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에서 추위에 떤 기억, 13년 전 오늘.

샌프란의 여름은 겨울처럼 춥다.

by 샌프란 곽여사
여름 하늘. 실화냐?

타국에서 혼자 추위에 떤 기억


2009년 7월 23일. 13년 전 오늘, 미국에 처음 도착했다. 공항에서 흐느끼며 우는 엄마를 제법 담담하게 떼어놓고 그렇게 미국에 왔다. 미국 공항에서 마중 나온 사람 1명도 없이 그렇게 도착했다. 왜? 나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데로 혼자 왔으니까.


샌프란 공항에서 제법 떨어져 있던 4번가의 그 집은 Golden Gate Park와 근접한 조용한 주택가였다. 홈스테이를 하는 집인데 로밍해 온 휴대폰으로 연락해보니 일 때문에 집을 비웠다고 기다리란다.


그 집 현관문 잎에 제법 큰 캐리어를 놓고 기다리는데 추웠다. 종로유학원의 그 아가씨는 분명 얇은 남방 하나 가져가면 된다고 했는데 욕 나오는 추위였다. 추운데 시멘트 바닥 위에서 캐리어 위에 앉아 기다리려니 점점 더 추워졌다. 뼈가 시린 추위였다.

춥고 안개 낀 하늘.

그 종로유학원 아가씨는 네바다주의 이모네 집에서 커뮤니티 컬리지를 1년 다니다 왔다고 했다. 편하게 현지인 이모네 집에서 지내며 대충 ‘나 미국에 좀 있다 왔어.’ 하는 흉내만 낸 것이다. 미국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나는 그녀가 무척이나 대단해 보였고 그녀의 이야기를 맹신했다. 문제는 그녀가 쪄 죽게 더운 네바다주에 있다 왔지, 샌프란시스코에는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여름, 특히 7-8월에 샌프란시스코는 바다 바람이 평소보다 습한 습기를 싣고 거세게 불어온다. 얼음처럼 차가운 바닷물의 습기를 담은 공기는 정말 미치게 춥다. 샌프란 관광지의 기념품 가게에 두꺼운 후드티는 이런 사실을 미처 모르고 온 관광객들에게 불티나게 팔린다.


그 종로유학원 아가씨를 찰지게 얼어붙은 입술로 욕하면서 나는 주섬 주섬 캐리어를 열었다. 새 삶을 산다고 변변히 옷조차 챙겨 오지 않은 나는 얇은 니트 하나를 껴입고 그 위에 여름용 남방을 단추를 채워 김래원이 캠퍼스 드라마에서 하듯이 걸치고 남방 팔을 목에 둘둘 감았다.


그 추운 기억을 까맣게 잊고 살았는데 아침에 추워서 일어났다. 일어나서 추워서 히터를 켜고 생각해보니 거짓말처럼 13년 전 오늘, 미국에 와서 추위에 떤 기억이 난다.


그 시간이 지나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나중에 너무 추워서 근처 중고 옷가게에 가서 싼 스웨터를 몇 개 사서 그 옷을 여름 내내 입고 다녔습니다. 여름에 샌프란에 오실 때 두꺼운 후드티나 얇은 패딩 챙겨오세요! 장난 아닙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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