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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샌프란 곽여사 Dec 04. 2023

엄마의 65일.

엄마에게 65 일이 생긴 이유

너무 평온했던 여름 날

세상의 모든 것이 파랗게 빛나고 그 빛나는 것들 사이에 나도 들어있다. 42세 적지 않은 나이에 달리기를 시작하고 제2의 삶이 시작된 듯 너무 평안하고 활기찬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일상이 너무 평안하고 행복해 우주의 누구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 매일 들었다.

하지만 행복이 커질수록, 그 행복이 빛날수록, 이 행복이 언젠가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꾹꾹 눌러놓은 공처럼 아슬아슬한 상태로 내 안에 쌓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에게 카톡이 왔다.


‘지영아, 바빠?’


짧은 한 문장에서 느껴지는 초조함. 좋지 않은 일이란 걸 한 순간에 알아챘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신호음이 두 번 울리기도 전에 엄마가 전화를 받는다.


“어어 지영아 오늘은 일 안 해?”


“아니, 해. 하는데 그래도 할 말은 꼭 들어야지. 무슨 일 있어…?”


“… 아저씨…. 폐암 말기래. 이미 폐에 암세포가 다 퍼져서 방사선 치료도 의미 없데…”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그동안의 내 불안감이 이해가 되는 거지.


부모를 일찍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다 19살이 되던 해, 아무것도 없는 집의 노총각에게 시집온 우리 엄마. 평생의 한이 가족 없이 사는 설움이라 그저 내 식구와 같이 사는 게 소원인 우리 엄마. 그런데 나는 이역만리 떨어진 미국에 살아 매일 죄를 짓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러다 엄마에게 좋은 분이 생겨 그 죄짓는 기분을 씻어내고 나도 마음 편히 살았는데… 나도 편히 살 팔자는 아닌가 보다.


아저씨는 결핵보유자였는데 증상이 없으셨고 평소 술담배를 하지 않아 잘 유지해오고 계셨다고 한다. 그런데 작년 코로나에 걸리면서 면역력이 떨어지자 결핵이 무서운 속도로 암세포로 발전한 것이다.


아직 사람은 죽지도 않았건만 나는 아저씨의 안위보다도 엄마가 다시 혼자 남겨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장례식에 가려면 휴가를 얼마나 내야하나, 비행기표는 얼마이고  엄마의 생활비는 내가 얼마나 메꿔줘야 하나 현실적인 문제들로 너무 마음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 평온함으로 물들어있던 내 일상이 통째로 밑이 빠져 와르르 무너진 듯 불안함과 초조함이 밀려왔다.


엄마에게 전화를 받고 딱 1주일 뒤, 아저씨는 돌아가시고 엄마는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곁에 있기로 결심했다. 내년 초에 가기로 한 일정을 앞당겨 모두가 가족과 보내는 연말연시와 새 해를 엄마와 보내기로 결심했다. 11/25일 출국해서 다음 해 2/1일 미국에 돌아오기로 그렇게 일정을 짜고 보니 65일이라는 제법 긴 휴가가 되었다.


엄마의 65일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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