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시집살이 뒤의 커피 한 잔.

시어머니 말고 남편 친구 시집살이.

by 샌프란 곽여사

남편의 친구가 방문했다. 한국 사람이 누구를 방문하면 고작해야 2박 3일이다. 그런데 이 친구, 폴은 무려 7일 일정으로 왔다.


보스턴과 샌프란시스코. 미국 대륙의 왼쪽 끝과 오른쪽 끝이다. 시차는 무려 3시간, 비행시간도 무려 6시간이나 된다. 거의 외국에 나가는 일정이니 오래 머무는 것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7일의 일정을 단 한 명을 위해 전부 받치기는 우리의 삶은 단순하지 않고 생계의 이유도 있다.


누가 방문할 때마다 나는 일하는 스케줄을 빼고 근처 관광할 곳을 체크하고 그 사람이 지낼 자리를 마련하고 집을 치운다. 나는 가뜩이나 MBTI 중에서도 Meditator 스타일인데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다. 웬만한 고문보다 더 고통스럽다 사실.




남편과 폴은 한 시도 쉬지 않고 떠드는 사람이다. 난 집 안에 어떤 소리도 내지 않고 24시간을 지낼 수도 있다. 하지만 폴은 그 어떤 소리의 공백도 견디기 힘들어했고 하다못해 음악이라도 틀어놔야 했다. 음식은 또 어떤가?


나는 아침을 먹으면 부대껴서 늦은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고 밤에 자기 전 과일을 듬뿍 넣은 Yogurt를 먹는다. 먹는 음식도 쌀국수와 내가 만든 한식을 주로 먹거나 아니면 고기를 구워서 야채와 함께 먹는다. 반면 폴은 전부 100% 아메리칸 스타일이다. 피자, 햄버거, 파스타, 샌드위치. 글루텐을 안 먹는 나는 딱 죽을 맛이다.

일단은 손님이니 그가 먹을 음식으로 나가서 먹었는데 이런 음식을 일주일 내내 먹으려니 너무 힘들었다. 폴은 아시안 음식을 전혀 안 먹어 중국식당, 태국 식당, 일본 식당 전부 한 번도 가지 못했다. 난 이런 식생활로 장트러블이 생겨 고생을 했다.


그는 오래된 폴더폰을 가지고 문자와 통화만 아주 가끔 하는 사람이라 혼자서는 무엇도 못하는 사람이다. 어느 장소를 검색해서 혼자 느긋하게 하루 나가지도 않으니 부부 둘이서 매달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명을 붙잡고


‘오늘은 뭐 하고 싶어? 이번 끼니는 뭐 먹을래?’


이런 패턴의 연속이었다. 한국사람들에게


나 손님이니 당신의 집에서 7일을 묵을 예정이고, 나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당신들 7일 직장에 휴가를 내서 나 좀 take care 하시오.


라고 한다면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7일 연차, 내실 수 있는 분 댓글 남겨주세요! 7일 연차 쓰고 나면 연차가 아예 없어지는 분들도 생길 겁니다 ㅠㅠ )


우리가 은퇴한 부부라면 딱히 큰 문제가 없을 테지만 우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고 서로의 스케줄도 촘촘히 얽혀있다. 이것을 어찌 전혀 고려하지 않나,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침부터 잠드는 그 순간까지 그와 붙어있는데 난 녹초가 되었다.




남편도 보스턴 시댁에 매년 방문하지만 그의 친구들 가족들은 자기 시간이 될 때 하루 방문한다. 누구도 큰 부담을 갖지 않는다. 방문 일정의 며칠은 따로 주변 도시를 알아서 검색해서 다닌다. 음식과 주유비도 모두 우리가 부담한다.


이번에 통화를 하다 의기투합하여 대책 없이 친구를 초대한 남편도 유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을 병행하며 정신없이 지내는 나를 보고 남편은 미안해했다. 내가 쉬어야 할 시간에 쉬지 못하고 일주일이란 긴 시간을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녹초가 되자 이건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단다. 남편에게 손님은 3일 이상 예정으로 초대하지 말자고 얘기했다. 이제 너무 힘들어서 누구도 초대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폴은 오늘 떠났다. 나는 등 위에 지고 있던 짐이 벗어진 듯 홀가분함을 느꼈다. 내 공간이 비로소 나의 공간이 되었고 미뤄둔 내 할 일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다. 폴에게는 미안하지만 남편의 친구를 7일 내내 응대하는 건 나에게는 고문이자 고통의 시간이었다. ㅠㅠ 내 친구도 이렇게 길게는 못 응대할 것 같다.


그가 떠나고 난 뒤 내게 남은 것은 담뱃재와 엄청난 맥주캔, 그리고 나는 마시지 않을 냉장고 안의 맥주병들이다. 이제 좀 숨이 쉬어진다. 내 할 몫을 어쨌든 해냈으니 이제 좀 쉬어, 내 머리를 다독인다.


그래, 오랜만에 창 문 열고 커피를 마시자. 내 모닝 루틴, 영혼의 의식도 1주일을 못했구나!


너무 평화롭고 너무 편안하다.

감사, 또 감사하다. 내 시간, 내 공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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