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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샌프란 곽여사 Aug 02. 2023

4. 40대는 운동으로 결판을 봐야한다.

운동은 하나도 안 하면서 약 한 알로 건강해지려면 도둑놈 심보 아닌가.

일단 5개월차 사진 투척! 인상이 확- 달라짐

달리기를 하자. 달리기를 해서 온 세상의 산소를 내 몸 안에 집어넣자. 심장이 무리해서 혈액을 펌핑하지 않아도 온몸 구석구석 산소가 닿도록 건강하게 고쳐보자. 나는 나에게는 관심이 1도 없는 그 의사보다는, 혹은 공장에서 우수수 찍어내져 라벨이 깔끔하게 붙은,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제약회사가 만든 무기질의 알약보다 어쩌면 정말 터무니없는 이 믿음이 날 고칠 거라는 확신이 솟아났다. 생각해 보면 건강해지려는 노력은 1도 안 하면서 면봉보다 더 작은 알약 한 알로 내 몸의 병을 고치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노력의 시작으로 45분을 뛰어서 가기로 결심했다.


남편의 사업이 망한 2018년부터 그동안 운동이라고는 담을 쌓고 살았다. 키우던 개가 노환으로 남편과 농막으로 가서 지낸 2019년부터는 정말 몸을 움직일 일이 없었다. 2020년 그 개가 결국 하늘나라로 가고서는 동네를 산책하는 일은 괴로운 일이 되어 더더욱 운동과 담을 쌓게 되었다. 거기에 가장이 되어 삶을 고단하게 이끄는 짐을 지자 나는 무조건 내 몸을 쉬어줘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일을 안 하는 날은 병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입에 단 것들을 달고 살았다. 생각해 보면 운동이 없이 위장 속에 기름과 글루텐을 때려박으며 5년을 살았는데 그동안 몸이 잘 버텨준 것은 차라리 감사할 일이었다.


이제는 때가 왔구나, 순순히 받아들이며 지갑이 달랑 든 허깨비 가방을 털럭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큰 대로는 차들이 많이 다녀 산소가 별로 없을 거 같아 (웃기는 생각이지만 진지함) 대로 뒷 편의 조용한 주택가로 뛰기 시작했다. 주택가에는 집주인들이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작은 정원에 이름 모를 꽃들이 계절이 변한 것을 알려주듯 피어있었다. 어떤 남자가 흥분한 목소리로 집에 도착한 경찰에게 뭔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뛰면서 들어보니 '집에서 나가려고 실내에서 차고로 이어지는 문을 열었는데 노숙자가 차고 안에 서 있었다.'라는 내용이었다. 앞침부터 버라이어티하는구먼. 그 건너에서 무료한 아침을 보내던 만삭의 배를 한 대머리 아저씨가 커피컵을 들고 흥분한 남자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며 느긋하게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그 대머리 아저씨와 흥분한 남자를 보며 내 모닝커피를 느긋하게 마셨다.

근처 커피집에서 산 지옥맛 쓴 커피. 이렇게 쓴 커피는 처음!



조금 전만 해도 나는 세상이 무너지고 마음이 무너지는 암담한 상태였는데 운동을 하자는 결심을 하고 나서는 마치 내 걱정과 근심이 이미 해결된 듯한 개운함이 느껴졌다. 샌프란시스코의 차가운 안개 낀 아침공기도 그렇게 매정하고 서글프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상쾌하게 느껴졌다.


사람의 마음은 때때로 너무 얄팍해서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만 있다면 인생이 꽤 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으로 오는 길을 직선으로 뛰다 보니 꽤 높은 언덕을 올라야 했는데 그 언덕 위에 올라서니 맞은편으로 동네 명소인 Coit Tower와 그 뒤로 바다가 보였다. 언덕을 느슨하게 넘어오는 상쾌한 아침공기가 힘내라고 응원하듯 땀으로 흠뻑 젖은 내 얼굴을 살짝 만진다. 남편에게 링크 보내준 거 잘 봤다며 운동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땀에 젖은 셀카를 찍어서 보냈다. 바로 남편에게 극도로 행복한 표정의 이모티콘이 왔다.

동네 전경을 이렇게 이른 시간에 정말 오랜만에 본다

생각해 보니 고혈압으로 곧 죽을 듯이 상심한 나를 보고 남편도 무척 마음이 아팠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밤새 유튜브로 고혈압에 대한 영상을 찾아보다 그중 한 개를 마지막으로 그 늦은 새벽에 나에게 보냈을 남편의 고단한 얼굴이 떠올랐다. 지난주 집에 와서 살이 좀 빠진 것 같다는 말을 하는 남편에게 나는 쏘아붙였다.


'나는 아파도 아무도 케어 못해주잖아. 내가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어. 살이라도 빼서 혹시나 내가 아플 경우를 대비를 해놔야지.'


그 말을 하던 내 표정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무슨 색이었을까. 회색?

아니면 때 묻은 종이 위에 아무렇게나 박박 그어진 날카로운 선들...?


그 이야기를 듣고 남편은 피곤한 얼굴을 마른 손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걱정 마. 만약 당신이 진짜 아프다면 내가 우리 땅을 팔아서라도 병원비 내줄 테니까...'


그때는 코웃음 치고 넘어갔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너무 고맙고 마음 아픈 말이었다. 우리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은 농막. 그 땅을 살 때 천하를 가진 듯이 얼마나 행복해했던가. 그 말을 힘 없이 내뱉은 남편의 마음은 어땠을까. 큰 죄를 진 기분이다. 언덕을 뛰듯이 내려와 집 근처 공원에 다다르니 주말파머스 마켓이 서서 사람들이 이른 시간부터 무척이나 많았다. 토요일 아침에 시작해서 오후 1시에 마감하는 파머스마켓. 새벽까지 먹고 먹방을 보면서 그대로 옆으로 잠들던 나는 오전 12시가 다 되어 간신히 일어났기에 이 마켓은 근처에 살면서도 한 번도 와보지 못했다. 내가 참으로 꽉 막힌 삶을 살았구나. 내가 정말 병든 삶을 살고 있었구나, 새삼 깨달았다. 그런 식으로 혹사해 온 내 몸에게도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몸에 좋지 않다는 음식은 빼놓지 않고 먹으며 운동은 전혀 하지 않고 사는데 아프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 아닌가?

그 이른 시간에 북적이는 사람들. 나만이 모르고 산 세상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나는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마음속에서 차오르기 시작한다.

고양이 생일선물로 산 삑삑이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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