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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샌프란 곽여사 Jul 29. 2023

2. 위태로운 40대의 건강, 마음놓고 아프지도 못한다

내가 아프면 누가 먹여 살리지...?

피곤에 찌든 모습…그나마 돈이 위로해줌 ㅋ

백수남편, 가장의 무게, 신체적인 피로, 정신적인 부담감 이 모든 것을 등에 짊어지고도 무너지지 않고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내 씩씩함, 오롯이 그거 하나뿐이다. 나는 한 번도 잔병치레를 하지 않고 자라 내 마음속에는 '나는 분명 건강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건강하게 살 것이다'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다. 이 자신감이 내 몸이 사실은 아프더라도  그것은 아프다고 생각하지 않고 살도록 도와주었다. 뒷 머리가 저리고 시린 것은 베개를 부드러운 것으로 바꾸는 것으로 대처하고, 발이 시린 것은 자주 족욕을 해주는 것으로 대처하고, 백수남편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최대한 신경을 끄고 방치하는 것으로 대처(?)하고, 정신적인 부담감은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면서 행복감을 찾으려 노력해서 대처했다.

어느 책에서 그러더라. (선 넘는 아저씨 발췌)

아프지  않아서 괜찮은 게 아니다.
아픈데 아프다는 사실조차 모르니까 의연한 것처럼 사는 거지

아마 나도 그랬으리라. 5년을 고되게 살았는데 몸이 남아났겠나? 백수남편에 외롭다고 칭얼대는 친정엄마, 한국 언제 오냐며 해맑게 묻는 베프들(늬들이 한 번 오지 그러니 ㅜㅜ), 숨 돌릴 틈 없이 살아내는 너무 지루한 나날들. 나를 모르는 어딘가로 도망가서 휴대폰도 끄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지만 그래도 살아냈다. 그러다 보니 괜찮은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혹은 내 삶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그런 위로도 하게 됐다. 내가 어찌 됐건 살아냈던 그 모든 이유들 뒤에는 가장으로서 내 가정을 버텨내야 한다는 그런 책임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좋든 싫든 내 가족인데 일단 먹여 살리기는 하고 청승을 떨던, 미래를 생각하던 할 게 아닌가. 그런 책임감을 하루하루 되새기며 사는 삶에 '나를 돌본다'라는 여유는 너무 멀게 느껴졌다.

아줌마 누구세요 와 대박 늙어보인다 ㅠㅠ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생리 때가 와서 매 번 쓰던 브랜드의 생리대를 쓰는데 알레르기가 올라왔다. 생리대에 접촉하는 피부를 따라 붉은 발진과 함께 미친듯한 가려움증이 몰려왔다. 혹시 농막에 갔을 때 고양이한테 진드기 같은 게 묻어왔나? 애꿎은 고양이 탓을 하며 침구를 싹 빨고, 빨래도 새로 하고, 속옷도 갈아입었지만 가려움증은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그렇게 알레르기로 밤새 생리대 접촉 부위를 긁다 아침에 눈 떠보면 손톱 밑에 피가 까맣게 굳어 흙장난 한 어린아이 손처럼 변해있고 손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속옷을 벗어보니 생리대 모양대로 정확하게 앞과 뒤의 피부가 빨갛게 부어있었다. 그 증상이 가라앉기까지 2주가 걸렸다. 발진이 오면 무척이나 괴롭고 밤에 잠을 설쳐 다음 날 일을 하러 가서도 집중하는데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 하지만 어쨌든 가라앉는 증상이라 참고 넘어갔는데...


그 가려움증을 3개월을 겪으며 사타구니에 온통 긁은 자국으로 흉터를 만들고 보니 더 이상 병원비를 걱정하며 미룰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통장에 돈도 쌓여있고 새로 발급받은 보험증도 받았겠다, 근처 응급센터로 달려갔다. 응급센터에 가면 접수를 하고 바로 간호사가 혈압을 먼저 체크한다. 바이탈 체크를 해서 기본적인 몸 상태를 확인하는데 이 혈압이 실화인가? 혈압이 다소 높은 것은 짐작했지만 178/98이라는 매우 높은 혈압이 나왔다. 전혀 예상치 못한 높은 혈압이라 간호사가 낯빛을 굳히며 나가더니 곧 의사가 들어왔다.

긴장된다 왠지… UrgenCare Center


"지영, 씨...?"


의사가 차트를 들여다보며 내 이름을 부른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네..."


"혈압이 굉장히 높게 나왔어요. 혹시 주치의가 있습니까?"


"아니요."


"최근 검진을 한 적은요?"


"최근 5년 동안 없었어요. 직장을 바꾸면서 의료보험 공백도 있었고 코로나 때문에 그저 먹고 사느라 일만 하면서 살았어요."


"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굉장히 혈압이 높아요. 일단 제가 응급으로 제일 약한 약을 처방해 드릴 테니 이걸 매일 복용하시고 반드시 주치의를 만나서 상의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 최소 30분은 빠르게 걷는 정도의 운동을 꼭 하셔야 해요."


의사의 앞에서 먹고사는 이야기를 하며 왜 내 몸을 보살피지 않았나 핑계를 대는 내 얼굴은 희게 질렸다가도 다시 붉어졌다. 의사 앞에서는 이렇게 작아지면서도 나가면 나는 다시 내 몸 아픈 것을 해야 할 우선순위 제일 아래로 밀어둔 채 살아갈 터였다. 내 몸을 건강하게 지키려면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을 생각하고, 운동을 할 여유도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나는 그런 여유가 없었다. 지금 내가 아픈데 정신을 팔 여유가 어디 있나. 하루하루 더 열심히 살아서 한 푼이라도 더 모아야지. 문득 일만 하며 살던 가장이 이제 살만해져서 새롭게 뭘 해보려고 하는 찰나, 암말기에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고 충격받는 드라마 장면이 오버랩된다. 이야, 그 드라마가 드라마가 아니었네. 진짜 있을 수 있는 일이었어. 어쩐지 시청률 잘 나오더라. 이 씨... 알레르기 약과 혈압약의 처방전을 받아서 나오는 내 발걸음은 '이제 잠 편히 자겠지...' 하는 생각에 날 듯이 편하면서도 앞으로 평생 복용할 혈압약을 생각하면 한 없이 무겁기도 했다. 어쩌겠나. 빼곡히 스케줄이 잡힌 일 표를 보면서 그저 오늘 쉬는 날은 쉬자, 그런 생각만 했다. 오늘 쉬어두지 않으면 일주일 내내 피곤에 절어 사는 게 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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