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전자화 거래 확대 프로젝트
이번 글에서는 내가 입사 1년 차에 부서에서 구매 전자화 업무를 추진한 프로젝트에 대해 글을 써보고자 한다. 정보성 글은 아니지만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얻은 내 나름의 인사이트가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을까 싶어 글로 남긴다.
종이가 많아도 너무 많은 일본 회사
나는 현재 일본 화학회사에서 플랜트 설비나 연구 등에 필요한 재료 부품의 구입이나 납기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설비기술부를 포함해 각 부문에서 구매의뢰를 받으면 상사(商社)나 거래처에 견적의뢰(見積依頼)를 실시하고, 가격 협상이나 납기 조정을 한 후 정식 발주, 재고 관리를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하게 업무 내용을 그림으로 만들어봤다.
그런데 이 일련의 발주 업무를 하면서 처음에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건 종이로 이루어지는 절차가 너무 많다는 것. 한국에서는 회사의 많은 업무 절차가 이미 디지털화되어 있고, 실제로 한국 화학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는 업무상 종이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던 말이 무색하게도 발주업무에서의 종이 사용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래서 우선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이 종이들을 줄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이 구매업무에서의 전자화 거래 프로젝트를 추진한 배경이다.
전자화 거래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전체 거래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팩스(FAX)와 전자거래(EDI)의 비율을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이전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재택근무인데 도장을 찍으러 출근한다고요?) 일본의 높은 팩스 사용률이 종이가 많이 사용되는 주된 원인이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은 분석한 결과를 도표로 나타낸 것이다.
왼쪽 그래프는 우리 회사 모든 거래처의 팩스와 EDI의 거래비율이다. 팩스가 종이거래, EDI가 전자거래를 의미한다. 전체 거래처 839사 중 팩스로 거래를 실시하고 있는 회사는 647개사였다. 이는 전체의 77%를 차지한다.
오른쪽 그래프는 거래건수와 전자거래의 관계를 나타낸다. 거래건수가 많은 회사는 대부분 전자거래를 실시하고 있지만 거래건수가 적은 회사에서는 대부분이 팩스를 사용하는 종이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분석을 바탕으로 나는 전자거래를 더 확대할 수 없는지를 더 검토해보기로 했다.
EDI(Electronic Data Interchange, 電子データ交換)
: 표준화된 규약(프로토콜)에 근거해 전자화된 비즈니스 문서(주문서나 청구서 등)를 전용회선이나 인터넷 등 통신회선을 통해 주고받는 것. 이 글에서는 기업 간 수발주 전자데이터 교환을 의미한다.
구매업무에서 종이거래와 전자거래 각각의 장단점을 표로 정리해 보았다. 여러 가지 이유를 나열했지만 전자거래를 추진해야 하는 이유는 위 사진의 주황색 부분이다.
팩스를 사용하게 되면 몇 가지 불편한 점이 발생한다. 가령 견적의뢰를 할 때 거래처에 도면을 함께 첨부해서 발송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래돼서 화질이 좋지 않거나 복잡한 도면은 팩스로 보내는 게 큰 의미가 없다. 팩스를 거치면 안 좋은 화질이 더 깨질 뿐더러 글씨도 작아져 내용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팩스로 견적의뢰를 하는 회사에는 pdf 도면 파일을 따로 메일에 첨부해서 한번 더 보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그 밖에도 팩스거래에서는 인지세(印紙税)가 발생하거나 종이로 된 주문청서(注文受書)를 따로 관리해야 해서 재택근무가 보편화된 지금에는 적합하지 않은 방식이다.
인지세(印紙税)
: 재산상의 권리의 변동·승인을 표시하는 증서를 대상으로 그 작성자에게 부과하는 세. 일본의 주문청서에 부착하는 인지는 거래 금액에 따라 인지세도 달라진다. 비싼 인지세의 경우 30만 원이 넘어간다.
EDI를 이용할 경우, 거래처가 시스템에 등록한 견적의뢰 답변(견적서)이 발권자(주문자)와 구매팀에 자동으로 메일로 통지된다. 따라서 대응 지연이나 누락이 현저히 적어지고, 주문청서의 분실 위험이 줄어드는 등 종이거래의 단점도 해소된다.
이렇게 도표로 장단점을 정리해 보니 전자화 거래의 장점이 너무나 명확했기 때문에 전자거래 확대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우선 전자거래를 진행하기 위해 부내 팀원들과 상담 후 거래처를 리스트업했다. 이때 가장 시간을 많이 들이고 고민했던 부분은 제안 메일 작성이었다.
형식적인 문장으로는 몇십 년 이상을 팩스거래만 해오던 거래처를 설득시키기가 매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팀원들에게 물어보니 예전에 거래규모가 큰 몇몇 거래처에 전자거래를 제안한 적이 있지만 여러 이유를 대며 거절해 온 거래처가 꽤 많았다고 한다.
위 사진이 실제로 내가 거래처에 보낸 메일이다. 글을 작성할 때는 내가 이 메일을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쓰는 것에 유념했다. 일을 하며 자주 느끼는 부분이지만 업무상 발생하는 문제들은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일을 진행하면 해결되는 부분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다. 특히 이 제안글을 작성할 때는 상대방을 설득시켜야 하는 글이기 때문에 접근 방식과 간결한 시스템 개요 기재에 유의했다.
먼저 접근 방법에 있어서 처음에는 전자화 검토를 의뢰하는 스탠스의 제안을 생각했지만, '검토'라는 형태의 제안은 종이거래든 전자거래든 괜찮다는 모종의 선택지를 주어 설득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전자화 거래는 회사의 결정사항이라는 식으로 통지함으로써, 보다 많은 회사가 전자거래를 할 수 있도록 접근 방법을 변경했다.
두 번째는 시스템 개요의 기재다. 위에서 전자거래의 장단점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전자거래를 기피하는 이유로 거래처 분들이 시스템 사용법을 잘 모르거나 전자거래의 장점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스템의 개요와 장점에 대해서 나름 간결하고 알기 쉬운 문장을 생각해서 기재하려 노력했다.
제안 메일 작성이 끝나고 난 후에는 리스트업 한 팩스 거래처 중 우리 회사와 거래가 많은 상위 5개사를 선정해 전자거래를 제안했고, 그 결과 제안한 5개사 모두가 제안을 승낙했다. 이 거래처들 중에는 예전부터 몇 번이나 전자거래 제안을 거절한 기업도 포함되어 있었다.
선정한 거래처들은 우리 회사와 거래건수가 비교적 많은 거래처이기 때문에 발주 업무에 있어 임팩트가 생각 이상으로 커 팀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또 내가 작성한 시스템 개요글이 좋은 평가를 받아 기존 구매 전자 시스템 매뉴얼에 있던 시스템 개요글이 내가 작성한 글으로 새롭게 교체되어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앞으로는 전자거래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을 정리해 가면서 거래건수가 적은 거래처에서도 전자거래를 추진해 최종적으로는 모든 거래처에서 구매업무에서의 전자거래를 달성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