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세워둔 차가 털렸다.
샌프란시스코는 분명 낭만적인 도시지만 어느 순간 홈리스의 숫자가 부쩍 늘어났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팬데믹 이후에 조용해진 거리의 빈틈을 노려 주차된 차량의 유리창 파손과 부품 도난은 아주 흔한 일이 되었다. 근데 그게 맨날 남의 일이었지 나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어제 한가한 곳에 세워둔 남편의 차가 털렸다.
오늘 남편과 함께 다음 에피소드로 점찍어둔 카페에 가려고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차에 탔다. 그런데 남편이 시동을 거니 양아치 고딩이 탈 법한 요란한 소리가 나는 오토바이같이 ‘바다다다당!!~~~~~~’한다. 내 턱살이 소리와 함께 부들부들 푸딩처럼 흔들렸다. 남편이 바로 시동을 끄고는 ‘FUCK!!!!!!!!!!!!!’ 하고 분노의 고성을 지르고는 차 뒤편을 살핀다. 밑에 무언가 끊긴 파이프와 지렛대로 삼은 나무토막을 발견하고는 세상이 떠나가라 더 고성을 질렀다.

도둑이 차의 배기가스에 관련된 Cadilac converter라는 것을 훔쳐갔단다. 남편은 가뜩이나 평소에 거리의 부랑자들과 도둑들이 들끓는 샌프란시스코의 행정에 불만이 많았는데 이번 일로 그는 거의 미친 사람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차는 사실 움직이는데 전혀 문제가 없지만 내 걸음걸이로 걷는 속도로 운전해도 굉음을 내는 고물이 되었다. 견적은 400만 원 정도 나왔는데 차는 지금 당장 고치지도 못한다. 부품을 주문해서 받은 다음에 고치려면 못해도 1주일은 걸린다.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남편은 일의 해결에 전혀 도움이 못됐다. 일단 근처 정비소에 가서 물어봤지만 당연히 부품이 없단다. 경찰에 신고하려 전화하니
‘다음 상담원을 기다려주세요~’
하며 십 분을 끌었다. 매일 같이 깨지는 유리창과 매일 같이 털리는 차 부품에 신경 써줄 인력은 없었다. 나는 연결을 포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차피 경찰은 그 무엇도 해결하지 못한다. 전화기를 붙잡고 한 없이 기다리는 게 날 더 지치게 했다. 나는 주말 브런치를 먹으려 좋은 곳에 가는 설레는 얼굴의 여자에서 몇 년 동안 전쟁을 겪은 지친 모습의 여자로 단 몇 시간 만에 전락했다.
남편과 나는 일단 집으로 터덜 터덜 걸어왔다. 화가 좀 누그러진 남편은 내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어디론가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난 일단 숨을 좀 골랐다. 일은 벌어졌고 이 일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남에게 손해를 끼친 그 도둑은 우주가 알아서 합당한 대가를 줄 것이다. 우울한 마음을 좀 달래려 생각해보니 너무 일찍 일어나서 커피도 못 마셨다.
주방에 들어가서 원두를 갈았다. 원두 가는 소리가 맘 속의 시끄러운 생각을 멈추게 해 주었다. 남편은 여태 누군가와 통화 중이다. 원두를 갈색 여과지가 깔린 드립 틀에 탁탁 털어 넣었다. 원두가 한 번에 싹 털려 나와서 좀 기분이 좋다. 몇 번 탕탕 털어야 할 때도 있는데… 물을 끓였다. 착실한 속도로 빠르게 끓는 쿠쿠 주전자가 참 고맙다. 너라도 내 마음대로 움직여줘서 고마워,라고 생각하며 물을 부었다.
내 마음속이 부글부글 끓던 것은 못생긴 모습이었는데 원두가 소복하게 솟아오른 모습은 이쁘고 참 뿌듯하다. 위에 뽀얗게 오른 커피 거품이 참 좋다. 흑설탕을 넣고 오트 밀크를 쪼록 부어주면 완성.
한 모금 마셔보니 다행히도 참으로 맛있다. 한 모금 두 모금 마실수록 마음은 가라앉고 잘못 없이 눈치 보는 남편에 대한 내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았다. 커피에게 따듯한 위로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참 고맙다.
남편은 농막 근처 동네 주민에게 전화를 돌려보더니 큰돈 안 들이는 쉬운 방법으로 차를 고칠 방법을 찾았다고 알려주었다. 지금 타는 차는 연식이 오래되어 큰돈을 들여 고치기가 참 애매하던 차에 일이 쉽게 해결이 되었다. 커피를 다 마시고 나니 남편도 진정되고 일도 해결이 되었다. 참 다행이다.
커피가 일을 해결해 준 것은 아니지만 커피를 마시고 나니 일이 해결되어 있다. 만병통치약이 따로 없다. 일이 꼬이면 커피를 마시자. 화가 난다면 커피를 마시자. 차가 털렸다면 커피를 마시자.
아무튼 뭔 일이 나면 일단 커피를 마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