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지, 이거? 나 무시해 지금?
2019년 7월 어느 목요일 2시. 면접 보려고 산 흰 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고 최대한 단정하게 머리를 묶고 알려준 주소를 찾아갔다.
200 3rd street. 3가의 200번지, 오케이. 지도를 보고 크로스 스트릿 확인해가며 한 블록 한 블록 차근차근 행진했다. 저기 저 모퉁이 건물 같은데…
망했다. 건물이 너무 번쩍번쩍하다. 얘네가 외국인인 나를 고용하겠어? 영주권은 있다지만 제대로 된 업장에서 일해본 적 없는 나를. 바텐더 5년 근데 그거 한국인 사장이랑 한국인 동료들이랑 한국인들한테 익숙한 단골손님들 상대로 일했는데. 초밥집 아르바이트 1년, 근데 그거 솔직히 위조했다. 4개월이야 ㅠㅠ 갑자기 자신감이 풍선에 바람 빠지듯 빠져나갔다. 분명 될 거라고 나를 무척이나 격려한 남편이 너무 밉기까지 했다. 그런데 여기서 뒤돌아가면 난 다시는 어디서 일 할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Fogo De Chao라고 쓰인 고급진 나무 문을 무겁게 열고 들어갔다.
아마 점심 영업이 끝난 듯 데스크에 아무도 없었다. 뭐지. 슬쩍 이메일을 보니 Mahelly라는 이름의 매니저가 주소와 시간을 적어준 이메일이 보인다. 틀림없는데. 마침 지나가던 직원 한 명이 다가와 물어본다.
“하이, 어떻게 오셨죠?”
“네. 면접 보러 왔습니다.”
“잠시만요.”
레스토랑 로고가 박힌 조끼와 파란 셔츠를 입은 남자가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매니저가 지금 회의 중인데 곧 올 거예요. 여기서 기다리세요.”
아니, 이거 한국에서는 안 이랬는데. 뭐 기다리지 뭐. 내가 아쉬운 놈이니까. 그래서 레스토랑 입구의 푹신한 손님용 소파에서 기다렸다. 10분, 20분, 30분. 지금 나를 면접이라고 오라고 했는데 그전에 누가 갑자기 고용이 돼서 내가 그냥 제풀에 지쳐서 나가기를 기다리는 건가? 나는 자존심이 상하고 이렇게 무례한 곳에서 내가 일하고 싶나 몇 번을 스스로 물어보며 갈까, 말까 망설였다. 내가 남편에게 카톡을 몇 개를 보내며 투정하고 남편도 돌아오라고 한 그때, 내가 정말 막 일어서려고 할 때, 마치 그녀가 나를 어디서 보고 있었던 듯이 나타났다.
“하이, 지영?”
“예스.”
“만나서 반가워요! 기다리게 해서 정말 미안해요.”
“괜찮아요.”
“자, 이쪽으로 오세요!”
말리 Mahelly라는 이름의 매니저는 작은 체구지만 온몸에 기운이 넘치고 걸음걸이는 붓을 바닥에 콕콕콕 찍듯 가볍고 빨랐다. 굵게 펌한 머리는 금발인데 귀 뒤로는 남자처럼 싹 밀었다. 스타일에서 기선 제압을 충분히 했다. 그녀는 파란 눈의 시원한 인상의 미녀였는데 짧은 머리의 미녀다. 걸음걸이 봐라 와.
그녀를 따라 들어간 내부는 나를 더욱 기죽인다. 남편이 항상 입버릇처럼 말하던 흰 테이블보와 초가 깔린 레스토랑, 그곳이 내가 면접을 보는 장소였다. 반짝이는 와인잔이 테이블마다 있었고 식기와 접시들 모두 빛난다.
“이력서를 보니 바텐더 경험이 기네요?”
“네. 한 곳에서 오래 일했어요.”
“레스토랑은 1년이고 오래 전이네요?”
“네. 사실 그 레스토랑은 지금은 폐업해서 없어졌어요.”
“흠. 우리 레스토랑은 엄청 빠르게 돌아가는 곳인데 이런데 익숙해요?”
“제가 한국에서 일할 때 별명이 ‘스피드 곽’이었습니다. 한국 사람이 엄청 빠르거든요!”
“흠… 빠르기만 하면 안 되는데…”
“아, 물론 빠르기만 하면 안되죠! 정확하고 빨라야죠. 그래야 두 번, 세 번 하는 수고를 덜 수 있으니까요.”
말리는 내 시원한 대답을 듣고는 하하하 웃으며 흡족해했다. 그녀는 면접 내내 여유로웠고 나에게 큰 호감을 표시했다. 나는 이렇게 휘황찬란한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게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아 가슴이 점점 더 두근거렸다.
“이건 형식적인 절차인데 5년 일했다는 그 바 사장님에게 혹시 우리가 전화를 해봐도 될까요?”
말리는 이렇게 물으며 내 얼굴을 살폈다. 이력이 진짜인지 아닌지 알아보려고 하는 듯하다. 훗. 해라, 해.
“네. 그분이랑 아직도 연락하는 사이예요. 새로 면접 본 곳에서 저에 대해 컨펌 Confirm 하고 싶어 한다고 미리 말해 좋을게요.”
내가 시원하게 대답하자 그녀의 얼굴이 확 밝아진다. 아마 뭔가 찜찜한 부분을 내가 시원하게 대답한 듯했다.
“Excellent! 최종결제를 받아야 하긴 하지만 다음 주 월요일부터 일주일간 트레이닝을 받을걸 예상하세요. 준비물과 일정은 이메일로 보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나 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