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의 내 마음은 아직도 생생하다.
흙수저 유학생의 포스트를 올리려고 다리를 건너 China Basin 구역을 걸어왔다. 바쁘게 나를 향해 달려왔다 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지나치는 차들이 무정하다 느껴졌었든데 오늘 걸어오면서는 ‘어휴! 여태도 차가 많이 다니네.’ 라거나 ‘아 고속도로 80번이 이 위로 지나가는구나… 몰랐네?’ 정도이다. 내 마음이 그렇게 많이 느긋해졌다.
이 지역은 내가 잠시 살던 그 건물 주변으로 아무것도 없어서 사람 사는 분위기가 안 났었고 전철역도 너무 황무지에 있어서 센과 치히로에 나오는 그 생뚱맞은 기차역 같았는데 어제 가보니 많이 바뀌었다. 강산이 바뀌는 10년 하고도 3년이다. 당연한 일이다. 지금도 한창 공사 중인 고층건물 사이로 인부들이 분주했고 도로 공사를 하느라 먼지가 날려 마스크를 썼다.
분명 여기쯤, 여기가 맞는데? 전혀 알아볼 수 없게 변했다. 건물 입구를 찾아볼 수가 없이 다닥다닥 붙은 빌딩 숲과 길 건너 레스토랑과 펍 등등 많이 달아졌다.
너무도 달라진 주변 풍경을 보면서 나도 추억에 잠긴다. 그저 살아내겠다, 그 마음 가짐으로 외로운지 인지하지도 못하고 하루하루 살기가 급급했던 그때였다. 아침에 8시에 일어나 대충 씻고 가방을 들고 뛰쳐나가 시간 맞춰 어학원에 갔다. 각 나라에서 온 학생들과 떠듬떠듬 영어로 대화를 이어 나갔고 집에 오면 델컴에 다운로드하여 온 sex in the city의 시리즈를 자막 없이 보고 다시 자막을 켜고 보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그때는 일단 영어를 잘해야 어디서 일을 해도 한다는 생각으로 난 하루의 자는 시간을 빼고는 모두 영어에 지겹도록 투자했다. 사실 당장이라도 어디에서건 일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더래서 더 마음이 급했다.
더듬더듬 기억을 되돌리며 걸어가 보니 너무 이쁜 공원이 나왔다. 분명 없던 공원인데 잘 관리되어 봐 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내가 기억하던 그 스산하고 텅 빈 모래밭 공간은 사라지고 마술 같은 녹빛 꽃밭이 생겼으니 나는 왠지 기쁘기도, 또 슬프기도 했다.
내가 한참 추억에 젖어 알 수 없는 감정으로 공원을 바라볼 때 순전히 꽃들을 찬양하며 바라 보는 누군가가 있었다. 우리는 화사한 꽃을 보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영어를 잘하셨는데 억센 인도인 특유의 억양이 있는 여사님. 여기 사는 두 아들의 집을 방문하러 오셨단다. 나도 모르게 13년 전 내 기억들을 줄줄이 털어놓았다.
‘그때 그렇게 힘들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어엿하게 살고 있지요? 신은 감당할 수 있는 어려움만 준다지요.’
차근차근 내 기억들을 들어주시고 따듯한 말씀을 해주신 이 분이 참 고마웠다.
그래. 나 13년 전 그렇게 외롭게 이 길을 다녔어도 난 이제 그 당시의 내가 아니다. 지금 내 모습이 너무도 자랑스럽고 또 그동안의 고생을 견뎌낸 내가 너무도 기특했다.
앉자. 앉아서 커피나 마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