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두고 왔나 봐
여느 때처럼 밀리의 서재를 살펴보다 전성진 작가님의 신작을 발견했다. '베를린에는 육개장이 없어서'를 인상 깊게 읽은 터라 고민 없이 집어 들어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이 책은 독일에서 요식업에 종사하다가 볼더링 스튜디오에서 추락해 왼쪽 팔꿈치 인대 두 개가 파열되고, 왼쪽 발목이 삼중 골절된 작가의 독일 병원 체험기다.
고통스러운 치료와 재활의 과정에서 인생의 몇 사건을 지나오며 몸과 마음이 어떻게 유리(遊離)되었는지 살펴보고, 몸 또한 마음과 같이 도구가 아닌 자기 자신임을 깨달으며 통합을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중고등학교 때는 자서전 바람이 불었다. 간디, 체 게바라, 반기문……. 2002년 월드컵 직후에는 홍명보 자서전까지 필독 도서였다. 선생님은 위인의 정신을 따르라고 했다. 태권도 학원에선 ‘정신 통일’을 구호로 주먹을 질렀다. 정신을 통일하면 잡생각이 사라지고 집중력이 향상되어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했다. -34p
몸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았다. 세계적인 발레리나나 축구 선수의 발, 레슬링 금메달리스트의 귀가 다큐멘터리나 방송 같은 데에 나오기는 했다. 모두 목표를 위해 기능으로 쓰인 몸이었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몸을 기능적으로 쓰는 방법을 알려줄 뿐, 막상 몸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점점 육체와 서먹해졌다. -34p
나는 죽음을 몹시 두려워했다. 정확히 말하면 의식의 죽음이 두려웠다. 의식이 죽음과 함께 끝나버린다면, 사후 세계 같은 것도 없다면, 그렇게 영원히 소멸한다면……. 죽음을 납득할 수 없었다. -34p
저자가 책 도입 부분에서 그동안 몸을 '도구'로만 인식하고 있었다고 고백하는 부분에서 흠칫했다. 나 또한 몸보다 정신이 고등하다는 위계가 나에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때가 있었다. 엄마의 투병을 겪기 전까진 말이다. 슬픈 사실이지만 이건 진리인데, 몸의 기능이 완전하지 못할 때 비로소 몸의 소중함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유체 이탈을 한다. 어린 시절부터 무언가로 괴로운 순간이면 몸에서 빠져나와 나를 내려다보며 웃곤 했다. (..) 청소년기에 이르러서 유체 이탈은 더 잦아졌다. 급식을 먹거나 구령대 앞에서 수다를 떨 때도 불쑥 몸에서 탈출했다. 그러고 육체와 정신의 괴리를 시험해 봤다. -32p
나는 헷갈렸다. 도움받을 자격에 대한 의심이 들었고, 받은 만큼 돌려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괴로웠다. 자꾸 상대의 표정을 살피고, 눈치를 봤다. 잘 버텨왔다고 생각했던 정신에 조금씩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118p
이제 너를 마주하기로 했으니까 더는 두고 가지 않는 연습을 할게. -74p
어린 시절의 '유체이탈', 볼더링으로 인한 사고, 독일의 의료체계 안에서 발버둥, 사랑받고 도움 받는 이의 말 못 할 외로움, 그 외로움을 나누고 이해받는 순간.
집에 가는 길에 건물을 잡아먹을 듯이 기세 좋게 자란 넝쿨을 보았다. 초록빛 넝쿨이 푸른 여름 하늘과 만나 온 세상에 생기를 뿌리고 있었다. 문득 태어났음에 감사했다. 동시에 나는 정신이 낫고 있음을 느꼈다. 상투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회복을 감각했다. 중요한 순간이었다. -192p
책을 읽다 보면 사고의 고통이 전해지는 듯해 얼굴이 일그러지는 순간이 몇 번씩 있었는데, 참기 힘든 고통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행복은 슬쩍슬쩍 찾아오는 걸 보니, 모두들 그렇게 살아간다는 걸 새삼 뼈저리게 느낀다.
그날 엄마와 딸의 싸움은 높은 확률로 딸에게 불리하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어린 시절 속에서 뒤죽박죽 된 문제가 이제 좀 명료해지려는데, 엄마는 덜컥 나이 들어버렸다. -212p
아이 같이 우는 엄마를 본 날 무딘 칼마저 내려놓기로 했다. 연민이나 동정심이 아니었다. 반사적으로 올라온 원망이 알맹이 없는 관성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엄마를 이해하고 나자 지나간 일은 더는 엄마의 문제가 아닌 내 문제가 되었다. 과거의 흔적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앞으로 어떻게 다루며 살아갈 것인가? 오롯이 나에 대한 질문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218p
"과거의 흔적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고통을 받기 전으로 돌아갈 수도 고통을 받지 않을 선택을 다시 할 수도 없다. 우리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듯이, 과거에 몸을 두고 온다면 우리의 정신도 현재를 온전히 살아갈 수 없다.
덕분에 책을 읽으며 나도 과거의 나를 보내줄 수 있었다. 속이 커다란 고철덩이를 꺼낸 듯 가벼워짐을 느꼈다.
담당의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일상적인 감각의 기준을 지금으로 맞추세요. 이제 이게 당신의 일상이에요." -222p
후유증에 익숙해지는 과정은 과거를 인정하는 방식과 닮았다. 되돌릴 수 없음을 인정하고 더 이상 집착하지 않는, 미련 없이 현재를 받아들이고 다가올 일에 집중하는, 결국에는 자유로워지는 여정이었다. -223p
나에게 더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 이미 소화한 문제가 주는 관성에 더는 밀리고 싶지 않다. 관성에 쓸 힘을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고통을 위해 기꺼이 아끼겠다. 이건 남은 삶을 기가 막히게 잘 살아보겠다는 거창한 선언이다. -223p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후유증에 대한 독일 의사의 마지막 처방이었다. 신경 이전 수술을 마친 의사는 처치를 했으나 이미 손상된 신경은 살릴 수 없다는 이야기를 건조하게 말하며, 일상적인 감각의 기준을 지금으로 맞추라고 한다. 고통에 집중하지 말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
고통의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잔인한 말이지만, 어떤 고통에는 정말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 결국 내가 나를 키워야 하고,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를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