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가 굶어 죽겠다 - 이직한 이야기

통장에서 텅장으로 변신, 힘들다.

by 샌프란 곽여사

4월.


어느 날, 가게로 가는 곧은길을 걷는데 맞바람이 심하게 불어 휘청 휘청 걸었다. 그 길을 바람을 맞으며 걸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괜히 힘든 길을 굳이 거슬러 올라가며 바람을 호되게 맞는지도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코로나 전에 월 $7000을 벌던 가게는 나에게 더 이상 같은 수입을 주지 못했지만 일이 고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괜찮아지겠지, 큰 행사가 있으면 괜찮겠지, 나 스스로를 달래며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길 거부했다.


하지만 하나, 둘 빠져나가는 일 잘하는 동료들을 보며 불안하게 사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 불안함보다 몰려드는 손님들과는 다르게 점점 얄팍해지는 지갑이 나를 더욱 궁지로 몰았다.


5월.


어머니의 날이 다가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되게 일을 하고 집에 녹초가 되어 들어왔다. 그래도 월급명세서 보면 좋을 거야 기대하며 그렇게 달랬건만 기대한 만큼 월급명세서가 알차지 않다. 일한 시간에 비해 터무니없이 실망스러운 금액이 들어왔다. 구석으로 몰리는 기분이 점점 선명해진다.


6월.


엄마에게 매달 보내는 용돈을 2019년 100만 원으로 시작해서 2020년 50만 원으로 줄였다가 결국은 두 손을 들었다.


‘엄마는 잘살아. 이제 엄마 혼자도 아니고 그 돈 모아서 너 쓸 종잣돈 만들어.’


‘응 미안해 엄마. 지금은 내가 나를 도와줘야 할 때라 조금만 기다려.’


속이 쓰리다 못해 아파왔다. 이 못난 모습을 어찌해야 하나. 살림이 팍팍해진 하나 있는 딸을 안타까워할 엄마를 생각하니 너무 속상했다. 내 텅장보다 그게 더 힘들었다. 당장 엄마에게 용돈을 보내지 않아 여유가 생겼지만 아 이거 진짜 아니구나, 그 생각이 들었다.


6월 아버지의 날이 끝나고 다음 날, 총매니저를 찾아갔다. 사표를 냈다. 사표를 내지 않으면 흐지부지 될 거 같아 일단 사표를 냈다. 총 매니저, 일반 매니저, 어시스턴트 매니저 모두 슬퍼했다. 하지만 기억해 곽여사.


너는 망해도 가게는 안 망해.

움직여!


마지막 날 일을 하고 기다리던 남편의 차에 타고 바로 일주일간 휴가를 즐기러 떠났다. 가기 전날, 혹시나 하고 보낸 이력서를 보고 바로 두 군데서 연락이 와서 휴가 복귀하고 바로 면접을 보고 일을 시작했다.




사실, 이 가게는 전에 일하던 가게를 그만둔 직원이 밥 먹으러 왔길래 인사를 하면서 안부를 묻다 알게 된 가게이다. 평소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 않았었는데 이상하게 ‘가서 인사하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홀린 듯 다가가서 살짝 어깨를 터치하며 인사를 했다. 새로 일하는 가게는 좋으냐 물어보니 좋단다. 그리고 지나가는 나를 봤단다. 으잉?


‘그럼 인사 좀 하지 그랬어?’


하니 뭔가 생각하는 표정이길래 부를 수가 없었단다. 가게에서 일할 때는 쾌활해도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내 표정이 어땠을지 짐작이 갔다. 창피했다.


‘거기… 돈 많이 벌어?’


하고 물어보니 입이 딱 벌어질 정도다. 지나가면서 본 코너 건물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나도 아는 장소다. 레스토랑은 항상 사람이 들고나간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무작정 이력서를 보냈는데 바로 연락이 왔다. 면접을 보면 고용되리라는 확신이 있어 나는 휴가를 편안하게 보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이력서 보내고 그 친구 Kim에게 ‘나 거기 지원했어! 혹시 일자리 났을까 봐.’라고 메시지를 보냈을 때 킴이 보스한테 전에 일하던 가게에서 일하는 일당백 직원이라고 추천을 했단다.




억센 이탈리안 악센트를 가진 주인 남자는 나의 시원한 성격을 아주 흡족해했다. 이틀은 바텐더로 삼일은 서버로 바로 고용되었다.


별다른 트레이닝 없이 실전에 막무가내로 투입된 나는 내가 놀랄 정도로 일을 익숙하게 해냈고 나를 곁눈질하던 주인은 브라보를 외치고 바로 주말에 투입했다.

디지게 바쁜 날: 토요일

월요일 면접보고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꼬박 일을 했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서버의 보조가 테이블을 전부 치우고 세팅하고 음식을 날라줘서 난 이제 오가며 주문만 받는다.


처음 삼일 정도 내 수입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 어려워 초조했지만 금요일 토요일 팁을 보고 난 입이 딱 벌어졌다.


처음 이틀은 트레이닝이라 수입이 없었지만 금, 토 일을 해보니 바로 주머니가 두둑해졌다.


고생이 끝났다.


모든 일이 갑자기 확 풀려 나는 하루하루가 꿈만 같다. 일을 하면서 이렇게 신이 난 게 언제지? 싶다. 화사하게 웃으며 Hola! 하며 들어서는 나를 이미 모두가 좋아한다.


보스는 나를 따로 불러


‘지, 그냥 너한테 알려주고 싶어. 난 정말 네가 우리 집으로 와줘서 고마워. 일을 못하는 건 배우면 되지만 밝은 성격은 내가 가르쳐줄 수 없는 거야. 네가 행복하고 기쁘게 일해서 정말 내가 너무 안심이 돼. 고마워.’


라고 말했다.

별말씀을.

내가 땡큐지.


힘든 시간은 끝났다.

마음이 무척 가볍다.


Barbara Pinseria & Cocktail Bar에서 새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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