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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샌프란 곽여사 Jul 27. 2023

1.낼 모레 코 앞이 40인데 망했다.

밀물처럼 밀려드는 증상등...뇌졸중, 고혈압, 당뇨

가게에서 만드는 칵테일  Negroni

한 인친님의 포스트를 보면서 피식 웃은 기억이 난다. 왜 나쁜 일은 쉼 없이 찾아오냐며 이렇게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지 화나고 답답하고 답이 없다는 포스트에 내가 노인네같은 말을 했다. '인친님, 이것 또한 다 지나가리라, 그 말 아시죠? 다 지나가게 되어있습니다. 전 그 시간을 5년을 존버했더니 이제 좀 살만해져서 숨 쉬고 살아요.' 그 인친님은 그 막막한 삶이 1년 미만이었나 괜히 미안해하며 나에게 대단하다는 말을 했다. 지금에서야 노인네같은 말을 해대며 남의 인생에 훈수를 두고 있지만 불과 지난 해 연말까지만 해도 나는 길고 험난한 마라톤의 끝에서 처참하게 모든게 바닥난 상태로 간신히 두 발을 질질끌며 이 순간이 끝나기만을 바라는 선수같은 마음이었다. 상도 필요없고 카메라 플래쉬도 필요없고 그저 이 고되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끝나기만을 오롯이 바라는 그런 마음.




2018년 남편이 하던 사업이 하룻밤에 파도 앞에 성기게 쌓은 모래성처럼 사라졌다. 내 나이 39세. 그 이후에 나의 삶은 가장의 스트레스와 무능한 남편에 대한 미움과 원망으로 하루 하루가 고통스러웠다. 삶의 의지를 잃은 채 그저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다 곯아떨어지는 남편은 당장 내다버리고 싶을 정도로 쓸모없게 느껴졌다. 그 스트레스는 고층빌딩에서 무섭게 떨어지는 무거운 물체처럼 가속도를 내며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갑자기 가장이 된 나는 고되게 일하는 신체적부담에 무능한 남편의 모습을 견디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겹쳐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것이 곧 폭식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렇게 지내다 2020년 코로나가 터지면서 몸의 움직임이 없는 삶은 내 몸 곳곳에 지방과 독소를 더 쌓았다.

참 고된 시절 웃기 힘들던 나




2021년 코로나는 지나갔지만 나는 운동이 없는 삶을 이어갔다. 몇 년째 백수인 남편의 무능함을 지켜보는 우울함과 그것을 외면과 폭식으로 달래는 삶은 지속됐기에 거기에 운동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운동은 그저 밝은 사람들의 몫이었다. 그 사이에 나는 이직을 했고 집 근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바쁜 레스토랑에서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일을 하는 것은 좋았지만 지하 식료품 창고에서 물건을 들고 올라올 때, 접시를 들고 테이블의 모퉁이를 급하게 돌 때 나는 순간 순간 눈 앞이 아찔한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고된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밤새 유튜브 먹방을 보며 몇 시간을 지새웠고 그 동안 내 입에는 각종 단 것들이 개미떼처럼 줄을 지어 들어갔다. 그렇게 위가 꽉 차게 먹고 누우면 몸이 힘들어서 잠이 바로 오지않고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가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그리고 좀 더 지나자 뒷 머리가 시린 현상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게에서 일하면서 메이크업 때문인지 눈알에 미끈거리는 막이 낀 듯한 느낌에 한 시간에 한 번씩 화장실에 들어가 물에 적신 티슈로 눈알을 살살 닦아내기도 했다. 밤에는 발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져 잠에 빠져드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 시간동안 누워서 먹방을 보다가 또 잠을 설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당장 먹고사는 일에 집중한 나에게 내 몸을 돌보는 것은 가장 나중의 일이었다. 몇 년을 백수로 지내는 남편을 대신해 가장이 되며 차곡차곡 쌓인 카드빚과 다달이 나가는 렌트비 등등을 내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했다. 내 얼굴은 무표정해지고 입가에는 사무적인 미소만 남았지만 아무렴 어때? 일단 먹고살고 봐야지. 다행이 옮긴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는 일한 만큼 돈이 착착 쌓여 큰 즐거움이 되었기에 거기에만 집중하며 내 몸에 일어나는 사소한 증상들을 외면하며 살았다.


'내가 어떻게 번 돈인데 이 돈을 병원비로 날려? 어림도 없는 소리! 조금만 더 참자. 조금만 더...!'


하지만 그 증상들이 더욱 자주 나타나고 눈 앞이 아찔한 경험을 확연하게 느끼면서 마음 속으로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휴대폰에는 차츰 차츰 검색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뇌졸증, 심혈관 질환, 부정맥' 외면하고는 있지만 마음 속으로는 나도 이제 깨닫기 시작했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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