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빠지는 하루였고 지나가서 행복하다.
오늘은 수요일. 수요일 밤은 크게 바쁘지도 않고 크게 한가하지도 않은 그런 날이다. 목금토는 박 터지게 바쁘고 월요일은 무척 한가하다. 나와 Kika 키카라는 동료는 한가하게 이것저것 쟁여놓거나 쓸고 닦는 일을 했다. 예약은 9명 테이블 하나.
그런데 뜬금없이 갑자기 10명이 들어왔다. 문제없음! 차례대로 앉아서 음료 주문 먼저 받는다. 소주 한 병 시켜서 한 잔씩 돌려먹는 한국식과는 다르게 누구는 화이트 와인, 누구는 피노 누아, 누구는 칵테일, 누구는 위스키 10명이 전부 다른 걸 시키니 테이블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적는다. 그러고 나서는 애피타이저를 서너 개 시키고 피자와 파스타를 섞어서 시킨다. 이 정도 되면 좀 바쁘다.
이미 바빠서 내 발걸음이 빨라질 즈음 갑자기 손님들이 몰려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찼다. 오늘은 크게 바쁘지 않을 날이라 두 명이서 일하는데 안과 도로변에 놓인 테이블이 전부 꽉 차니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이제는 전쟁이다.
밖에 나가보니 내 섹션에 참새처럼 조르륵 앉아 내가 오기만 기다리는 손님들을 보니 미칠 노릇이다. 오케이
테이블 84: 민트 티 두 잔, 파스타, 피자
테이블 85: 화이트 화인, 칵테일, 파스타 각자
테이블 86: 칵테일 각자, 피자, 파스타
테이블 87: 칵테일 각자, 애피타이저 2개, 피자
테이블 94: 파스타 같은 거 근데 하나는 마늘 빼고
이런 식으로 한 번에 쭉 돌면서 주문을 받고 오면 이미 넣어놓은 음식이 날 기다리고 있고, 바에서는 칵테일 및 와인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주방에서 방금 나온 음식은 땡! 하고 울리는데 내것은 빨리 가져가라고 땡땡땡이다. 미친다.
테이블 3A
가뜩이나 바빠 죽겠는데 내가 주문 넣은 와인이 없단다. 그럼 다시 가서 설명하고 주문받고 그리고 주방 매니저를 불러서 계산서를 고쳐야 한다. 로제 와인 한 병으로 바꿨다. 정신없이 음식을 나르고 주문을 받는 와중에 로제 와인병이 바에서 나를 기다리는데 손님이 와서 병 취소하고 레드와인 세 잔으로 바꾼단다. 주방 매니저는 밀려오는 주문으로 미치게 바쁜데 정말 스트레스받는다. 내 얼굴을 죽일 듯이 볼 텐데 ㅠㅠ 이 테이블의 음식은 유독 늦게 나와 짜증 가득한 표정의 아가씨에게 몇 번이나 죄송하다고 했다. 나중에 계산서를 가져다주고 결제를 했는데 내가 정신이 없어서 없어서 주문 취소한 피노 누아 1병을 그대로 결제했다. 그 아가씨가 또 쫓아와서 그 와인 1병과 나중에 먹은 와인잔 3 잔을 빼 달라고 한다. 이미 결제한 계산서는 주방 매니저가 못 고친단다. 주방 매니저가 사장님에게 전화를 하고 이리저리 개고생 하는 동안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결국엔 내가 그 금액만큼 현금으로 줘서 돌려보냈다. 나중에 보니 카드가 내 주머니에 그대로 들어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긋나는 테이블은 이렇게 정말 정말 끝까지 속썩인다.
테이블 2
남자 5명이서 앉아서 거하게 먹은 테이블의 계산을 해야 할 남자가 지갑을 놓고 왔단다. 나보고 사진으로 하면 안 되냐고 신용카드 앞뒷면, 신분증 앞뒷면 사진을 보내준단다. 사진은 얼마든지 포토샾이 가능하고 사진 신분증은 어디서도 증빙으로 쳐주지 않는다. 나를 붙잡고 채면이 구긴다고 하소연하는데 나도 난감하다. 내가 이 테이블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에 다른 테이블에 나갈 술과 음식은 줄줄이 밀린다. 결국 이 남자는 우버를 타고 호텔에 다녀왔고 그동안 일행 2명이 남아 자리를 지켰다. 결국 헐레벌떡 호텔로 가서 지갑을 가져온 남자는 카드를 내밀었다.
“우리 이제 가도 되나요?”
하고 묻는 일행에게 Sure라고 말해주었다. 인원을 6명이라고 설정해 단체 자동 팁 18%가 부과되었다. 좋다.
위의 두 테이블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진다. 그러나 어쨌든 오늘도 두둑하게 벌었다.
힘들었지만 오늘도 성공. 지나가서 다행인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