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그렇게 됐을까.
내가 사는 North Beach는 이탈리안 구역으로 잘 사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깨끗한 곳이다. 워싱턴 스퀘어 파크 Washington Square Park를 중심으로 주변에 이탈리안 레스토랑들이 늘어서 있고 모두 손님이 항상 많아 시끌벅적하다.
샌프란의 허리를 나누는 Geary blvd를 기준으로 아래는 홈리스들과 저소득층 아파트가 밀집되어 있고 위로는 호텔, 레스토랑, 쇼핑센터와 조용한 거주구역이 조성되어 있다.
나와 남편은 잘 정리된 쾌적한 구역에서 사는걸 굉장히 만족스러워하며 종종 다른 구역의 레스토랑으로 외식을 나가 길 위의 홈리스들을 지나쳐갈 때마다 얼른 집에 가자며 유난을 떨었다.
그런데.
바닷물이 밀려오듯, 느린듯해도 정신 차리면 금방 내 발밑에 와 있는 밀물처럼 홈리스들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차이나타운.
새벽에도 조용하고 걷는데 위화감이 없던 차이나타운에 홈리스가 하나 둘 자리를 깔기 시작했다. 늦게 일을 마치고 걷던 나는 문 닫은 은행 앞에 자리를 깔고 자리 잡은 홈리스를 보고 굉장히 놀랐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아니, 여기에 홈리스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낮에는 영업을 하는 은행이라 어디론가 사라져도 밤에 되면 어김없이 돌아와서 자리를 폈다. 처음에는 한 명이었지만 곧 둘, 셋으로 늘어나고 그 사람들은 곧 낮에도 차이나타운을 배회하는 주민(?)이 되었다.
두 번째는 워싱턴 스퀘어 파크.
우리의 자랑이자 온 이웃의 쉼터인 공원. 이 공원은 주변 개들을 산책시키는 개 주인, 아이들과 공놀이하는 애엄마, 삼삼오오 타이치를 운동하는 할머니들 아주 많은 사람들의 쉼터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홈리스들이 벤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서로 파를 나누어 맘에 드는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벤치를 하루 종일 차지했다. 그중에 중얼중얼거리던 한 여성 홈리스는 엉덩이를 깐 채로 잔디 위에 앉아있어 무심코 길을 가다 우연히 그녀를 본 주민들이 혼배 백산 한 적도 있다.
밤이면 차갑게 식은 시멘트 바닥에 박스를 깔고 어디에서 얻은 침낭을 깔고 자는 사람들을 보면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저 사람도 다 사정이 있겠지, 그런 생각이 들어 그저 안타까웠다.
세 번째는 소마 SOMA 번화가.
소마 지역은 고가의 호텔들과 비싼 레스토랑이 밀집되어 있어 홈리스들이 없었는데 코로나가 터지고 도시 전체가 빈 시점에 그 경계가 무너지며 홈리스들이 출몰하게 되었다.
길을 걷다 보면 혼자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사람, 둘러쓴 이불을 팽개치며 날뛰는 사람, 허공에 분노에 찬 욕설을 지치지도 않고 내지르는 사람 너무나 많다. 요령 있게 짐작해서 피해 다녀야 한다. 이 사람들이 길 위에 막무가내로 본 용변들도 꽤 많아 걷다가 재수가 없으면 물컹한 느낌을 받는다. 잘 보고 다녀야 한다.
길에서 홈리스들과 다툼이 생기거나 상해를 입으면 어떻게 될까?
결과적으로 홈리스들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다. 나는 우연히 남편과 버거집에서 경찰들과 옆자리에 앉아 홈리스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경찰들의 말에 의하면 홈리스에게 상해를 입거나 싸워서 경찰을 부르면 신원확인을 하고 일단 보낸단다. 그다음에 간이 재판이 열린다. 하지만 인권의 나라답게 이 홈리스를 위한 국선 변호사가 선정이 되어 변호를 맡고 홈리스의 대리인이 재판에도 대신 나온단다. 홈리스는 뭐 하나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상해를 입은 쪽은 경찰에 진술을 여러 번 해야 하고 재판에도 출석해야 한다. 이득이 없는 것이다. 홈리스는 결국 쉘터에 보내지거나 갱생원에 들어가 굳민의 세금을 엄청 쓰게 하고 또 나와서 홈리스로 돌아간다. 악순환이다.
홈리스에 대한 문제는 해결책이 없다. 계속 몰려드는 홈리스를 감당하려 밑 빠진 몰 독에 물 붓는 것처럼 세금을 쓰지만 거리의 사람들은 줄지 않는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 그랬나. 맞는 말이다. 그저 어쩌다가 저렇게 됐을까 안타깝고 볼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들 뿐이다.
정신 차라고 살자, 남 도우며 살자, 부지런히 살자.
다짐, 또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