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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Oct 10. 2022

마음이 힘들어 타이레놀을 먹었다

해외생활의 단상



 1. 외국에서 시작한 첫 홀로서기




처음 일본에 도착한 날, 혼자 무거운 짐을 이끌고 격리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펑펑 운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한국을 떠나 가족도, 친구도 없는 타지에서 모든 걸 나 혼자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가장 컸다.


하카타의 좁은 비즈니스 호텔방에서 일주일의 격리가 끝나고 시내를 벗어나 앞으로 내가 ‘진짜’ 살게 될 지역으로 이동했을 땐 더 막막했다. 평생을 서울 한복판에서만 살아온 내가 일본의 한 시골 공업 도시에서 살게 됐다. 본가에 살 땐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했던 것들이 여기엔 없다.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더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모든 것이 갖춰진 환경에서 살고 있었는지 알게 됐다.



일본 시골 풍경



처음으로 독립도 하게 됐다. 낯선 곳에서 의지할 곳 없이 잘 살아내야 하는 해외 생활. 타지에서 1인분의 몫을 잘 해내야 했다. 가족과 친구들을 비롯해 직장 동료 분들 모두 나에 대한 걱정이 많으셨다. 자국을 떠나 혈혈단신 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에 대한 기특함 반, 안쓰러움 반.


한국과 가까운 일본, 그것도 기타큐슈라지만 코로나로 일본 하늘길이 막힌 탓에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기에서 한국인을 만난 적이 없다. 종업원이 4만 명이 넘는 회사에 한국인은 단 7명일뿐더러 여기 후쿠오카에서 나는 유일한 한국인이라고 한다.



살이 많이 빠져 경과 관찰 진단을 받았다



8월 초에 있었던 부내 개인 성과발표회 준비 때문에 매니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는 결국 울음이 터졌다. 평소 면담 때 힘든 부분은 없는지 물어보실 때마다 이젠 다 적응해서 어려운 점은 없다고 씩씩하게 말해왔다. 그런데 뜬금없이 3교대 실습을 하며 뭐가 가장 힘들었냐는 질문에 눈물이 왈칵 터진 거다.


타지 살이, 첫 독립, 첫 사회생활, 익숙할 리 만무한 공장 근무, 언어 장벽. 그리고 한국을 떠나오게 됨과 동시에 소중한 사람들과의 여러 이별도 경험했다. 여기까지 와서 절대 무너지면 안 된다는 내면의 각오가 있었고 다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안정한 삶을 향해 뛰어드는 대가는 생각보다 더 힘겨웠다. 몸도 마음도 많이 아팠다.



책장 조립하는 데 꼬박 4일이 걸렸다



그렇게 입사한 지도 6개월이 지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처음 느꼈던 막막함이 무색할만큼 지금은 모든 게 많이 익숙해졌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직접 겪어보니 없이도 살아보고 조금 불편하게도 살아보는 것이 삶의 또 다른 재미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생각해보면 처음 낯선 나라로의 삶을 결심했던 결정적인 이유 역시 편안해지고 싶지 않아서였다.


'인간은 척추동물이지만 마음은 갑각류와 같아서, 껍데기를 벗어던진 가장 약해진 그 순간에 비로소 성장한다.'라는 어느 책의 한 구절이 마음 속 깊이 박힌다. 지난한 때의 이야기를 이렇게 담담히 글로 풀어내고 있는 걸 보면, 지금의 나는 예전에 비해 조금 더 단단해졌을지도 모르겠다.




 2. 언어


타지에서 외국어로 일을 하다 보면 울컥 서러워지는 일이 발생한다. 하물며 오늘도 그랬다. 모국어를 쓰고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내 언어실력이 부족한 탓이니 참아야지 싶다가도 답답하고 속상한 상황이 생긴다. 게다가 내가 사는 곳은 일본 내에서도 사투리가 심한 지역이라 그런지 언어의 장벽은 더 높게만 느껴진다.


특히 발표를 하거나 회의를 할 때는 평소보다 더한 언어 장벽을 느끼게 된다. 녹록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매번 시험대에 올라서는 느낌이랄까. 완벽하지 않은 일본어로 발표를 할 때면 벌거벗겨진 것처럼 부끄럽기도 하고, 노력만으로 더는 메울 수 없는 사소한 것들에는 종종 화가 나기도 했다. 때로는 그 모든 것이 한 번에 달려들어 타지 생활을 버틸 힘마저 빼앗아 가곤 했다.


이는 꽤 오랜 시간 '어떻게 하면 언어 장벽을 극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 고민은 아이러니하게도 네이티브처럼 말하겠다는 강박을 버리니 비로소 해결책이 보였다. 일을 함에 있어 정확한 문법과 고급 어휘로 이루어진 완전무결한 문장이 주는 힘보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콘텐츠로 승부를 하는 것이 더 유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다른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정확한 언어 구사보다는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상대에게 얼마나 논리적으로 잘 전달할 수 있는지에 더 방점을 두고 있다. 완벽한 언어 실력이 반드시 좋은 커뮤니케이션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후로 언어에 대한 부담감이 크게 줄었다.



영어와 중국어 감도 잃지 않게 꾸준히




 3. 외로움


타지생활에서 가장 힘든 점은 가족, 친구들에게 직접적으로 의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부터 나를 지켜내는 일인 것 같다. 아는 이 없는 낯선 이국땅에서 보내는 혼자의 시간은 훨씬 더 굳건하고 깊이 있는 고독의 기초체력을 필요로 한다. 만성적인 단절감, 괜찮아진 것 같다가도 어떤 날엔 유난히 괴롭게 다가오는 철벽 같은 순간들.


원체 불면증이 심하긴 했지만 한국을 떠나온 이후로 상념이 끊이지 않은 마음 탓에 날밤을 지새운 적도 많았다. 매사에 열심인 성격은 변하질 않으니, 내가 선택한 것은 '잡념이 나를 괴롭힌다면 끝까지 파고들어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보자'였다. 진짜 '나'에 대해 알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잡념의 밑바닥에 이르니 온전한 '나'의 모습과 마주할 수 있었다. 홀로 사유하는 시간은 삶의 방향성을 굳건히 하는데 반드시 거쳐야 할 시간이라는 걸 이때 배웠다. 무엇보다 이걸 젊을 때 경험해본 게 의미가 크다.


이방인으로 살며 삶의 의미와 태도를 배우고 있다. 가령 저마다의 삶이 있다는 것, 두려움에 맞서는 법, 외로움을 이겨 내는 법, 진중하게 시간을 대하는 법, 나의 부족함을 받아들이는 법, 다름을 인정하는 법, 편견 없이 사람을 마주하는 자세, 부정적인 감정에 맞서는 힘 같은 것들. 삶의 자리가 어디든 우리가 알고 갖춰야 하는 것들임이 분명하다.



나를 지탱해주는 고마운 마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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