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돈, 다 뭐야? 보스에게 연락이 왔다.

이러다가 잘리는 거 아닐까.

by 샌프란 곽여사
바 안의 모습. 일요일 낮은 바텐더 합니다.

이러다가 잘리는 거 아닐까?


토요일, 가게에 들어서서 막 Clock-In을 했는데 셰프가 나를 부른다.


“리! (다들 제이라고 부르는데 왜 리가 됐는지 나도 모른다), 보스가 왜 보이드가 Void (취소주문) $233 이나 되는지 설명하라는데…”


그는 무척 난처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한다. 심장에 벼락이 치는 기분이 들었다. 나를 고용하고 바로 그다음 주에 이탈리아로 휴가를 떠난 보스. 프란시스코는 월급날이 다가오자 내 판매 기록을 뽑아 본 모양이다. 뭐? 그렇게나 많았다고? 나는 얼굴이 벌게져서 아주 긴 일주일치 기록을 서둘러 뽑아서 내가 한 실수들을 복기해본다.




큰 체인 레스토랑에서 3년을 꽉 채워 일했어도 새 직장의 다른 시스템은 나를 무척이나 허둥대게 만들었다. 두 명의 호스트가 손님들을 안내하고 비교적 간단한 메뉴로 통일되어 있던 전 직장과는 달리 자잘한 메뉴, 한 명의 호스트가 일하는 시스템, 더군다나 그녀가 유일하게 쉬는 화요일 저녁은 나를 무척이나 정신이 빠지게 만든다.

바빠지기 전 태풍전야

손님들이 홀을 꽉 채워 앉은 상태에서 가게 문 앞에 서서 누군가가 안내해 주기를 바라며 안을 기웃대는 가족들, 그 뒤에 기다리는 예약하고 와서 내심 안심은 했지만 그래도 조바심 난 얼굴을 한 커플, 주방에서 땡땡땡! 음식이 나왔음을 알리는 종소리, 바의 줄줄이 서 있는 칵테일과 맥주들 모든 것은 한꺼번에 온다. 한 번의 틀림도 없이 저녁 7시가 되면 벌어지는 풍경이다.


이 정도 되면 아무리 일 잘하는 호세도 바빠져서 정신이 없고 나는 야외 테이블의 계산서를 들고 홀 안으로 뛰어다녀야 한다. 이런 지경이니 일주일 트레이닝받고 일 시작한 나로서는 실수를 하는 게 당연하다.




바 테이블에서 길게 뽑은 종이를 펼쳐 좋고 이탈리아에서 폭발하고 있을 보스에게 iMessage로 내역을 적어서 보낸다. 갑자기 생각하려니 기억이 금방 안나 꽤 심각한 표정으로 반 시간 정도 앉아 있어야 했다.


내용은 이렇다.



1.

테킬라 8샷과 와인 두 병을 주문한 테이블에 테킬라를 먼저 가져갔는데 원샷하더니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며 와인 두 병은 취소했다. (칵테일 몇 번 돌았음)


2.

Pino Noir 주문한 테이블에 그게 떨어져서 Rose로 바꿔서 나갔다.


3.

칵테일 주문한 손님이 알고 보니 애플 페이 안되냐며 자기 지갑 안 가지고 왔다고 해서 주문 취소하고 아쉽게 감.


4.

테이블 4번의 음식(파스타 3개)을 실수로 테이블 3에 넣어 삭제하고 옮김.




딱히 가게에 손해를 끼칠 만한 실수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오너 입장에서는 삭제 금액만 보고 뭐야 그런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어 최대한 솔직하게 얘기했다. 지금 휴가 중이니 보스가 나에게 화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 좀 위안이 된다. 하지만 속으로 ‘와 나 이러다가 잘리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덜컥 겁이 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게에서 이제 일에 익숙해지고 성실하게 일 한 나를 이런 이유로 자르기는 쉽지 않고 보스가 이탈리아에서 휴가를 보내는 중에 나를 자르면 면접 볼 사람도 없는데 어쩔 텐가, 하는 생각이 들어 얼굴에 철판 깔기로 했다. 주방 뒤 켠의 공간에서 쉬고 있는 셰프에게도 따로 찾아가 문자로 내역을 다 적어서 보냈다고 알려주었더니 안심한 표정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꽤나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 같이 일하는 키카, 호세 모두 찾아와서 나에게 everything ok? 하며 묻길래 환하게 웃으며 응! 전부 설명했어!라고 대답해주었다.


일당백이라며 콧대를 세우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첫 주 보스의 칭찬을 받고 내심 자만하던 나의 허술함이 이런 실수를 만들었으리라. 나는 지금의 직장이 좋고 실수 없이 일하고 싶다. 한국인의 조급함을 버리고 조금 느긋하게 일을 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느긋하게 일하자.

발은 종종거려도 마음은 느긋하게.

잘리지 말자. ㅎㅎㅎ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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