나 하나뿐이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국적까지 다른 한국인 여자 실습생이다. 제조과 분들도 외국인 실습생은 지금까지 처음이라고 하셨다.


한국을 떠나온 순간부터 이방인으로서의 삶은 시작됐지만, 3교대 실습 때는 국적은 물론 성별, 세대 차이까지 나는 나와 전혀 다른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더위 체감지수(WBGT), 열중증의 위험도를 판단하는 수치



그렇게 운전원 분들과 조금은 어색한 자기소개를 마치고, 실습 첫날부터 바로 A반 주임님의 설명을 들으며 공장 견학을 했다.


처음 실습을 하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실습이 그리 덥지 않은 5월 중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장 내부가 굉장히 더웠다는 점이다. 한여름에는 내부 온도가 40도 이상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열사병(熱中症)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다.


실제로 매년 현장에서 열사병 사고가 일어나고 있어 한여름에 작업을 할 때는 일정 시간 이상 작업을 하지 말라는 기준이 마련되어 있긴 하지만, 정해져 있는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가 눈에 띄었다.


그 밖에도 직접 플랜트 내부를 돌아다니며 위험하다고 느낀 작업 환경이나 개선되어야 할 부분을 적극적으로 찾아내어 최대한 실습 일지에 담아내고자 노력했다.





이렇게 공장 견학을 하며 느낀 부분들을 바탕으로, 근무 중에는 틈틈이 팀원들과 Teams로 회의를 하며 발표 테마를 정했다.


몇 번의 회의 끝에 우리 팀은 누구나 스트레스 없이 일할 수 있는 플랜트(誰でもストレスなく働けるプラントを目指す) 하나의 큰 테마로 정하고, 이를 위해 신입 사원의 관점에서 찾은 '익숙해지지 않으면 힘든 작업의 경감(작업에 익숙해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 단축화・조작 단순화)'과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중심으로 발표하기로 했다.



실습을 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을 적어 매일 팀원들과 공유했다



발표 테마를 정한 후 우리 팀은 현장 작업 환경의 문제점을 발견하기 위해, 실습을 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부분/깨달은 부분(気づいたこと)을 좋음(良い), 익숙해진 습관(慣れ), 위험(危険)으로 분류해 매일 각자 한 개 이상씩 작성하고, 문제점에 대한 개선책까지 작성해 팀원들과 공유했다.


같은 조에 배정된 팀원들은 서로가 각각 다 다른 제조과에서 실습을 하기 때문에, 다른 제조과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 흥미로웠다. 팀원 모두가 발표 준비가 다 끝난 마지막 날까지도 열심히 리스트를 기록해, 최종적으로는 6명의 팀원이 총 90개 이상의 항목을 작성했다.





그리고 이렇게 작성한 리스트 중에서 가장 많은 의견이 나온 현장 작업 환경의 위험 요소 3개를 선출해 발표에 활용했다.



간트 차트 작성


실습을 하며 발표 준비를 해야 하는 바쁜 일정이었기 때문에, 간트 차트를 이용해 일정한 시점에서의 계획과 실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3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계획적으로 차질 없이 발표 준비를 잘 할 수 있었다.




2타임(점심) 근무
(15:25-22:30)




개인적으로 2타임이 근무하기 가장 좋은 시간대라는 느낌이 들었다. 근무 시간도 7시간으로 가장 짧고 아침 출근이 아니니 느지막이 일어나 은행이나 구청을 갈 수도 있어 좋았다.


그래서 이때 본격적으로 공장 견학을 가장 많이 했다. 공장 견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역시 언어의 장벽이었는데, 나를 배려해서 각 공정 과정이나 어려운 용어도 최대한 쉽게 설명해주셨지만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놓치는 내용도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작은 수첩과 펜, 그리고 한국에서 챙겨 온 녹음기를 견학할 때마다 들고 다니며 설명해주시는 내용을 빠짐없이 최대한 많이 흡수하려 노력했다.


2타임이 가장 몸이 편한 시간대이긴 했지만 나의 경우에는 현장 근무를 하는 데서 오는 체력적인 부담, 그리고 급격한 환경의 변화와 언어 장벽에서 오는 정신적인 부담이 이때 한꺼번에 몰아닥쳐 컨디션 난조로 꽤나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Teams를 이용해 팀원들과 회의를 하거나 수시로 정보를 공유했다



몸상태가 그리 좋진 않았지만, 먼저 야간 근무를 경험한 동기가 야간 근무 때는 너무 피곤해서 아무것도 못하니 그전까지 발표 준비를 열심히 해놓는 게 좋다고 해, 2타임 때 최대한 발표 준비를 많이 하려 애썼다.


발표 자료를 만들면서 모르는 부분은 주임님이나 운전원 분들께 적극적으로 질문했고, A반뿐만 아니라 다른 반 분들께도 발표 테마를 말씀드리고 조언을 많이 얻었다.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자신들의 일처럼 다 같이 고민해주시고 도와주셔서 너무 든든했다.


게다가 2타임 근무를 할 때는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부서의 팀장님과 사원 한 분이 직접 실습 제조과를 방문해주셨다. 나중에 다른 동기들한테 물어봤는데, 소속 부서 팀장님이 직접 제조과로 인사를 하러 와주신 건 내가 유일했다. 바쁘신 와중에도 직접 내가 실습하고 있는 곳까지 와주셔서 어렵거나 힘든 점은 없는지 걱정해주셔서 감사했다.


여러모로 쉽지 않은 환경에서 실습을 하느라 힘든 점도 있었지만, 동기들을 비롯해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다시 한번 힘을 낼 수 있었다.



저녁 근무 끝나고 A반끼리 다 같이 우동 먹으러 갔던 날



3타임(야간) 근무
(22:25~7:30)




마지막 일주일은 모두가 가장 힘들다고 한 야간 근무를 서는 날이었다. 나는 고작 일주일만 경험했을 뿐이지만 야간 근무를 하면서 일과 생활의 밸런스를 맞추는 게 정말 쉽지 않다고 느꼈다. 근무가 끝나고 집에 가도 밖이 환한 탓인지 좀처럼 바로 잠들지 못했고, 설령 잠에 들어도 중간에 몇 번은 깨는 바람에 일어나서 개운한 느낌도 전혀 들지 않았다. 한두 시간밖에 자지 못하고 다시 밤에 출근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내가 야간 근무를 처음 경험해봐서 이렇게 적응을 못하는 건가 싶어 다른 분들께 여쭤보니, 몇십 년을 일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힘들고 피곤하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 신체 리듬이 바뀐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고 느꼈다.


야간 근무가 가장 힘들긴 했지만, 야간 근무가 끝나고 3일 정도 다시 아침 근무를 했을 때도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힘들었다. 일주일 동안 야간 근무를 하며 신체 리듬이 밤에 어느 정도 맞춰졌는데, 바로 다시 아침 근무를 해야 하니 몸이 금방금방 적응을 못한 탓이었다. 생체 리듬의 역행은 생각보다 더 힘든 것이었다.



새벽 근무



이때는 팀원 모두가 시간이 맞는 새벽 2~5시 사이에 주로 회의를 하며 발표 연습을 했다. 야간 근무가 끝나면 발표회가 거의 코 앞이었기 때문에 막판에 컨디션이 무너지지 않도록 특히 조심했다.


야간 근무를 하며 인상적이었던 건 매 근무를 시작할 때마다 타 제조과에서 발생한 아차사고(ヒヤリハット・HH)나 위험 행위 등을 각 부처 내에서 공지・공유하고, 우리 부서 내에는 그러한 문제가 없는지 자체적으로 점검하는 시간을 갖는 점이었다.


또 처음 수행하는 작업이나 위험한 작업을 할 때는 작업 안전 확인서를 작성하는 등 철저한 위험 예지(危険予知・KY) 훈련을 해서,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인을 사전에 배제하려는 노력이 인상 깊었다.


아차사고란 산업 현장에 작업자의 부주의나 현장 설비 결함 등으로 사고가 일어날 뻔하였으나 직접적인 사고로는 이어지지 않은 상황을 일컫는 말




근무하다 지칠 때면 자주 봤던 하늘



3교대 실습을 통해 안전의 중요성과 힘든 제조 현장 작업을 직접 경험해 보는 등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다.


사실 처음 일본에 왔을 당시에는 환경이 완전히 바뀐 것은 물론 무엇보다 모든 의사소통을 일본어로 해야 한다는 것에 알게 모르게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실습을 하면서 출중한 언어 실력이 반드시 좋은 커뮤니케이션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3교대 실습 때 나는 유일한 외국인이자 여자 사원이었기 때문에, 상대방이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예를 들면 대화할 때 리액션을 평소보다 더 크고 적극적으로 한다던가, 항상 상대방의 눈을 보면서 질문을 하거나 경청하는 것을 특히 의식했다. 진심은 통한다고 했던가. 다른 반 주임님이 내가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이야기하기 편하다고 말씀하셨다고 동기에게 전해 들었을 때는 뛸 듯이 기뻤다.


3교대 실습을 통해 ‘다름’이 대화와 만남의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배웠다. 사람과 사람을 대하는 진실된 마음이 있다면 국적과 성별, 세대 차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소중한 경험이다.




부서 배치 후 다시 3교대 실습 제조과에 방문해 인사드리고 온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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