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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그녀-5 내가 미쳤나 봐!

내가 방금 무슨 소리를 했더라?

by 샌프란 곽여사

“내 손, 마음에 든 거 아니었어요?”


남자가 물어온다. 잠깐, 분명 유창한 중국어로 통화하는 거 들었어. 근데 이거 뭐지? 내, 내가 좀 전에 무슨 말을 했더라?


지영은 큰 혼란에 빠져있었다. 혜선과 통화하며 내가 무슨 말을 했…!!!? 자빠뜨려, 처녀 딱지, 남자의 손… 미쳤어! 지영은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러나 뱉어낸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다.


벤치에 앉아있던 남자가 일어선다. 앉았을 때는 몰랐는데 꽤 키가 컸다. 지영의 머리꼭지를 내려보며 남자가 한 손으로 그녀의 얼굴 앞에 좌우로 흔든다.


“꺅!!!”


지영은 뒤돌아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분명 헐떡이며 지고 오던 40 파운드짜리 가방이 무거운지도 모르고 달렸다. 뒤에 잡으러 오는 손이 있는 듯 집 문을 쾅 소리가 나게 닫으며 들어간다.


학학학-


나 지금 그 남자 앞에서 무슨 소리를 한 거지? 아니, 생각하지 말자. 너무 창피해!


룸메이트인 혜선이 방에서 나온다. 대충 묶은 머리에 흘러내린 갈색 머리가 하얀 목덜미 뒤로 흘러내려와 복슬거린다.


크롭티에 속옷 차림의 그녀는 얼굴에 하얀 팩을 한 채로 달려 나와 묻는다.


“뭐야 왜 이렇게 전화 끊자마자 들어와? 어떻게 됐어?”


“몰라, 나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어.”


“뭐? 뭔 소리야 그게…”


“아니, 그보다 옷 좀 제대로 입을 수 없니? 누가 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


지영은 반년을 같이 지내도 적응되지 않는 이 룸메이트의 헐벗은 차림이 항상 불안하다.


“야, 이 완벽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본 적 있어? 이 몸을 감추는 건 죄악이야!”


혜선은 크롭티 위로 탱탱하게 솟은 가슴을 손으로 받쳐 두 번 위로 출렁거린다. 짧은 크롭티 아래로 아슬아슬하게 둥근 그녀의 가슴라인이 보였다가 사라진다.


“그, 그래! 알았어, 알았어! 그만해!”


지영은 얼굴을 붉히며 방으로 들어왔다. 혜선은 저런 육감적인 몸을 하고도 여태 처녀였다. 고결한 정신, 그런 게 아니라 자신의 완벽한 몸을 만질 권리는 완벽한 남자에게만 있다며 극도의 깐깐함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녀의 육감적이면서도 아기 같은 얼굴을 보면 이해가 되기는 했다. 그녀의 하얗고 탐스러운 가슴은 지영이 매일 아침 먹는 요거트 볼을 엎어놓은 듯 동그랗고 예뻤다. 매일 아침 조깅으로 단련된 엉덩이는 완벽하게 올라붙은 애플힙이다.


“하아…”


지영은 창가 옆 거울을 본다. 혜선과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적당히 올라붙은 가슴, 만족할 만큼 잘록한 허리, 그리고 가녀린 몸에 비해 꽤 괜찮은 엉덩이의 라인이 제법이다. 혜선처럼 가슴 밑에 손을 받치고 두어 번 출렁여본다. 지영의 얼굴이 붉어진다.


‘내가 미쳤나 봐…’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출근 준비를 한다.

Fogo De Chao.


샌프란시스코의 3번가의 모퉁이에 위치한 이 스테이크 하우스는 매일 바쁘다. 몰려드는 손님들은 커플, 모임, 회사 회식 등 다양했다. 6개월 전 부모님이 몰래 한 휴학 사실에 대노하여 생활비 원조를 끊은 이후 지영은 독립을 시작했다. 혜선을 룸메이트로 들여 렌트비 부담을 반으로 줄였고 지금 직장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벌기 시작했다.


여태 부모님의 날개 아래 있다가 세상에 나온 지영은 온 힘을 다해 독립을 하는 중이었다. 사람들과의 대화, 동료들과의 관계, 처음 해보는 레스토랑 일, 무엇 하나 익숙한 게 없었다. 한국 나이로는 이미 21세가 넘었어도 지영은 스스로가 참 갓 태어난 눈도 못 뜬 아기새처럼 유약하게 느껴졌다.


이래서는 안 돼.


스스로 다짐하며 하루하루를 고집스럽게 살았다. 내가 나 하나 책임 못 지면서 내 꿈을 누구에게 이루어 달라고 할 것인가? 글쟁이 따위, 운운하며 나를 몰아붙이는 부모님에게도 당당해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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