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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샌프란 곽여사 Dec 22. 2023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엄마

68세 말고 8세예요.

병원가는 길

내 허리통증이 있고 나서 나와 내 친구들의 단톡방엔 내 허리가 괜찮은지 안부를 묻는 톡으로 부산스럽다. 미국에서 펄펄 날며 마라톤까지 뛰고 온 내가 한국 와서 이게 웬일이냐며 우리는 난리가 났다. 그중 한 친구가 개인톡으로 놀라운 이야기를 해왔다.


‘지영아, 내가 너 찜질방 얘기 듣고 너무 깜짝 놀랐어. 거기 찜질방 귀신 많아 ㅠㅠ 거기서 사고가 많았거든. 혹시 집에 팥 있으면 팥밥 해 먹어. 아니면 본죽에서 팥죽 시켜 먹어, 빨리!’


귀신이 진짜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난 당장 팥죽을 먹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엄마, 우리 본죽에서 팥죽 시켜 먹을까?’


‘너 생전 팥죽 안 좋아하더니 왜 그게 다 먹고 싶어?’


‘응. 겨울이잖아. 갑자기 되게 먹고 싶네?(새빨간 거짓말)


‘그래? 그럼 문산에 아주 유명한 팥죽집이 있는데 거기 가자. 사람들이 아주 바글바글해!’


‘그래! 내일 가자!’

엄마가 무척 신이 났다

모처럼 기차를 타고 나들이를 가는 엄마는 무척 신이 나 보였다. 차가 없어 다른 집 자식들처럼 편하게 가지 못해 그게 무척이나 미안했지만 내가 엄마에게 미안한 게 어디 한둘이랴.

안에도 바글바글, 대기줄도 바글바글

문산역을 나와 조금 걸으니 사람들이 웨이팅룸에 쪼르륵 앉아있는 죽집이 보인다. 과연 사람이 많기는 많았다. 느긋한 마음으로 앉아있으려다 쉴 새 없이 동시에 수다를 떠는 여러 그룹의 여사님들 소음에 곧 머리가 아파와 밖으로 나왔다. 기차역의 끝에서 끝으로 팥죽 먹으러 왔다는 어느 아저씨는 아줌마들 기세에 안에 안지도 못하고 밖을 서성이다 그저 해맑게 웃는 내가 마음에 드셨는지 인생사를 들려준다.


“내가 건설자재 사업을 했는데 말이야, 그게 어느 정도 규모를 크게 해야 해…(중략) 여 전부 다 여사들이 남편들이 돈 잘 벌어다주니까 여 먹으러 와 있지.”


“사장님도 돈 다 마나님 드리셨어요?”


“아! 그럼! 통장도 다 주고 여 먹고 싶다고 유명하다고 해서 내가 기차역 끝에서 끝까지 지금 온 거 아녀.”


“해달라는 대로 해주셔야 집안이 편해요. 뜨끈하게 드시고 가세요.”


“난 뭐 찍소리도 안 한다. 남자가 뭐 힘이 있어, 요즘 세상에…”


길게 이어지던 대화는 61번 우리의 대기번호가 불리며 끝이 났다. 서로 맛있게 드시라고 인사를 하며 들어간 실내에는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을 모시고 나온 중년나이의 자식들이 무척 많았고 삼삼오오 옷을 잘 차려입고 손마다 팥죽을 싸가지고 가는 여사님들로 무척이나 붐볐다.


팥죽이 나오기 전에 맛보기로 나오는 보리비빔밥이 아무래도 이 집의 히트요인인 듯 가게 안의 여사님들은 그 보리밥을 퍼먹는데 여념이 없었다. 집에서 끼니를 다들 굶고 나왔는지 딱히 별 맛도 없는 보리밥에 환장을 하며 달려드는 게 조금 무서울 정도였다. 딱 보리밥에 상추, 무생채가 다인 밍밍한 그 비빔밥이 뭐가 좋다고.

엄마도 보리밥에 정신이 가출했다. 이해가 안간다. 맛 없어서 손도 안댔다

“넌 왜 안 먹니?”


“맛없어.”


“맛이 왜 없어?”


“엄만 이게 맛있어?”


“아니 보리밥을 이런 맛에 먹는 거지, 그럼…”


무생채를 척척 더 얹으며 숟가락을 부지런히 놀리는 엄마를 보니 내 입에 맛이 없으면 어떠랴. 엄마가 좋으면 된 거지, 태평한 생각이 든다. 여기 있는 수많은 여사님들처럼 보리밥을 폭풍흡입하고 팥죽은 싸가지고 가면 될 것을.

사장님 인심이 좋아서 성공한 가게가 확실하다

팥죽을 싼 봉지를 한 손에 든 엄마는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보리밥으로 배를 채우고 팥죽이 그대로 남았으니 남는 장사다. 팥죽 양도 어마어마해서 몇 끼를 나눠먹어도 될 듯하다. 돈은 만 원을 냈는데 배도 두둑하고 손에는 무거운 팥죽봉지까지 들었으니 만원의 행복이란 게 아마 이런 것일까? 엄마는 신이 났다. 하하하 웃으며 가는 엄마를 보니 딱 유치원생 하원하는 모습이라 나도 웃음이 나온다.


68세에서 60 떼고 8세라고 해도 믿겠다.

돌아오는 길 배 뜨듯하고 손에는 팥죽봉지. 성공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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