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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샌프란 곽여사 Jul 31. 2023

3. 나이 40 좀 넘었는데 혈압이 왜 이렇게 높아요?

그걸 알면 내가 의사를 했겠죠.

쉬는 날 나의 즐거움. 커피 & 단 디저트


응급센터에서 고혈압약을 처방받으며 팔로우업 진료예약을 잡았다. 두 번째 진료는 다른 지점으로 3주 뒤에 잡혔다. 그 진료예약이 잡힌 날과 주소가 적힌 종이를 쥐고 나오며 마음이 너무 심란했다. 그날은 내가 쉬는 날이라 나가서 아메리카노 한 잔 시켜놓고 초콜릿케이크 한 조각 먹는다는 소박한 설렘이 있었는데 그 설렘은 고혈압 약 처방전과 함께 사라졌다. 두 번째 진료를 받기 전에 주치의를 선정해서 제대로 된 혈압약을 처방받아야 하는데 뭐 그때까지 누군가는 발견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막연하게만 생각을 해서 그런가 진료날은 점점 다가오는데 주치의를 발견하지 못했다. 돈 안되고 시간만 드는 주치의를 모두 기피해서 그럴까, 새로운 환자를 받는 주치의가 무척 드물고, 있어도 예약을 잡으려면 한 달이나 뒤에나 가능한데, 그마저도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시간은 차로 달려야 하는 먼 거리였다.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너무 간절하게 그리워졌다. 혈압은 그 와중에 약을 먹고 약간 내려왔지만 그 아래로는 떨어지지 않고 아직도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었다.


내가 주치의를 찾아 헤매는 사이 진료날은 다가오고 이미 처방받은 고혈압약도 몇 알 남지 않아 나는 아침 9시라는 이른 시간에 잡힌 진료에 따라 추운 날 대문을 나섰다. 전 날 바쁘게 일하고 서둘러 씻고 자서 얼굴은 퉁퉁부어있고 급하게 나서느라 아무거나 주워 입고 나왔다. 우버를 불렀는데 휴대폰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이 너무 보기 싫었다. 살찐 턱과 찌든 얼굴. 살이 찐 것보다 삶에 치여 고단해 보이는 게 백배는 더 싫었다. 살이 쪄도 삶이 보들거리는 사람은 하얗고 보드랍다. 휴대폰에 비친 내 얼굴은 이리저리 비벼져서 검게 바래고 지쳐 보였다. 휴대폰을 급하게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우버를 타고 조금 달리자 금방 응급센터에 도착했다. 걸어가면 45분 거리인데 나중엔 걸어서 가야지 결심을 했다.



언제봐도 싫은 진료실. 남에게 다 보여야 하는 불편함


언제나 의사와의 첫 대면은 어색하고 긴장된다. 나이가 지긋하고 고혈압이 있을 것처럼 몸집이 큰 의사가 들어왔다.


"그래... 고혈압 때문에 왔다고요?"


"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엄마가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다 있으세요. 유전 아닐까 생각해요."


"유전의 영향도 있지만 이렇게 일찍 고혈압이 오지는 않아요. 이제 나이가 40이 조금 넘었는데 혈압이 왜 이렇게 높아요? 이렇게 높으면 안 되는데..."


의사가 나에게 왜 혈압이 높냐고 물어보면 환자인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갑자기 진료실에 있기가 확 피곤해졌다. 의사는 대부분 환자가 왜 아픈지 모른다. 다만 배운 데로 증상에 해당하는 알약을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적당히 처방하고 한 달쯤 지켜보자는 이야기를 한다. 한 달 뒤에 그게 안 들으면 다른 약을 처방한다. 그러는 와중에 그 약들의 부작용이 생기면 그 부작용을 완화시키는 약을 추가로 처방받고 그러다가 약쟁이로 추락하기 십상이다. (미국에서 아주 흔한 이야기)


나의 경우에도 당연한 수순으로 제일 약한 고혈압약에서 두 배 강한 약으로 강도를 올리기로 했다. 내 나이 42세에 이렇게 강도를 올려가며 고혈압 약을 쓰면 내 년에는, 십 년 뒤에는 나는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나 덜컥 겁이 났다. 아니, 그것보다 내가 지금 덜컥 쓰러지면 이제 막 다시 일어서려 걸음마 연습을 하는 남편이 나를 어떻게 감당할까, 이제 막 모으기 시작한 돈으로 얼마나 일 안 하고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바매니저로 이제 인정받기 시작하고 돈도 더 많이 벌리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그 좋은 시간이 스러지나 억울하기도 했다. 엄마 팔자 닮아서 식당에서 일한다고 나한테 말 못 하고 너무 속상해했던 친정엄마는 딸이 매니저라는 감투를 달았다고 얼마나 좋아했던가. 돈 착실하게 모아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자며 그렇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이게 뭐지.


지금까지 자존심 꼿꼿하게 지키며 힘들어도 어떤 기색도 비치지 않고 살았는데 몸이 아프다는 자각을 하자마자 마음이 우수수 무너져 내렸다.




응급센터에서 나오면서 확인을 해보니 남편에게 새벽시간에 유튜브 링크가 하나 와있다. 평소에도 쓸데없는 유튜브 비디오를 보내 내 복장을 터지게 하는 남자였다. 한창 바쁜 시간에 호드득거리면서 일을 하는데 카톡이 와서 급하게 들여다보면 고양이 비디오, 웃기는 동물 비디오 종류도 다양했다. 이런 쓸모없는 영상이나 주야장천 보고 있으니 이 모양 이 꼴이지, 모진 생각을 하는 날이 수두룩했다. 나는 그 링크들을 여태 깡그리 무시하고 지내왔는데 오늘은 남편이 보낸 링크를 그냥 열었다.


영상에서 잘 생긴 의사가 조곤조곤 고혈압의 원인은 무수하게 다양하고 원인을 알고 그것부터 치료하려는 노력 이전에 혈압약을 복용해서 강제로 수치만 떨어뜨리는 행위는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라고 했다. 고혈압을 일으키는 원인을 하나하나 조곤조곤 짚어주는데 그중에 하나가 내 경우 같았다.


혈압은 혈액 중 산소의 농도가 현저히 떨어질 때 온몸 곳곳으로 필요한 양의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더 급하게 많은 양의 혈액을 순환시킴으로 높아질 수 있다. 심장은 바쁘게 혈액을 펌핑하는데 이때 혈압이 높다고 그것을 떨어뜨리기 위해 강제로 혈액의 흐름을 느리게 하면 가뜩이나 산소가 모자란 몸 곳곳에서 난리가 나고 혈액을 내보내려 펌핑을 해야 하는 심장에도 무리가 온다. 그 결과로 부정맥과 심혈관 질환이 생기고 혈압은 혈압대로 약을 사용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가게에서 자주 먹던 뉴텔라피자

이거 나다. 나 이거구나. 일주일에 5일은 가게에서 일하고 음식을 받아오는데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보니 피자, 아니면 파스타였다. 따끈한 음식을 받아와서는 한국음식도 같이 먹고 싶어 냉면이나 떡볶이 같은 한식도 같이 먹었다. 먹고 나서는 집에 쌓아둔 단 것 들을 쉴 새 없이 입으로 집어넣고 넷플릭스와 유튜브 먹방을 누워서 봤다. 목구멍까지 찬 음식들 - 특히나 밀가루로 만든 음식들-은 위장에 들어가 소화가 안된 채 오래 동안 머물렀고 새벽녘 간신히 잠들어도 음식의 무게와 체중으로 원래 있던 코골이/수면무호흡증이 급격하게 악화된 상태였다. 아침에 일어나도 머리가 멍했고 밤새 헐떡이며 호흡을 하려 애쓴 입은 버석하게 말라있기 마련이었다. 내 몸에 산소가 돌지 않으니 손발은 차갑기가 얼음 같고 손발이 차가워서 잠은 더 오지 않았다.


내 몸에 산소가 필요하구나. 산소를 내 몸에 집어넣으려면 뛰는 것만큼 좋은 게 없지. 그래. 뛰면서 샌프란시스코의 산소를 몽땅 내 피 속으로 녹여보자. 그때 안되면 약 먹어도 늦지 않아. 어차피 약 먹어도 듣지도 않는 거 해보자. 운동으로 먼저 해보자.


달리기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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