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산속의 농막에는 하루가 느리게 흘러간다. 포도덩굴이 우거진 울타리 주변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로 시작하는 하루는 바람이 바깥세상의 소식을 알려주지 않는다. 근처의 제일 가까운 식료품 마트가 차로 30분 거리에 있고 이 30분 동안의 구불거리는 언덕을 느리게 오르고 또 오르면 차로 들어가는 흙 길 맨 끝에 우리 농막이 있다.
Calaveras County, CA. 생소한 이름의 이곳은 1900년대 초 금광산업이 활발할 때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마을을 이룬 곳으로 그 골드러시가 끝나고 나서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쇠퇘의 길을 걸었다. 보통의 주민들은 모두 저소득층으로 정부의 도움을 받고 살거나 아니면 출처를 알 수 없는 수입으로 살아간다. 나와 남편이 이 땅을 2014년에 샀는데 하도 산 속이라 우리 둘이 얼굴을 마주 보며
‘대체 이 사람들은 뭔 돈으로 먹고살지…?’
하며 고개를 갸우뚱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이렇게 오지에도 좋은 것은 있으니, 정말 속세와 연을 끊고 맘 편히 살기에는 아주 적당하단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범하던, 푸틴이 미국을 공격하던, 비트코인이 하늘로 솟거나 바닥으로 곤두박이칠 치던 그것은 그저 다른 세계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 곳에서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은 남편과 우리 고양이, 로지뿐이다. 바람도 햇살도 어떤 소식도 전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우리를 감싼다.
꽃에 피고 바람이 불어오는 이 시절, 산속 카페는 개장이다. 손님은 우리 고양이 로지 한 명이고 나는 카페 주인이다. 사방 5만 평의 땅에 사람은 나 한 명이니 아침에 일어나면 간신히 눈곱만 떼고 원두를 꺼낸다. 캘리포니아의 햇살을 이용한 태양열 전지는 아침부터 열 일이라 그 힘을 빌려 원두를 곱게 간다. 로지가 와서 뭐 하나, 지켜본다.
로지는 일단 줄만 보면 가지고 놀려고 하기 때문에 얼른 원두를 갈고 그걸 드립 틀에 탈탈 털고는 치워야 한다. 안 그러면 줄에 걸린 테이블 위의 책, 휴대폰, 드립 틀, 컵 모두 바닥에 나뒹군다. 매의 눈으로 날 지켜보는 로지는 트러블을 일으킬 구실만 찾고 있다. 진상이다.
뜨거운 물을 가스불에 끓이고 드디어. 이 순간이 커피를 내리는 과정에서 제일 설레는 순간이다. 곱게 간 원두 위로 젠틀한 원을 그리며 소록소록 뜨거운 물을 붓는다. 원두가 뜨거운 물에 빨려 들어가듯 소용돌이를 치다가 소복하게 뽀얀 거품을 내며 솟아오른다. 신선한 원두의 상징이다. 이때 나는 홀린 듯이 티 스푼으로 그 거품을 휘휘 저어주며 그 소용돌이를 찬찬히 관찰한다. 중독성 있다.
옆에 둔 노란 컵에는 컵을 데우기 위해 부어놓은 뜨거운 물이 다소곳이 담겨있다. 이 물로 컵이 충분히 데워지면 물을 따라버리고 커피 틀을 올린다. 쪼르륵- 하고 막힌 숨 트이듯 급하게 쏟아지는 커피 소리가 또 힐링이다. 커피가 가득 차면 흑설탕 세 스푼과 오트 밀크 약간을 넣어 완성한다. 색만 봐도 맛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다. 이 뜨거운 컵을 들고 정원에 나가 온갖 꽃이 만발하는 자연을 느긋하게 감상한다.
사방이 조용한데 나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듯한 신기한 체험을 매일 한다.
이때, 또 그 진상 손님이 슬슬 다가온다. 이 손님은 내가 먹는 것을 반드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 남편이 나 앉으라고 화단에 좁게 대준 나무에 컵을 뒀는데 좀 불안하다. 저 진상 손님, 난동 안 부려야 할 텐데…
악!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여기요! 악! …이 진상, 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커피를 기어 코야 엎어놓고는
‘얘 왜 혼자 넘어져있데?…’
라는 표정을 한다 ㅠㅠ. 그야 님이 발로 툭 밀었으니까요? 개진상… 아, 미안합니다. 개(Dog)는 아니죠. 고양이 진상…
All repeat again!!!!
고양이 진상 손님이 내 커피를 엎고 모른 척 도망가도 산속 카페는 조용하다. 그저 평화롭고 조용한 이곳. 진상이 있으면 좀 어떠랴. 세상천지 나 하나인데 이런 손님이라도 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