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체 어찌해야 하나 너무 혼란스럽다.
키가 크고 꼭 Tech 컴퍼니에 다닐 것 같은 그런 인상의 백인 남자를 뒤따라 빌딩 안을 이동하고 있다. 남자는 나보다 키가 훨씬 크고 군살이 없지만 마른 체격은 아니다. 그렇다고 힘이 넘치는 타입도 아니고 뭔가 서두르는 기분이 든다. 방금 결혼을 해서 이 남자가 신혼집으로 마련한 집에 단출한 짐을 들고 뒤따라간다.
건물 안은 융단이 깔린 호텔같이 삭막한 인상이고 화사하거나 밝지 않다. 그 남자는 딱히 ‘여기가 우리가 살 집이야’ 라거나 ‘여기 마음에 들어?’라는 등의 살가운 말을 전하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집은 어두웠으나 넓고 탁 트였다. 집은 노출 콘크리트 방식으로 지어져 물에 젖은 콘크리트 색이었고 고급스러웠다. 그런데 집 내부의 벽을 여성용 두꺼운 검은 스타킹 같은 천으로 통째로 씌워놓은 듯했다. 야외에서 몰아치는 바람에 그 스타킹 같은 천이 부풀어 벽면에서 소복하게 솟아올라있다. 신기하게 집 안은 아주 따듯하다. 그 스타킹 밖으로 희미하게 보인 벽은 약 두 뼘 정도의 넓이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틈이 있어 밖이 보인다. 내가 어슷하게 엎드려서 본 걸 봐서 이 벽이 완만한 각도로 누운 벽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아주 넓은 아무것도 없는 거실이 있는데 이 거실의 벽이 완만하게 바깥쪽으로 누워있어 내가 그 틈을 엎드려서 봤다.
바깥은 아주 멋진 바닷가 도시의 야경으로 마치 부산이나 샌프란시스코의 바닷가의 빌딩 불빛과 그 너머 바닷물의 반짝임이 보이는 그런 야경이다. 그 야경을 보며 아, 이 집 진짜 고급이구나 그런 속물 같은 생각을 했다. 그런데 누운 거실벽 아래로 이런 야경이 보인다고? 도대체 이 건물 뭐지? 알고 보니 이 거실이 이 건물에서 누가 손을 펴서 옆으로 펼친 것처럼 밑에 다른 층이 있거나 한 게 아니라 이 집이 혼자 뚝 튀어나와 있는 집이다. 난 소스라치게 놀라 가슴을 움켜 잡았다.
놀란 나를 보고 짐 내려놓은 뒤 여태 딱히 말없이 있던 그 남자가 다가와서 하하하 웃으며
“걱정 마. 아주 튼튼해. 절대 안 떨어져.”
라고 말한다. 남편이 이 집에 들어와 처음 살갑게 말해줘 기쁜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 뒤 침실로 이동했는데 침실에는 고급스럽고 심플한 아주 큰 침대가 놓여있다. 베이지색 이불이 푹신하게 놓여있는데 그 남자가 씩 웃으며 그 위에 풀썩 나를 보고 누워 다리를 겹쳐서 뻗고 팔을 고개 뒤로 괴인채 나를 바라본다. 나는 신혼다운 성적인 긴장감에 몸이 배배 꼬였다.
이 남자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난 이 남자와 갑자기 결혼한 모양이다. 남자와 섹스를 한 기억도, 혀를 얽은 기억조차 없다. 하지만 넓은 침대에 누워서 욕망이 선명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니 앞으로 일어날 일이 무척 기대가 되었다. 몸은 어떻게 생겼을까? 거기는 클까? 힘이 좋을까? 노골적인 기대감이 높아진다.
욕실로 이동하니 고양이 발 욕조가 있어 그 안에 몸을 담갔다. 그런데 문득, 내 의식이 말한다.
‘나 결혼했는데. 내 남편은 누구누구이고 이렇게 생겼고 이혼하지도 않았어.’
나는 갑자기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지? 그럼 결혼해서 남편이 있는 여자를 다짜고짜 서류도 정리하지 않고 신부로 맞아서 신혼집에 데려왔단 말인가? 내 남편은 어디 있고?
설상가상으로 남편의 친구들이 우르르 집에 선물을 들고 왔는데 그 선물들이 하나같이 보잘것없는 그런 것들이었다. 남편은 백인인데 그들은 한국인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 모두가 내가 결혼했다는 사실과 내 현 남편의 얼굴도 아는 사람이었다. 모두 축하한다며 신혼부부에게 할 법한 능글맞은 말들을 했지만 난 도무지 왜 저 사람들이 내가 결혼한 유부녀라는 사실을 모른 척 축하를 하는지 알 수가 없고 그 인사를 모른 척 받아주는 일도 힘들었다.
나를 분명하게 신부로 맞이해서 새신랑 역할을 하는 남자와 이미 서류상에 있는 내 남편 사이에 내 죄의식은 나를 너무도 혼란스럽고 괴롭게 했다. 한 구석에서는 ‘젊어 보이는 이 남자와 고급스러운 이 집에서 그냥 살자.’라는 마음과 다른 한 편으로는 ‘이건 미친 짓이야! 내 남편이 있는데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라는 마음이 격돌했다.
장면은 갑자기 어떤 교회에 가 있다. 교회의 집회에 남편이라는 남자와 그의 어머니와 함께 와있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므로 아마 점수를 따기 위해 온 듯하다. 남편의 어머니는 화려한 차림새의 여성으로 곱고 성격이 꽤나 드세다. 이 여성 옆에서 집회를 하는데 정부에서 급습 나온 요원들에게 발각이 되었다. 나도 모두와 함께 연행이 되는데 시어머니가 펄펄 뛰며 죄가 있으면 어디 잡아가 보라고 날뛴다. 남편이 나를 이런데 동원하려고 급하게 결혼해서 데려왔나, 싶다.
여기까지가 어제의 꿈입니다. 너무도 선명해서 기억이 납니다. 이 집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도대체 왜 결혼한 상태로 다른 모르는 남자와 결혼을 또 했을까요. 기분이 별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